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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이천봉[萬二千峰], 만이활하[蠻夷猾夏], 만익불쇠[晩益不衰], 만인갱[萬人坑]


만이천봉[萬二千峰]  산봉우리가 많다는 뜻으로, 금강산(金剛山)의 절승한 산세를 이르는 말 이다.

만이천오백가위주[萬二千五百家爲州]  예기(禮記) 집설(集說)에 “옛날 25가(家)를 려(閭)라 하였으니, 함께 한 골목에 있어서 골목 입구에 문이 있고 문 옆에 숙(塾)이 있어서 백성으로서 집에 있는 자가 아침저녁으로 숙에서 교육을 받았다. 500가를 당(黨)이라 하였으니, 당의 학교를 상(庠)이라 하는데 려의 숙에서 올라온 사람을 가르친다. 술(術)은 마땅히 주(州)가 되어야 한다. 12,500가를 주라 하였으니, 주의 학교를 서(序)라 한다. 주례(周禮)에 ‘향대부(鄕大夫)가 봄과 가을에 예(禮)로써 백성들을 모아 주의 서(序)에서 사례(射禮)를 행한다.’는 것이 이것이니, 서에서는 당의 학교에서 올라온 사람을 가르친다. 천자가 도읍하는 곳과 제후국 국도 안의 학교를 국학(國學)이라 하였으니, 천자와 제후의 원자(元子)·중자(衆子)와 경·대부·사의 아들과 밑에서 올라온 준사와 선사들을 가르친다.……[古者二十五家爲閭, 同在一巷, 巷首有門, 門側有塾, 民在家者, 朝夕受敎於塾也. 五百家爲黨, 黨之學曰庠, 敎閭塾所升之人也. 術, 當爲州, 萬二千五百家爲州, 州之學曰序. 周禮‘鄕大夫春秋以禮會民而射于州序’, 是也. 序則敎黨學所升之人. 天子所都及諸侯國中之學, 謂之國學, 以敎元子·衆子及卿·大夫·士之子與所升俊選之士焉.……]”라고 하였다.

만이활하[蠻夷猾夏]  만이(蠻夷)가 중하(中夏)를 어지럽힘. 서경(書經) 순전(舜典)에, 제순(帝舜)이 고요(皐陶)에게 “국외에서는 만이가 중국을 어지럽히고, 국내에서는 강도, 살인과 외간(外姦), 내구(內宄)가 발생하고 있다. 그래서 그대를 사(士)에 임명하였으니, 오형에 복죄(服罪)하게 하되 오형의 복죄를 세 군데에 가서 받게 할 것이며, 중형인 오형을 다섯 가지의 유형(流刑)으로 감하여 거할 곳을 두되 그곳을 세 등급으로 나누어 정할 것이니, 오직 밝게 살펴서 행해야만 백성들이 믿고 복종할 것이다.[蠻夷猾夏 寇賊姦宄 汝作士 五刑有服 五服三就 五流有宅 五宅三居 惟明克允]”라고 당부한 말에서 보인다. 여기서, 오형(五刑)은 이마에 먹물로 글자를 새겨 넣는 묵형(墨刑), 코를 베는 의형(劓刑), 발꿈치를 베는 월형(刖刑), 생식기를 제거하는 궁형(宮刑), 사형에 처하는 대벽(大辟)을 말하고, 사(士)는 이관(理官), 즉 죄를 다스리는 관리를 말한다.

만익불쇠[晩益不衰]  만년에도 기상이 쇠하지 않음. 백거이전(白居易傳)에 “살펴보건대 공은 처음부터 정직한 도(道)로 분발하였으니, 천자 앞에서 안위를 쟁론하여 이것으로 공을 세울 수 있기를 기대하였다. 중간에 비록 배척을 받기는 하였으나, 말년에 이르러도 이러한 기상은 더욱 줄어들지 않았다.[觀居易始以直道奮 在天子前爭安危 冀以立功 雖中被斥 晩益不衰]”라고 한 데서 보인다. <新唐書 卷119 白居易列傳>

만인[萬仞]  높이가 만 길이나 된다는 뜻으로, 아주 높거나 대단함을 이르는 말이다. 약 2.5미터.

만인[蠻人]  하남군(河南郡) 경내(境內)에 거주하던 소수민족(少數民族)이다. 수경주(水經注) 회수(淮水)에 “북위(北魏)의 태화(太和) 연간에 만족(蠻族) 전익종(田益宗)이 성의를 다하였으므로 동예주(東豫州)를 설치하며 그를 자사(刺史)로 삼았다.”고 하였다.

만인갱[萬人坑]  여러 사람들의 시신을 한꺼번에 묻은 무덤을 말한다. 원나라 순제(順帝)의 지정(至正) 연간인 1358년에 중국에서 큰 전쟁이 벌어져 도성문 동쪽에 시체가 산더미처럼 쌓인 적이 있었는데, 고려 출신으로 원나라에서 자정원사(資政院使)의 벼슬을 지낸 어떤 사람이 자신의 재산을 희사하여 구덩이 수십 개를 만들고 그곳에다 시체를 묻어서 합장한 다음 재를 올려 준 일이 있었다. 당시 사람들이 이를 의롭게 여겨 만인갱(萬人坑)이라 불렀으며, 당대 및 후대의 명현들이 이 일을 소재로 시를 짓고 또 시첩으로 만들기도 하였다.

만인걸[萬人傑]  송(宋)나라의 학자로, 자는 정순(正淳) 또는 정순(正純)이고, 호는 지재(止齋)이다. 처음에 육구령(陸九齡)에게 배우다가 나중에 육구연(陸九淵)의 제자가 되었고, 그 뒤에 남강(南康)에 가서 주희(朱熹)를 만난 뒤로 그의 제자가 되었다. <宋元學案 卷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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