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아[晩衙] 고대엔 지방관들이 하루에 두 차례 공관에 나가 하급 관리들의 보고를 듣고 필요한 일을 처리하였는데, 아침에 보는 일을 조아(早衙), 저녁에 보는 것을 만아(晩衙)라고 하였다.
만아파녀[蠻兒巴女] 호북(湖北)과 사천(四川) 지역에 사는 젊은 남녀를 가리킨다. 만(蠻)은 고대에 초(楚)로 불렸던 형만(荆蠻)을 가리키고, 사천(四川)은 파촉(巴蜀)을 가리킨다. 특히, 파(巴)는 현재의 사천(四川)의 동쪽 지역을 가리킨다. 제성(齊聲)은 여러 사람이 같은 소리로 입을 맞춰 노래하는 것을 가리킨다. 백거이(白居易)의 시 죽지사 4수(竹枝詞四首) 기2(其二)에 “누구 향한 원망인지 죽지가 쓰린 노래, 조용한 밤 빈 산에서 끊길 듯 말 듯 이어지네. 초나라 땅 젊은 남녀 입 맞춰 부르는 노랫소리, 강루에 오른 내 술잔에 시름과 함께 채워지네.[竹枝苦怨怨何人,夜靜山空歇又聞. 蠻兒巴女齊聲唱, 愁殺江樓病使君.]”라고 한 데서 보인다.
만아환[晚鴉還] 저녁이 되어 갈까마귀들이 보금자리로 날아 돌아오는 것으로, 저녁 시간을 비유한다.
만악[縵樂] 사(詞)의 음악적 형식이다. 대체로 느리고 가락이 적은 것을 말한다. 반대로 영(令)은 좀 빠르고 가락이 많이 들어가는 음악의 형태이다.
만악[縵樂] 아악(雅樂)과 상대되는 잡악(雜樂)으로, 대체로 느리고 가락이 적으며 다른 음악을 섞어 연주하는 음악을 말한다. 주례(周禮) 춘관종백(春官宗伯)에 “경사는 중사 네 사람……무리가 사십 명이다.[磬師中士四人,……徒四十人.]”라고 하였는데, 그 주소에 “만악을 가르친다.[敎縵樂]”라고 하였다.
만안[脕顏] 얼굴에 윤기가 흐름. 만안(脕顔)은 윤기가 나는 얼굴이라는 뜻이다. 초사(楚辭) 원유(遠遊)에 “옥빛으로 얼굴에 윤기 남이여, 정신이 순수하여 비로소 씩씩하도다.[玉色頩以脕顔兮, 精醇粹而始壯.]”라고 하였다.
만안[滿眼] 만안(滿眼)은 술통 또는 술병에 술이 가득함을 뜻한다. 당(唐)나라 두보(杜甫)의 시 입주행증서산검찰사두시랑(入奏行贈西山檢察使竇侍郞)에 “그대를 위해 술을 사되 만안으로 사고 종에게는 흰 밥을 주고 말에게는 푸른 꼴을 주리라.[爲君酤酒滿眼酤, 與奴白飯馬靑芻.]”라고 하였다. 만안(滿眼)의 안(眼)은 술을 담아오는 죽통(竹筒) 위 쪽에 끈을 꿰는 구멍이다. 즉 그 구멍까지 차도록 술을 가득 통에 담아온다는 뜻이다.
만안고[滿眼酤] 만안(滿眼)은 촉인(蜀人)들이 용기로 쓰는 죽통(竹筒)에는 손으로 들 수 있게 끈을 맬 수 있는 구멍이 뚫려 있는데, 만안고(滿眼酤)란 술을 살 때 통에 뚫린 구멍에 이를 때까지 술을 가득 채우는 것을 가리킨다. 두보(杜甫) 입주행(入奏行)에 “강 꽃이 지기 전에 성도(成都)로 돌아오리, 완화계(浣花溪)의 늙은이 즐겨 찾아주겠는가. 그대 위해 술 사되 눈 앞에 가득히 사고, 종에게는 흰쌀밥 주고 말에게는 푸른 꼴을 주리라.[江花未落還成都, 肯訪浣花老翁無. 爲君酤酒滿眼酤, 與奴白飯馬靑蒭.]”라고 한 데서 보이는데. 채몽필(蔡夢弼)의 주(註)에 “해설하는 자가 이르기를 ‘촉(蜀)지방 사람들은 술을 살 때 대나무통을 가지고 가는데 대나무통 위에 끈구멍이 뚫려 있어 술을 사가는 자가 만안고(滿眼酤)라고 주문하면 끈구멍에 찰 정도로 술을 가득 채움을 말한다.’고 했다.[說者謂蜀人酤酒 挈以竹筒 竹筒上有穿繩眼 其酤酒者曰 滿眼酤 言滿迫筒眼也]”라고 하였다.
만안도[萬安渡] 만안(萬安)의 나루. 송(宋)나라 채양(蔡襄)이 천주(泉州)를 다스릴 때 366장(丈)이나 되는 돌다리를 놓았던 곳이다. 채양(蔡襄)은 송 인종(宋仁宗) 때의 유신(儒臣)이다. 자는 군모(君謨), 시호는 충혜(忠惠)이다. 시문(詩文)에 뛰어나고 사서(史書)에 밝았다. 복주(福州)·천주(泉州) 등의 지사를 거처 단명전학사(端明殿學士)가 되었다. 송사(宋史) 권329 채양열전(蔡襄列傳)에 의하면, 추밀직학사(樞密直學士)로 있다가 복주(福州)를 거쳐 천주(泉州)를 다스리면서 만안도(萬安渡)에 큰 돌다리를 놓아 안전하게 건너다닐 수 있도록 하고 700리에 소나무를 심어 도로를 감싸 보호하도록 하니, 사람들이 비석을 세워 공덕을 기록하였다고 한다.
만안문[萬安門] 창덕궁 동문이다.
만안산[萬安山] 또 다른 이름은 대석산(大石山)으로 낙양(洛陽) 동남쪽 40리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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