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ose

깨어나 마음을 살피고 삼시세끼로 세상맛을 익히면 <채근담/소창유기>


이른 새벽 잠자리에서 마음의 바탕을 살피면

기분이 움직이지 않고 감정이 싹트지 않아

비로소 본래의 참된 심성을 볼 수 있고

세끼 식사를 하는 중에도 세상의 맛을 익혀

진함을 좋아 않고 담박함을 싫어하지 않으면

바야흐로 실질적인 공부를 이룰 수 있다.


從五更枕席上參勘心體,  氣未動,  情未萌,  纔見本來面目.
종오경침석상참감심체,  기미동,  정미맹,  재견본래면목.
向三時飮食中諳練世味,  濃不欣,  淡不厭,  方爲切實工夫.
향삼시음식중암련세미,  농불흔,  담불염,  방위절실공부.

  취고당검소(醉古堂劍掃)와 소창유기(小窓幽記)에는 氣未動(기미동)이 心未動(심미동)으로 되어 있다.

<菜根譚채근담/淸刻本청각본(乾隆本건륭본)/修身수신>
<醉古堂劍掃취고당검소/小窓幽記소창유기 : 素소>


  • 오경[五更]  초저녁부터 밤을 나타내는 다섯 경(更) 중 다섯 번째. 곧 초경(初更)·이경(二更)·삼경(三更)·사경(四更)·오경(五更)으로 나뉨. 하룻밤을 다섯으로 나눴을 때의 다섯 째 부분. 하룻밤을 초경(初更)에서 오경(五更)까지 다섯으로 나눈 시각을 아울러 이르는 말. 새벽 3~5시의 시간으로 날이 밝아오는 시각. 아침이 밝을 때를 가리킨다. 황혼부터 새벽까지의 저녁을 5등분하여 갑야(甲夜), 을야(乙夜), 병야(丙夜), 정야(丁夜), 무야(戊夜) 또는 일경(一更), 이경(二更), 삼경(三更), 사경(四更), 오경(五更) 등으로 지칭한 데서 유래한 것으로, 막 동이 틀 무렵을 뜻한다. 일경(一更)이 지날 때마다 종이나 북 등을 쳐서 시간을 알렸으므로, 오경종(五更鐘)은 저녁의 마지막 종소리, 즉 밤을 꼬박 새웠음을 뜻한다. 참고로, 소식(蘇軾)의 시 박박주(薄薄酒)에 “새벽 조회 시간 기다리느라 신발에 서리가 가득한 벼슬살이보다는, 한여름 해가 높이 솟도록 느긋하게 잠을 자며 북창의 시원한 바람을 즐기는 것이 훨씬 낫지 않으랴.[五更待漏靴滿霜, 不如三伏日高睡足北窓凉.]”라고 한 데서 보인다.
  • 오경[五更]  나이 많은 늙은이. 삼로오경(三老五更). 중국 주(周) 나라 때 설치한 관직 제도. 천자가 나이가 많고 덕 있는 원로를 삼로(三老)와 오경(五更)으로 칭하여 부형(父兄)과 같이 예우함으로써 효제(孝悌)의 모범을 보임. 한 마을의 교화를 맡았음. 삼(三)은 삼신(三辰)을, 오(五)는 오성(五星)을 상징함. 오경(五更)은 향관(鄕官)의 이름으로, 연로하여 치사(致仕)한 관원에게 주어졌다. 삼로(三老)와 함께 이천석(二千石)의 녹을 종신토록 받고 천자가 부형(父兄)의 예로 모시는 사람이다. 예기(禮記) 문왕세자(文王世子)에 “동서(東序)에 가서 선대의 장로(長老)에게 석전(釋奠)하고 마침내 삼로(三老)・오경(五更)・군로(群老)의 자리를 마련하였다.[適東序, 釋奠於先老, 遂設三老五更群老之席位焉.]”라는 내용이 보이는데, 정현(鄭玄)의 주(注)에 “삼로와 오경은 각각 한 사람이니, 모두 연로한 사람으로 일에 대해 경력이 있고 치사(致仕)한 사람이다. 천자는 그들을 부형으로 봉양함으로써 천하의 효성과 공경을 보인다. 삼(三)과 오(五)로 이름을 지은 것은 삼진(三辰)과 오성(五星)에서 형상을 취한 것으로, 하늘이 이를 통해 천하를 밝히기 때문이다.[三老五更, 各一人也, 皆年老更事致仕者也. 天子以父兄養之, 示天下之孝悌也. 名以三五者, 取象三辰五星, 天所因以照明天下者.]”라고 하였다. 한서(漢書) 예악지(禮樂志)에는 “현종(顯宗)이 즉위하자 그 예를 행하여 광무제를 명당(明堂)에서 제사 지냈으며 삼로와 오경을 벽옹에서 모셨다.[顯宗卽位, 躬行其禮, 宗祀光武皇帝于明堂, 養三老五更於辟廱.]”라고 하였는데, 안사고(顔師古)는 이기(李奇)의 말을 인용하여 “왕자(王者)는 삼로를 아버지처럼 섬기고 오경을 형처럼 섬긴다.[王者父事三老, 兄事五更.]”라고 하였다. <禮記注疏 文王世子 鄭玄注> <漢書 卷22 禮樂志 顔師古注>
  • 침석[枕席]  베개와 자리를 아울러 이르는 말. 침구(寢具). 베개머리와 이불속. 잠자리. 베개와 자리를 아울러 이르는 말. 누워서 자는 곳. 참고로, 유종원(柳宗元)의 고무담서소구기(鈷鉧潭西小丘記)에 “자리를 깔고 누우면, 청랭한 모양이 눈과 서로 꾀하고, 영영한 소리가 귀와 서로 꾀한다.[枕席而臥, 則淸泠之狀與目謀, 瀯瀯之聲與耳謀.]”라고 한 데서 보이고, 송옥(宋玉)의 고당부(高唐賦)에 “전국 시대 초(楚)나라 왕이 일찍이 고당(高唐)에서 낮잠을 자는데, 꿈에 한 여인이 와서 말하기를 ‘저는 무산의 여자로서 고당의 나그네가 되었는데, 임금님이 여기에 계신다는 소문을 듣고 왔으니, 원컨대 침석을 같이 해 주소서.[妾巫山之女也, 爲高唐之客, 聞君遊高唐, 願薦枕席.]’라고 하므로, 과연 그와 같이 하룻밤을 잤더니, 그 이튿날 아침에 그 여인이 떠나면서 말하기를 ‘저는 무산의 양지쪽 높은 언덕에 사는데, 매일 아침이면 아침 구름이 되고 저녁이면 내리는 비가 됩니다.[妾在巫山之陽, 高丘之岨, 旦爲朝雲, 暮爲行雨.]’라고 했다.”라고 한 데서 보인다.
  • 참감[參勘]  침착하여 깊이 생각함. 비교하여 살피는 것. 깊이 헤아림. 서로 참작하여 살피다. 참여하다. 간여하다. 관계하다. 헤아리다. 비교하다. 살피다.
  • 심체[心體]  마음의 바탕. 마음과 몸. 마음의 본체. 심성(心性) 신체(身體) 대비하여 사용하는 표현. 대학장구(大學章句) 전(傳) 6장 장하주(章下註)에 “심체의 밝음이 미진한 바가 있으면 그 발하는 바가 반드시 실제로 그 힘을 쓰지 못하여 구차하게 스스로 속임이 있게 된다. 그러나 혹 이미 밝게 알았다 하더라도 이 홀로 있음을 삼가지 않으면 그 밝힌 것이 또 자기의 소유가 아니어서 덕에 나아가는 기초로 삼을 수 없다.[心體之明有所未盡, 則其所發必有不能實用其力, 而苟焉以自欺者. 然或已明而不謹乎此, 則其所明又非己有, 而無以爲進德之基.]”라는 주희의 주가 보인다.
  • 미맹[未萌]  아직 초목(草木)의 싹이 트지 않음. 변고(變故)나 어떤 일이 아직 일어나기 전. 식물의 싹이 아직 트지 않음. 재앙이나 사고가 아직 생기지 않음. 참고로, 맹자(孟子) 고자 하(告子下)에 “군주의 악을 조장하는 것은 그 죄가 그래도 작고, 군주의 악을 미리 맞아주는 것은 그 죄가 크다.[長君之惡, 其罪小; 逢君之惡, 其罪大.]”라고 하였는데, 이에 대해 집주(集註)에서 “군주의 과실이 아직 싹트지도 않았는데 뜻보다 앞서서 인도함은 군주의 악을 미리 맞아주는 것이다.[君之過未萌, 而先意導之者, 逢君之惡也.]”라고 한 데서 보인다.
  • 본래[本來]  변(變)하여 온 사물(事物)의 처음 바탕. 어떤 사물이 전하여 내려온 그 처음. 사물이나 현상이 만들어지거나 생겨난 처음부터. 본디. 본시(本是).
  • 본래면목[本來面目]  사람마다 갖추어 있는 심성(心性). 사람마다 지니고 있는 본래의 심성. 자기의 본디의 모습. 중생이 본디 지니고 있는 순수한 심성. 타고난 인위(人爲)가 가해지지 않은 있는 그대로의 마음을 말하는 불교어. 본성(本性). 본래는 처음부터 원래의 뜻. 참고로, 무문관(無門關) 제23칙에 육조(六祖) 혜능(慧能)이 몽산혜명(蒙山惠明)에게 “선을 생각하지도 않고 악을 생각하지도 않는 바로 그 때에 명 상좌의 본래면목은 무엇인가?[不思善, 不思惡, 正與麽時, 那箇是明上座本來面目.]”라고 묻자, 혜명이 언하(言下)에 대오(大悟)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 면목[面目]  얼굴. 체면(體面). 상태(狀態)나 됨됨이. 얼굴의 생김새. 사물의 상태나 겉모양. 남을 대하기에 번듯한 도리. 얼굴과 눈이라는 뜻으로, 체면을 가르키는 말이다. 참고로, 한유(韓愈)의 송궁문(送窮文)에, 지궁(智窮), 학궁(學窮), 문궁(文窮), 명궁(命窮), 교궁(交窮)의 다섯 궁귀(窮鬼)가 자신을 괴롭히는 행위를 지적했는바, 그 대략에 “다섯이 각기 주장한 바가 있고 사사로이 이름자를 세워서, 내 손을 비틀어 뜨거운 국을 엎지르게 하고, 입을 열었다 하면 남의 기휘를 저촉하게 하여, 나로 하여금 면목을 가증스럽게 하고 언어를 무미건조하게 하는 것이 모두 그대들의 뜻이다.[各有主張, 私立名字, 捩手覆羹, 轉喉觸諱, 凡所以使吾面目可憎, 語言無味者, 皆子之志也.]”라고 한 데서 보이고, 소식(蘇軾)의 시 제서림벽(題西林壁)에 “옆으로 보면 잿마루요 비스듬히 보면 봉우리라, 원근과 고저에 따라 모습이 같지 않구나. 여산의 진면목을 알 수 없으니, 이 몸이 이 산 속에 있기 때문이로세.[橫看成嶺側成峯, 遠近高低各不同. 不識廬山眞面目, 只緣身在此山中.]”라고 하였고, 사기(史記) 항우본기(項羽本紀)에서 항우(項羽)가 “설령 강동의 부형들이 가여워하여 나를 왕으로 삼고자 하더라도, 내가 무슨 면목으로 그들을 보겠는가?[縱江東父兄憐而王我, 我何面目見之.]”라고 한 데서 보인다.
  • 삼시[三時]  아침, 점심, 저녁의 세 끼니. 또는 그 끼니때. 세 끼를 먹고 하는 품. 한 시(時)부터 따져서 셋째 번의 시(時). 곧 세 시(時)를 이른다.
  • 삼시[三時]  과거(過去), 현재(現在), 미래(未來)를 아울러 이르는 말.
  • 삼시[三時]  농사에 중요한 세 시절. 밭 갈고 씨 뿌리는 봄, 김매는 여름, 곡식을 거두어들이는 가을. 농사를 짓는 데 중요한 시기. 곧 춘경(春耕)·하운(夏耘)·추수(秋收)를 말한다.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환공(桓公) 6년에 “삼시를 방해하지 않으면 백성이 화목하여 풍년이 든다.”라고 하였다.
  • 삼시[三時]  석가모니가 열반(涅槃)한 뒤에 불교(佛敎)가 전개되는 상황을 기준으로 하여 나눈 세 시기. 정법시(正法時), 상법시(像法時), 말법시(末法時)이다. 법상종(法相宗)에서,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그 내용에 따라 유교(有敎)·공교(空敎)·중도교(中道敎)로 나누고, 그것을 설(說)한 시기를 차례로 초시(初時)·제이 시(第二時)·제삼 시(第三時)로 나눈 것.
  • 음식[飮食]  사람이 먹고 마시는 것을 통틀어 이르는 말. 사람이 먹을 수 있도록 만든 밥이나 국 따위의 물건(物件). 참고로, 예기(禮記) 문상(問喪)에 “가엾고 애달픈 마음과 아프고 절통한 생각에서 신이 상하고 간이 마르며 폐가 탄다. 물과 장을 입으로 넘기지 못하고 3일 동안 밥을 짓지 못한다. 그러므로 이웃에서 미음과 죽을 쑤어 이를 마시고 먹게 하는 것이다.[惻怛之心, 痛疾之意, 傷腎乾肝焦肺. 水漿不入口, 三日不擧火. 故隣里爲之糜粥, 以飮食之.]”라고 한 데서 보인다.
  • 암련[諳練]  모든 사물에 정통함. 아주 익숙하게 알고 있음. 숙련하다. 숙달하다. 능숙하다.
  • 세미[世味]  세상맛. 세상의 달고 쓴 맛. 사람 사는 세상의 정리. 사람이 세상(世上)을 살아가며 겪는 온갖 경험(經驗). 세상살이에서 겪고 느끼게 되는 괴로움이나 즐거움 따위의 세상사는 재미. 공명을 이루어 벼슬을 하고 싶은 마음. 참고로, 송(宋)나라 육유(陸游)의 시 임안춘우초제(臨按春雨初霽)에 “세상사는 맛은 해 바뀔수록 깁처럼 얇아지는데, 누가 말 타고 서울에 와 나그네가 되게 하였나.[世味年來薄似紗, 誰令騎馬客京華.]”라고 하였고, 한유(韓愈)의 시 시상(示爽)에 “나는 늙어 사는 재미 엷어졌지만, 구습에 젖어 그대로 눌러앉아서. 얼굴 두껍게 백관 속에 보태졌으니, 그 자체가 어찌 잘못 아니겠느냐.[吾老世味薄, 因循致留連. 强顔班行內, 何實非罪愆.]”라고 하였다.
  • 불염[不厭]  싫어하지 않다. 배척하지 않다. 질리지 않다. 그르다고 생각하지 않다. 참고로, 논어(論語) 향당(鄕黨)에 “밥은 정미한 것을 싫어하지 않으셨고 회는 가늘게 썬 것을 싫어하지 않으셨다.[食不厭精, 膾不厭細.]”라고 하였고, 중용(中庸) 제10장에 “무기와 갑옷을 깔고 지내면서 죽어도 싫어하지 않는 것은 북방 사람의 강함이다.[袵金革, 死而不厭, 北方之强也.]”라고 하였고, 논어(論語) 술이(述而)에 “묵묵히 기억하며, 배우고 싫어하지 않으며, 사람 가르치기를 게을리 하지 않는 것, 이 중에 어느 것이 나에게 있겠는가.[黙而識之, 學而不厭, 誨人不倦, 何有於我.]”라고 한 데서 보인다.
  • 절실[切實]  어떤 일에 대한 느낌이나 생각이 뼈저리게 강렬한 상태에 있음. 어떤 일에 대한 해결이나 요구 등이 매우 시급하고도 중요한 상태)에 있음. 어떤 일이 실제(實際)에 꼭 들어맞아 알맞음.
  • 공부[工夫]  학문이나 기술 등을 배우고 익힘. 학문(學問)이나 기술(技術)을 닦는 일. 시간을 들여 얻은 어떤 방면의 결과를 가리킨다. 공역(工役)에는 반드시 인부(人夫)를 쓰기 때문에 속어(俗語)에 공부(工夫)라는 말이 생겼다. 이를 전용(轉用)해서 학문(學問)의 공부(工夫)라는 말이 있게 된 것이다. 참고로, 육유(陸游)의 시 야음(夜吟)에 “육십여 년 동안을 망녕되이 시를 배워, 공부가 깊어진 곳을 내 마음 홀로 알 뿐이네. 밤중에 차가운 등불 아래서 한번 웃노니, 비로소 금단으로 환골탈태하는 때로세.[六十餘年妄學詩, 工夫深處獨心知. 夜來一笑寒燈下, 始是金丹換骨時.]”라고 한 데서 보인다.

【譯文】 參勘心體,  諳練世味.
淸晨在床榻上參詳勘問內心性體,  心氣尙未萌動,  性情尙未萌發,  才能顯現本有心性的面目  ;  三時在飮食中諳習練達人世滋味,  濃厚不必欣喜,  淡薄不必厭惡,  方才成爲切合實際的工夫.

Leave a Reply

Copyright (c) 2015 by 하늘구경 All rights reserved
error: <b>불펌 금지!</b> Content is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