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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전[蠻牋], 만전공일식[萬錢供一食], 만전승학[萬錢乘鶴], 만전지책[萬全之策]


만전[蠻氈]  남방 소수민족들이 사는 곳에서 만든 담요를 가리킨다. 범성대(范成大)의 계해우형지(桂海虞衡志) 지기(志器)에 “만전은 서남쪽 여러 소수민족들이 사는 곳에서 나는데 대리족들이 만든 것을 최고로 친다. 남쪽 사람들은 낮에는 그것을 입고 밤에는 덮는데 귀천이 없이 사람들마다 모포를 갖고 있다.[蠻氈出西南諸蕃, 以大理者爲最. 蠻人晝披夜臥, 無貴賤, 人有一氈.]라고 하였다.

만전[蠻牋]  당(唐) 나라 때 고려지(高麗紙)의 별칭이며, 혹은 촉(蜀) 땅에서 생산되는 질이 좋은 채색지(彩色紙)를 가리키기도 하는데, 일반적으로 시를 쓰는 종이를 가리킨다. 보통 만전(蠻箋)이라고 한다.

만전[縵田]  밭두둑이나 도랑을 만들지 않은 밭을 말한다. 직파법으로 농사를 짓는데, 생산량이 아주 낮았다.

만전[蠻箋]  품질 좋은 종이를 뜻하는 말로, 당(唐)나라 때에 고려(高麗)에서 생산되는 종이의 별칭으로 사용하였으며, 촉(蜀) 땅에서 생산되는 우수한 채색전지(彩色箋紙)를 지칭하기도 한다.

만전[蠻毡]  유목을 하는 소수민족들이 만든 양탄자를 뜻한다.

만전공일식[萬錢供一食]  만 전(錢) 써서 한 끼 식사 차림. 진(晉)나라 때의 정승인 하증(何曾)은 굉장한 식도락가로, 한 끼 식사에 만 전을 들여서 음식을 장만하였어도 먹을 만한 것이 없다고 한탄하였다 한다. 하증(何曾)은 중국 남북조시대 진(晉) 나라의 문신이다. 하소(何劭)의 아버지로, 무제(武帝) 때 태위(太尉)를 지냈다. 의식(衣食)에 사치를 부려 하루에 1만 전(錢) 상당의 성찬을 먹고 지냈다 하며, 위(魏) 나라의 권신(權臣) 사마의(司馬懿)와 교분을 쌓았다.

만전성기[滿前聲妓]  문천상(文天祥)은 원래 매우 사치한 생활을 하여 항상 기생이 앞에 가득할 정도였는데, 원(元) 나라가 침공해 오자 가산을 모두 털어 군비(軍費)로 충당했다 한다. <宋史 卷四百十八 文天祥列傳>

만전승학[萬錢乘鶴]  만전(萬錢)을 두르고 학을 탐. 현실에선 이루기 힘든 지극한 소망을 말한다. 옛날에 네 사람이 소원을 각기 말하는데, 한 사람은 “양주 자사(揚州刺史)가 소원이다.”라 하고, 한 사람은 “나는 많은 재물이 소원이다.”라 하고, 한 사람은 “학을 타고 공중을 나는 것이 소원이다.” 하였는데, 최후의 한 사람은 “나는 허리에 십만 관(貫)의 돈을 두르고 학을 타고 양주의 공중을 나는 것이 소원이다.”라고 하여 세 사람의 소망을 겸하려고 하였다는 고사가 있다. <古今事文類聚 後集 卷42 騎鶴上揚州>

만전지계[萬全之計]  아주 안전(安全)한 계획(計劃). 실패의 위험성이 조금도 없는 안전한 계책. 만전지책(萬全之策).

만전지책[萬全之策]  가장 완벽한 계획이나 계책. 모든 것이 온전한 계책. 매우 완전한 계책. 한치의 허점도 없는 완전한 대책을 이른다.

만전책[萬全策]  아주 안전(安全)하거나 완전(完全)한 계책(計策).

만전필극[萬全必克]  완전무결하게 하여 반드시 이김. 십전필극(十全必克). 제갈량(諸葛亮)이 제1차 북벌에 나섰을 때, 위연(魏延)이 정예병 5천을 데리고 자오곡(子午穀)을 통해 장안에 진격하겠다는 계책을 내었으나, 제갈량은 “위험한 길을 지나는 것은 안전하게 평탄한 길을 따라가서 농우를 평정하는 것만 못하니 만전을 다하면 반드시 이겨 걱정이 없을 것이다.[過於懸危, 不如安從坦道, 可以平取隴右, 十全必克而無虞.]”라고 하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資治通鑑 卷71 魏記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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