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낮으로 해놓은 일들이
이불과 그림자에도 부끄럽지 않게 하고
세월은 이미 흘러갔어도
노년일지라도 효과를 거두고자 기약하라.
夙夜所爲, 得無抱慚於衾影.
숙야소위, 득무포참어금영.
光陰已逝, 尙期收效於桑楡.
광음이서, 상기수효어상유.
<圍爐夜話위로야화>
- 숙야[夙夜] 이른 아침과 늦은 밤. 이른 새벽과 깊은 밤. 조석(朝夕). 아침저녁. 밤낮. 시시각각. 미명(未明). 날이 샐 무렵. 시경(詩經)에 아침에 일찍 일어나고 밤에는 늦게 잔다는 숙흥야매(夙興夜寐)의 뜻과 같은 말이다. 아침 일찍부터 밤늦게까지 직무에 몰두하여 부지런히 일하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참고로, 서경(書經) 여오(旅獒)에 “밤낮으로 혹시라도 부지런하지 않는 일이 없게 해야 한다. 작은 행실을 조심하지 않으면 마침내 큰 덕에 누를 끼친 결과, 마치 아홉 길의 산을 쌓아 올리다가 한 삼태기의 흙을 덜 부어 망쳐 버리는 것처럼 될 것이다.[夙夜罔或不勤. 不矜細行, 終累大德, 爲山九仞, 功虧一簣.]”라고 한 데서 보이고, 시경(詩經) 계명(雞鳴)의 모서(毛序)에 “계명(雞鳴)은 어진 후비(后妃)를 생각한 것이다. 애공이 여색에 빠지고 태만하였기 때문에 어진 후비와 정녀가 밤낮으로 경계하여 이루어준 도를 읊은 것이다.[雞鳴, 思賢妃也. 哀公荒淫怠慢, 故陳賢妃貞女夙夜警戒相成之道焉.]”라고 하였고, 시경(詩經) 대아(大雅) 증민(烝民)에 “엄숙한 왕명을 중산보가 받들어 행하며, 나라의 좋고 나쁨을 중산보가 밝히도다. 이미 도리에 밝고 일을 세밀히 살펴, 그 몸을 보호하며, 밤낮으로 게을리하지 않아서, 한 사람 천자를 섬기도다.[肅肅王命, 仲山甫將之. 邦國若否, 仲山甫明之. 旣明且哲, 以保其身. 夙夜匪懈, 以事一人.]”라고 하였고, 시경(詩經) 호천유성명(昊天有成命)에 “호천이 이룬 명이 있으시거늘, 두 임금께서 받으시니라. 성왕께서 감히 편안히 계시지 못하사, 밤낮으로 명을 다지기를 크게 하고 치밀히 하사, 아! 이어 밝혀 그 마음을 다하시니, 이러므로 천하를 안정시키시니라.[昊天有成命, 二后受之. 成王不敢康, 夙夜基命宥密, 於緝熙! 單厥心, 肆其靖之.]”라고 한 데서 보이고, 한(漢)나라 환관(桓寬)의 염철론(鹽鐵論) 권3 자복(刺復)에 “이 때문에 밤낮으로 국가에서 쓸 인재를 생각하느라 자리에 누워도 잠자는 것을 잊고 배가 고파도 먹는 것을 잊는 것이다.[是以夙夜思念國家之用, 寢而忘寐, 飢而忘食.]”라고 한 데서 보인다.
- 소위[所爲] 하는 일. 이미 해 놓은 일이나 짓. 하고 있거나 해 놓은 일. 이미 저질러 놓은 일이나 짓. 하고자 하는 것. 소행(所行).
- 포참[抱慚] 포괴(抱愧). 부끄러워하다. 부끄럽게 여기다.
- 득무[得無] 조금도 ~하지 않다. 어찌 ~아니랴. 혹시 ~이 아닐까. 설마 ~은 아니겠지. 설마 ~할 리가 없지?
- 금영[衾影] 이불과 그림자. 금영무참(衾影無慚). 혼자 있을 때의 품행을 경계하는 말이다. 신론(新論) 신독(愼獨)에 “홀로 서 있을 때는 그림자에 부끄럽지 않게 하고, 혼자 잠잘 때는 이불에 부끄럽지 않게 해야 한다.[獨立不慚影, 獨寢不慚衾.]”라고 한 말에서 유래하였다.
- 금영무참[衾影無慚] 이불이나 자기 그림자에 대해서도 부끄러운 짓을 하지 않음. 남이 안 보는 데서도 언행(言行)을 삼가 양심(良心)에 조금도 부끄러울 것이 없음. 아주 정직하다. 양심에 조금도 부끄러울 것이 없다. 매우 정직하다. 혼자 있을 때의 품행을 경계하는 말이다. 송(宋)나라 때의 학자 채원정(蔡元定)이 귀양지에 있을 적에 배우러 온 생도들에게 써준 훈계의 글에 보이는 내용으로, 그 글에 이르기를, “홀로 걸어갈 때에는 그림자에 부끄럽지 않고, 홀로 잠잘 때에는 이불에 부끄럽지 않을 것이니, 내가 죄를 얻었다고 하여 해이해지지 말라.[獨行不愧影, 獨寢不愧衾, 勿以吾得罪故遂懈.]”라고 하였다. <宋史 卷434 蔡元定列傳>
- 광음[光陰] 햇빛과 그늘 또는 낮과 밤이라는 뜻으로 시간이나 세월을 이르는 말. 흘러가는 시간(時間), 세월(歲月), 때. 가는 세월. 광(光)은 해[日], 음(陰)은 달[月]을 가리켜 해와 달이 번갈아 뜨고 지니 시간이 흘러 세월이라는 뜻이 된다. 참고로, 이백(李白)의 시 춘야연도리원서(春夜宴桃李園序)에 “천지는 만물의 여관이요, 광음은 백대의 과객이라.[夫天地者萬物之逆旅, 光陰者百代之過客.]”라고 하였고, 송(宋)나라 유자환(劉子寰)의 시 옥루춘(玉樓春)에 “부들꽃은 쉽게 지고 갈대꽃은 일찍 지고, 객지의 광음은 마치 새처럼 날아가네.[蒲花易晩蘆花早, 客裏光陰如過鳥.]”라고 하였고, 소식(蘇軾)의 시 수세(守歲)에 “다해 가는 한 해를 알고자 할진댄, 골짜기 들어가는 뱀과 같아라. 긴 비늘 반이 이미 들어가 없으니, 가는 뜻을 그 누가 막을 수 있으랴.[欲知垂盡歲, 有似赴壑蛇. 脩鱗半已沒, 去意誰能遮.]”라고 하였고, 주희(朱熹)의 시 우성(偶成)에 “소년은 늙기 쉽고 학업은 이루기 어렵나니, 한 치의 시간도 가벼이 여겨서는 안 되리. 못가 봄풀의 꿈을 채 깨기도 전에, 뜰 앞의 오동잎에 벌써 가을 소리가 들리네.[少年易老學難成, 一寸光陰不可輕. 未覺池塘春草夢, 階前梧葉已秋聲.]”라고 한 데서 보인다.
- 수효[收效] 효과를 거두다. 성공하다.
- 상유[桑榆/桑楡] 뽕나무와 느릅나무. 만년(晩年)이나 노경(老境)을 비유하는 말. 노인(老人)의 사기(死期). 늙어서 죽음에 임박한 일. 노년이나 만년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해질 무렵. 동쪽에 상대하여 서쪽을 이르는 말. 간혹 이전에 실패한 것을 이후에 회복한다는 의미로도 쓰임. 서쪽으로 지는 햇빛이 뽕나무와 느릅나무[桑楡] 가지 끝에 비친다는 말에서 유래하였다. 태평어람(太平御覽) 제3권과 회남자(淮南子)에 이르기를 “해가 서편에 드리우면 햇살이 나무 끝에 걸린다. 이를 일러 상유(桑楡)라 한다.[日西垂, 景在樹端, 謂之桑榆.]”라고 하였고, 세설신어(世說新語) 언어(言語)에 진(晉)나라 사안(謝安)이 왕희지(王羲之)에게 “중년 이래로 애상(哀傷)에 젖곤 하는데, 친우와 헤어지고 나면 며칠간은 우울하기만 하다.[中年傷於哀樂, 與親友別, 輒作數日惡.]”라고 하니, 왕희지가 “나이가 만년에 이르면 자연히 그렇게 되기 마련이다. 그런 때는 음악으로 기분을 풀어야 하는데, 다만 아이들이 알아서 즐거운 흥취를 방해받을까 그것이 늘 걱정이다.[年在桑楡, 自然至此, 正賴絲竹陶寫, 恒恐兒輩覺, 損欣樂之趣.]”라고 답한 고사에서 보이고, 후한서(後漢書) 권17 풍이열전(馮異列傳)과 권24 마원열전(馬援列傳)에, 후한(後漢)의 풍이(馮異)가 적미(赤眉)와 싸워 처음에는 패했다가 나중에는 승리하였는데, 이에 대해서 광무제(光武帝)가 “처음에는 비록 회계(回谿)에서 날개를 늘어뜨렸지만 마침내 민지(黽池)에서 날개를 떨칠 수 있었으니, 동우(東隅)에서는 잃었다가 상유(桑楡)에서 거두었다 할 만하다.[始雖垂翅回谿 終能奮翼黽池 可謂失之東隅 收之桑楡]”라고 칭찬한 고사에서 보인다. 동우(東隅)는 해가 뜨는 곳이고, 상유(桑楡)는 해가 지는 곳으로, 동우는 인생의 초년(初年)을, 상유는 인생의 만년(晩年)을 뜻하는 말로 쓰인다.
【譯文】 人生無愧懟, 霞光滿桑榆.
每天早晚的所作所爲, 沒有一件中暗中想來有愧於心的. 人生的光陰雖然已經逝去, 但是總希望在晚年能看到一生的成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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