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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세일우[萬世一遇], 만세지공[萬世之功], 만세천추[萬世千秋], 만세토[萬世土]


만세오[萬歲塢]  동탁(董卓)은 후한(後漢)의 권신(權臣)으로 욕심이 무척 많은 사람인데, 섬서성(陝西省) 미현(郿縣)에 만세오라는 커다란 집을 짓고 그 속에 수만 근이나 되는 금은(金銀)을 저장하여 두었다는 고사가 있다.

만세오[萬歲塢]  후한(後漢) 시대 참적(僭賊) 동탁(董卓)이 어린 헌제(獻帝)를 끼고서 도읍을 장안(長安)으로 옮기고는 미(郿)라는 곳을 자기 근거지로 삼아 거기에다 보루[塢]를 쌓고 만세오(萬歲塢)라고 불렀는데, 높이가 7장으로 장안성(長安城)과 같았으며, 그 안에 많은 재물을 쌓아 두었다고 한다. 그 후 왕윤(王允)의 계략에 의하여 자기 의자(義子)인 여포(呂布)의 손에 죽고 멸족의 화를 당했다. 동탁이 이 창고에다 30년 이상 먹을 곡식을 저장하였다 한다. <後漢書 卷七十二 董卓傳>

만세일우[萬世一遇]  만나기 어려운 성인을 가리킨다. 장자(莊子) 대종사(大宗師)에 “만 세대 후에 그 해답을 아는 대성인을 한 번 만나다면, 그것은 아침저녁 사이에 만난 것과 같은 행운인 것이다.[萬世之後, 而一遇大聖, 知其解者, 是旦暮遇之也.]”라고 한 말에서 인용한 것이다. 곧 30만 년 뒤에 이 말을 이해할 줄 아는 성인을 만난다 하더라도 하루라는 짧은 시간에 만난 것처럼 행운이라는 의미. 결국 이 말의 뜻을 이해하는 사람은 만 세대에 한 명이 나오기도 어렵다는 뜻이다. 만세(萬世)는 30만 년을 이른다. 맹자집주(孟子集註) 이루 하(離婁下)에 “부모와 자식이 이어가는 것이 일세(一世)이며 통상 30년을 일세(一世)라 한다.[父子相繼爲一世, 三十年亦爲一世.]”라고 하였다.

만세전무궁[萬世傳無窮]  만세토록 무궁히 전해짐. 진왕(秦王) 정(政)은 기원전 221년에 중원을 통일한 뒤, 왕에 대한 호칭을 전설상의 오제(五帝)와 삼황(三皇)에서 ‘황(皇)’과 ‘제(帝)’를 취하여 ‘황제(皇帝)’로 정하였다. 또 아들이 아버지를 의론하고 신하가 군주를 의론하여 정하는 시호는 매우 부당하다고 생각하여 명을 내려서 시법(諡法)을 없애고 그 대신 대수(代數)를 헤아려 2세·3세 등등 만세(萬世)까지 무궁하게 전하도록 하였다. 그리하여 자신을 시황제(始皇帝)라 불렀으나, 진(秦)나라는 겨우 2세까지 전하고 15년 만인 기원전 206년에 멸망하였다. <史記 卷6 秦始皇本紀>

만세정[萬歲亭]  한(漢)나라 무제(武帝)가 숭산(嵩山)에 올라가 하늘에 제사를 지낼 때 산 위에서 만세를 부르는 소리가 세 번이나 들렸으므로, 그곳에 만세정(萬歲亭)을 지었다는 고사가 있다. <太平御覽 卷194>

만세지공[萬世之功]  만대의 공덕. 한 왕조(王朝)를 세우는 것을 가리켜 만대(萬代)라고 하였다.

만세천추[萬世千秋]  아주 오랜 해수나 세월(歲月). 천만년(千萬年). 오래오래 살기를 비는 말이다.

만세토[萬世土]  만세토록 영원한 영토. 소옹(邵雍)이 사람들은 공자가 영토를 갖지 못했던 것을 애석하게 여기지만 자기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필부는 백 묘의 땅을 갖고 대부는 백 리의 땅을 갖고 제후는 사방 경계 안의 땅을 갖고 천자는 사해 안의 땅을 갖지만 공자는 만세토록 영원한 것을 영토로 갖은 셈이다.[匹夫以百畝爲土 大夫以百里爲土 諸侯以四境爲土 天子以四海爲土 仲尼以萬世爲土]”라고 한 데에서 나온 말이니, 공자가 비록 천자의 지위에 올라 도를 펴지는 못했지만 그의 가르침은 영원하다는 것을 표현한 말이다. <皇極經世書 觀物篇 6>

만세후[萬世後]  사후(死後). 살아 있는 임금에 대하여 그의 죽은 뒤를 일컫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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