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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랑[蠻娘], 만랑[漫浪], 만랑와준[漫郞窊樽], 만랑우수[漫郞迂叟], 만량[晩凉]


만랑[蠻娘]  만랑(蠻娘)은 당(唐) 나라 때의 시인 백거이(白居易)의 기첩(妓妾) 소만(小蠻)을 가리킨다. 백거이(白居易)의 애첩으로 번소(樊素)와 소만(小蠻)이 있었는대. 번소는 노래를 잘하고, 소만은 춤을 잘 추었으므로, 백거이가 일찍이 시를 지어 “빨간 앵도는 번소의 입이요, 버들가지는 소만의 허리로다.[櫻桃樊素口, 楊柳小蠻腰.]”라고 했는데, 뒤에 백거이가 병이 들어 끝내 번소와 결별한 일이 있다.

만랑[漫浪]  방종(放縱)하여 세속의 구속을 받지 않는 사람. 세속에 얽매이지 않고 형해(形骸) 밖을 방랑하는 문사(文士). 만랑(漫浪)은 당(唐) 나라 원결(元結)의 별호로 흔히 만랑(漫郞)으로 쓴다. 원차산집(元次山集) 권4 유혜천시천상학자(遊潓泉示泉上學者)에 “나는야 오랫동안 자유로운 몸 구속을 받는 것은 원치 않으오.[顧吾漫浪久不欲有所拘]”라고 하였는데, 당(唐)나라 안진경(顔眞卿)의 용주도독겸어사중승본관경략사원군표묘비명(容州都督兼御史中丞本管經略使元君表墓碑銘)에 “원결(元結)이 양수(瀼水) 가에 살면서 자칭 낭사(浪士)라 하고 낭설(浪說) 7편을 지었다가, 뒤에 낭관(郎官)이 되자 당시 사람들이 ‘낭자(浪者)도 부질없이[漫] 벼슬을 하는가?’라 하고는 만랑(漫郞)이라 불렀다.[將家瀼濱, 乃自稱浪士, 著浪說七篇. 及爲郎, 時人以浪者亦漫爲官乎, 遂見呼爲漫郎.]”라고 하였다.

만랑[漫郞]  만랑(漫郞)이란 곧 세속의 법도를 지키지 않고 방종하게 떠도는 문인을 뜻하는 말로, 당조(唐朝)의 도가(道家) 학자이자 시인이었던 원결(元結)을 가리킨다. 신당서(新唐書) 원결전(元結傳)에 “자석(自釋)을 지어 말하기를 ‘하남은 원씨가 시작된 곳이다. 원자의 이름은 결이고, 자는 차산이다. 가업은 국사에 실려 있고, 계보는 가보에 있다. 젊은 날, 상여산에서 지내며 원자(元子) 10편을 지은 뒤 원자로 불렸다. 병란이 일어났을 때 의우동으로 들어가 지낸 뒤 의우자로 불렸다. 양수 물가로 집을 옮긴 뒤 스스로 낭사라 칭했다. 관리가 되자 사람들이 낭사가 만관이 되었다고 만랑이라 불렀다.[作自釋曰: 河南, 元氏望也. 結, 元子名也. 次山, 結字也. 世業載國史, 世系在家諜. 少居商余山, 著元子十篇, 故以元子爲稱. 天下兵興, 逃亂入猗玗洞, 始稱猗玗子. 後家瀼濱, 乃自稱浪士. 及有官, 人以爲浪者亦漫爲官乎, 呼爲漫郞.]”라고 하였다.

만랑수[漫浪叟]  만랑(漫浪)의 늙은이. 당나라 원결(元結)을 가리킨다. 처음에는 자칭 낭사(浪士)라 하고 이어 만랑(漫郞)이라 하였으며, 늙어서는 만수(漫叟)라 일컬었다. 이는 모두 세속에 얽매이지 않고 형해(形骸) 밖을 방랑하는 문사(文士)를 뜻하는 말이다.

만랑와준[漫郞窊樽]  만랑(漫郞)은 당나라 때의 문인 원결(元結)을 가리킨다. 그가 지은 와준명(窊樽銘)에 “도주(道州)의 성 동쪽에 좌호(左湖)가 있고, 호수에서 동쪽으로 20보 정도에 작은 석산(石山)이 있다. 산머리에 우묵하게 파인 돌[窊石]이 있어서 술동이[樽]로 쓸 만하였다.[道州城東有左湖, 湖東二十步有小石山. 山顛有窳石, 可以為樽, 乃為亭樽上.]”라고 하였다. <次山集 卷6>

만랑우수[漫郞迂叟]  만랑(漫郞)은 당나라 때의 문장가인 원결(元結)이 일찍이 낭사(浪士)라 자칭했는데 뒤에 그가 벼슬을 하자, 사람들이 말하기를 “방종한 사람은 또한 방종하게 벼슬을 하는가?[浪者亦漫爲官乎]”라 하고 그를 만랑(漫郞)이라 호칭한 데서 온 말이다. 우수(迂叟)는 우활한 노인이란 뜻으로, 당나라 때의 시인 백거이(白居易)가 자칭한 별호이다.

만랑자[漫浪子]  세속에 얽매이지 않고 형해(形骸) 밖을 방랑하는 문사(文士)를 뜻하는 말이다. 당나라 안진경(顔眞卿)의 용주도독겸어사중승본관경략사원군표묘비명(容州都督兼御史中丞本管經略使元君表墓碑銘)에 “원결(元結)이 양수(瀼水) 가에 살면서 자칭 낭사(浪士)라 하고 <낭설(浪說)>7편을 지었다가, 뒤에 낭관(郎官)이 되자 당시 사람들이 ‘낭자(浪者)도 부질없이[漫] 벼슬을 하는가?’ 하고는 ‘만랑(漫郞)’이라 불렀다.”라고 하였다.

만랑지우[漫郎之友]  만랑(漫郞)은 당나라 때 시인 원결(元結)의 자호(自號)이다. 처음에는 자칭 낭사(浪士)라 하고 이어 만랑(漫郎)이라 하였으며, 늙어서는 만수(漫叟)라 일컬었다. 이는 모두 세속에 얽매이지 않고 형해(形骸) 밖을 방랑하는 문사(文士)를 뜻하는 말이다. 자는 차산(次山)이고, 하남 낙양 사람이다. 원결은 성격이 탈속적이고 분방하였다. 748년 무렵 장안에 있을 때 거지를 벗으로 사귀자 어떤 사람이 “자네가 비렁뱅이와 벗하는 것은 지나치게 낮춘 것 아닌가?”라 하면서 힐난하였다. 이에 원결이 개론(丐論)을 지어 “옛사람은 고을에 군자가 없으면 구름과 산을 벗하고, 마을에 군자가 없으면 소나무와 잣나무를 벗하고, 자리에 군자가 없으면 거문고와 술을 벗했으니, 나라에 유람을 다니다가 군자를 보면 벗할 뿐이다. 거지는 오늘날의 군자이니, 나는 도리어 내가 그의 친구가 되지 못할까 걱정이네.[鄕無君子則與雲山友, 里無君子則與松栢友, 坐無君子則與琴酒友, 出遊於國, 見君子則友之. 丐者今之君子, 吾恐不得與之友也.]”라고 하였다.

만량[晩凉]  저녁때의 서늘함. 저녁 무렵의 서늘한 기운. 서늘해진 저녁때. 참고로, 소옹(邵雍)의 시 만량한보(晩涼閑步)에 “밝고 깨끗한 구름 사이 달, 또렷한 비 온 뒤 저 산이여. 마음속 스스로 부끄러움 없어야, 이를 대하고 얼굴 펼 수 있으리라.[瑩淨雲間月, 分明雨後山. 中心無所愧, 對此敢開顔.]”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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