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상추천지일신[萬象推遷只一神] 천지만물이 유행하는 배후에는 귀신의 작용이 있다는 말이다. 중용장구(中庸章句) 제16장에 “중용의 효능이 마치 귀신의 덕과 같으니, 성대하도다. 눈에 보이지 않고 귀에 들리지도 않지만, 만물의 본체를 이루는 요소로 엄연히 존재하기 때문에 결코 빠뜨릴 수 없도다.[鬼神之爲德, 其盛矣. 視之而不見, 聽之而不聞, 體物而不可遺.]”라고 하였는데, 이에 대해 정자(程子)는 “귀신은 천지의 공용이자 조화의 자취이다.[鬼神, 天地之功用, 而造化之迹也.]”라고 하였고, 장재(張載)는 “귀신은 음·양 두 기운의 양능이다.[鬼神者, 二氣之良能也.]”라고 하였다. 주희(朱熹)는 이를 종합하여, 두 기운으로 말하면 귀(鬼)는 음(陰)의 영이고 신(神)은 양(陽)의 영(靈)이며 한 기운으로 말하면 이르러 펴짐은 신(神)이 되고 돌아가 되돌아감은 귀(鬼)가 되니 그 실제는 한 물건일 뿐이라고 하였다.
만상한[滿象限] 상한 90도를 넘어서 반주 180도까지의 각도를 이른다.
만색[晩色] 해 질 무렵의 경치. 날이 저물어 가는 어스레한 빛. 철이 늦은 때의 경치(景致). 참고로, 당(唐)나라 두보(杜甫)의 시 하일이공견방시(夏日李公見訪詩)에 “수화의 석양 경치가 고요하니 지체된 시간을 충당할 만하리.[水花晩色靜, 庶足充淹留.]”라고 한 데서 보인다.
만생[晚生] 후배가 선배에 대한 자신의 겸사(謙辭)로 쓰는 말이다.
만생말학[晩生末學] 늦게 태어나서 훌륭한 스승의 가르침을 받지 못해 학식이 부족하다는 뜻으로 자신을 낮추어 칭한 것이다.
만서[蠻書] 만서(蠻書)는 본래 중국에서 남방(南方)의 만족(蠻族)에게 보낸 선전포고서(宣戰布告書)를 가리킨다.
만서[嫚書] 모욕을 가한 서신(書信). 업신여기는 글.
만서[萬緖] 여러 가지 얼크러진 일의 실마리.
만석[滿石] 왕릉을 두른 면석(面石)과 우석(隅石)을 덮는 갑석(甲石). 능묘의 곡장(曲墻) 지대석(地臺石) 위에 쌓는 크고 긴 돌을 이른다.
만석[萬石] 만석(萬石)은 한 문제(漢文帝) 때에 벼슬이 태중대부(太中大夫)가 되고, 경제(景帝) 때에 구경(九卿)에 이른 만석군(萬石君) 석분(石奮)을 가리킨다. 석분은 본디 공경하고 근신함으로써 임금의 총애를 입었는데, 그의 아들 석건(石建)·석갑(石甲)·석을(石乙)·석경(石慶) 또한 모두 효도와 근신함으로 당대에 명망이 높아 제(齊)·노(魯) 지방의 여러 유학자들도 질박한 행실은 모두 미칠 수 없다고 여겼으며, 벼슬 또한 모두 이천석(二千石)에 올랐으므로 경제가 이르기를 “석군 및 네 아들이 모두 이천석이 되었으니, 신하에 대한 높은 대우가 그 가문에 다 모였다.[石君及四子皆二千石, 人臣尊寵乃擧集其門.]”라고 하고, 석분을 ‘만석군(萬石君)’이라 호칭하였다. <小學 善行><史記 卷103 萬石君列傳>
만석거[萬石渠] 정조 19년(1795)에 발생한 유례없는 가뭄으로 인해 화성 북쪽에 만든 인공 저수지이다. 이 때문에 북지(北池)라고도 불린다. 만석거 주변에 벼가 익어 황금물결을 이루면 일대 장관을 연출하는데, 이것이 수원 팔경 가운데 하나인 석거황운(石渠黃雲)이다. 지금은 만석공원으로 조성되어 있다.
만석군[萬石君] 만석군(萬石君)은 한 문제(漢文帝) 때에 벼슬이 태중대부(太中大夫)가 되고, 경제(景帝) 때에 구경(九卿)에 이른 석분(石奮)을 가리킨다. 대단한 학식은 없었으나 공손하기 이를 데 없었다. 한 고조는 그의 겸양이 마음에 들어 그의 누이를 미인(美人)으로 맞이하기도 하였다. 석분은 본디 공경하고 근신함으로써 임금의 총애를 입었던바, 그의 아들 석건(石建), 석갑(石甲), 석을(石乙), 석경(石慶) 또한 모두 아버지를 닮아서 착한 행실과 효도하고 근신함[馴行孝謹]으로 인하여 각기 이천석(二千石)의 벼슬에 올랐으므로, 경제가 이르기를 “석군 및 네 아들이 모두 이천석이 되었으니, 신하에 대한 높은 대우가 그 가문에 다 모였다.[石君及四子皆二千石 人臣尊寵乃擧集其門]”라 하고, 석분을 만석군(萬石君)이라 불렀다. <史記 卷103 萬石張叔列傳> <漢書 萬石君石奮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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