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리사[萬里沙] 화주(華州) 정현(鄭縣)에 있는 모래사장을 가리킨다. 유우석(劉禹錫)의 낭도사(浪淘沙)에 “황하수 아홉 굽이 일 만리 모래사장, 물결이 일어나고 바람이 짓까부네. 지금 곧장 강물 타고 은하수로 올라가, 견우직녀 만나는 집에 함께 가보세.[九曲黃河萬里沙, 浪淘風簸自天涯. 如今直上銀河去, 同到牽牛織女家.]”라고 한 데서 보인다.
만리사[萬里槎] 만리사는 만리의 먼 거리에 배를 타고 다니는 것으로, 서역(西域)에 사신갔던 장건(張騫)은 배를 타고 황하를 건너 만리의 먼 길을 왕래했었다. 장건(張騫)은 중국 한(漢) 나라 무제(武帝) 때의 문신으로 벼슬은 중랑장(中郞將)에 오르고 박망후(博望侯)에 봉해졌다. 남방 월지국(月氏國)에 사신으로 가서 넓힌 견문은 무제(武帝)의 서역(西域) 경영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史記 張騫傳> 또, 장건(張騫)이 사명(使命)을 받들고 서역(西域)에 나갔던 길에 떼를 타고 황하(黃河)의 근원을 한없이 거슬러 올라가다가 한 성시(城市)에 이르러 보니, 한 여인은 방 안에서 베를 짜고, 한 남자는 소를 끌고 은하의 물을 먹이고 있으므로, 그들에게 ‘여기가 어느 곳인가?’라고 물으니, 여인이 지기석(支機石) 하나를 장건에게 주면서 ‘성도(成都)의 엄군평(嚴君平)에게 가서 물어보라.’고 했다는 전설이 있다. <天中記 卷2>
만리수[萬里愁] 만리의 시름. 먼 타향에서 느끼는 시름. 눈에 띄는 사방 만 리 공간에 시름이 가득함. 광활한 원야(原野)를 바라보면서 눈에 닿는 경치에 따라 생기는 비감(悲感).
만리수능순[萬里誰能馴] 두보(杜甫)가 일찍이 자신을 갈매기에 비유하면서 한 표현이다. 두보(杜甫)의 시 증위좌승(贈韋左丞)에 “지금 동쪽 바다로 들어가고자 하여, 곧 서쪽의 장안을 떠나려고 하네. 그러나 아직도 종남산이 그리워, 머리 돌려 맑은 위수 가를 바라본다오. 한 끼 밥 먹여 준 은혜도 갚으려 하거늘, 더구나 대신을 떠나려 하겠는가. 갈매기가 아득한 연파 속에 묻혀 버리면, 만 리 멀리 누가 길들일 수가 있으랴.[今欲東入海, 卽將西去秦. 尙憐終南山, 回首淸渭濱. 常擬報一飯, 況懷辭大臣. 白鷗沒浩蕩, 萬里誰能馴.]”라고 한 데서 보인다. 두보(杜甫)의 이 시는 곧 위 좌승에게 은근히 자신을 이끌어 주기를 바라는 뜻에서 나온 것이다. <杜少陵詩集 卷1 奉贈韋左丞丈>
만리신[萬里身] 고향을 떠나 만리타향에 있는 몸을 이른다. 참고로, 맹호연(孟浩然)의 시 제야(除夜)에 “멀리 뻗은 것은 삼파의 길이요, 나그네는 만 리 밖의 몸이로다.[迢遞三巴路, 羈危萬里身.]”라고 한 데서 보인다. 이 시는 맹호연집(孟浩然集)에 실려 있기는 하나, 일설(一說)에는 이것을 최도(崔塗)의 시라고 한다. 최도(崔塗)의 시 파산도중제야유회(巴山道中除夜有懷)의 전문은 “머나 먼 삼파(三巴)로 가는 길, 위험한 만리 밖의 몸이라네. 험한 산에 남은 눈이 덮여 있는 밤, 외로운 등불 아래 타향을 떠도는 몸. 가족들과는 점점 더 멀어지는데, 오히려 종들과는 친하게 되는구나. 어찌 감당하랴, 떠도는 생활, 내일이면 다시 한 해가 새롭게 되네.[迢遞三巴路, 羈危萬里身. 亂山殘雪夜, 孤燭異鄕人. 漸與骨肉遠, 轉於僮僕親. 那堪正飄泊, 明日歲華新.]”이다.
만리심[萬里心] 장쾌한 뜻을 품고 먼 곳을 유람하고 싶은 마음을 말한다. 남조(南朝) 송(宋)나라 때 종각(宗慤)에게 그의 숙부(叔父) 종병(宗炳)이 속에 품고 있는 뜻이 무엇이냐고 물으니, 종각이 답하기를 “저는 큰 바람을 타고 만리의 큰 파도를 깨뜨리고 싶습니다.[願乘長風破萬里浪]”라고 하더니, 뒤에 과연 진무장군(振武將軍)이 되어 큰 공훈을 세우고 조양후(洮陽侯)에 봉해졌던 데서 온 말이다. <宋書 卷76 宗慤列傳>
만리야랑[萬里夜郞] 이백(李白)이 일찍이 영왕(永王) 인(璘)의 요좌(僚佐)가 되었던바, 영왕이 군사를 일으켰다가 패함으로써 이백 또한 죽음을 면치 못하게 되었는데, 그때 마침 곽자의(郭子儀)의 적극적인 구명 노력에 힘입어 외방(外方)에 유배시키는 것으로 감형을 받고 야랑(夜郞)에 유배되었던 데서 온 말이다. 그러나 이백은 그 후 얼마 안 되어 풀려 돌아왔다. 두보(杜甫)가 멀리 야랑(夜郞)에 귀양 가 있는 이백(李白)을 생각하며 지은 시 몽이백(夢李白)에 “넋이 올 때는 단풍나무 숲이 푸르고 넋이 돌아갈 때는 관새가 검으리.[魂來楓林靑, 魂返關塞黑.]”라고 하였다.
만리유류초객비[萬里惟留楚客悲] 만 리에 초나라 나그네의 슬픔만 남았네. 참고로, 유장경(劉長卿)의 시 장사과가의댁(長沙過賈誼宅)에 “삼 년의 적거생활 이곳에 머무니, 만고토록 초객(楚客)의 슬픔만 남아 있구나.[三年謫宦此棲遲, 萬古惟留楚客悲.]”라고 하였다. 초객(楚客)은 유배되어 객지를 떠돌았던 굴원(屈原)을 가리키는데, 일반적으로 고향을 떠난 나그네를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만리유사마[萬里遊司馬] 사마(司馬)는 전한(前漢)의 태사령(太史令) 사마천(司馬遷)을 가리킨 것으로, 사마천이 한 경제(漢景帝) 연간에 용문(龍門)에서 태어나 10여 세에 고문(古文)을 다 통하고, 20여 세에는 웅지(雄志)를 품고 천하를 유람하고자 하여 남으로 강회(江淮), 회계(會稽), 우혈(禹穴), 구의(九疑), 원상(沅湘) 등지를 유람하고, 북으로 문수(汶水), 사수(泗水)를 건너 제로(齊魯)의 지역에서 강학하다가 양초(梁楚) 지역을 거쳐 돌아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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