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정방[滿庭芳] 사패(詞牌)의 명칭이며, 뜰에 가득한 꽃이라는 뜻이다. 본사(本詞)의 운목(韻目)은 ‘지(支)’인데, 운자 두 개가 해당 운목이 아닌 것을 쓰고 있다. ‘비(肥)’는 ‘미(微)’ 자 운목에 속하며, ‘예(倪)’는 ‘제(齊)’ 자 운목에 속한다. 참고로 본사의 사패 형식은 다음과 같다. 사패의 형식이 대체로 지켜지기는 하지만, 어떤 사는 사패 형식 자체가 여러 유형인 것도 있어,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다.
만정방[滿庭芳] 원나라의 음운학자이자 산곡(散曲) 작가인 주덕청(周德淸)은 호는 정재(挺齋)이다. 북송의 사인(詞人) 주방언(周邦彦)의 후손으로 악부에 능했고 음률에 정통했다. 그의 산곡은 원래 수량이 매우 많았고 당시의 영향 또한 비교적 컸는데, 지금은 그 규모를 정확히 알 수 없다. 작품의 소재도 다양해서 풍경을 묘사한 것, 여인을 그리는 심정을 나타낸 것, 떠도는 자의 쓸쓸함을 표현한 것 등이 있으며, 역사적인 인물을 평가한 작품도 있다. 대표적인 저서인 중원음운(中原音韻)은 1324년 씌어졌는데 북곡(北曲) 창작상의 용자(用子), 압운(押韻)의 규율 등을 총괄하고 있는 최초의 북음운서(北音韻書)이다. 저서로는 중원음운(中原音韻), 작사십법(作詞十法) 등이 있고 그 외 만정방(滿庭芳), 절계령(折桂令), 색홍안·심양즉경 등의 산곡(散曲) 작품이 현전한다.
만정봉[幔亭峯] 무이산 봉우리 중 하나로 철불장(鐵佛嶂)이라고도 한다. 무이산의 산신인 무이군(武夷君)이 마을 사람과 함께 산의 정상에서 만났는데, 비단 장막으로 된 집이 매우 성대하여 그 거처를 만정이라 하였으므로 여기서 이름이 유래하였다.
만정순[萬正淳] 송(宋)나라 흥국군(興國軍) 대야(大冶) 사람인 만인걸(萬人傑)로, 정순(正淳)은 그의 자이며, 정순(正純)이라고도 한다. 호는 지재(止齋)이다. 처음에 육구령(陸九齡)에게 배우다가 후에 육구연(陸九淵)의 제자가 되었고, 그 후에 남강(南康)에 가서 주희(朱熹)를 만난 뒤로 주희의 제자가 되었다. <宋元學案 卷69>
만정제신[滿廷諸臣] 조정(朝廷)의 모든 벼슬아치. 만조백관(滿朝百官).
만정채옥[幔亭彩屋] 무이산(武夷山)의 산신인 무이군(武夷君)이 진 시황(秦始皇) 2년 어느 날, 마을 사람들에게 “너희들은 8월 15일에 산꼭대기에 모여라.”라고 하였다. 중추절이 되어 마을 사람들이 모두 모이니, 휘장을 두른 만정(幔亭)과 비단으로 꾸민 채옥(彩屋)이 보였는데, 붉은 구름과 자색 구름으로 자리를 깔고 기물을 몹시 갖추어 차려놓고는 남녀를 나누어 앉게 하였다. 하늘에서 사람 모습은 보이지 않고 말소리만 들리더니 이윽고 음악 소리가 들려왔다. 이날 마을 사람들은 여기에 차려진 음식과 술을 실컷 즐겼다고 한다. <淵鑑類函 卷20 歲時>
만정청초증인심[滿庭靑草證人心] 푸르게 돋아나는 풀의 ‘살려는 뜻[生意]’이나 사람 마음의 생생(生生)하는 뜻이나 매일반이라는 말이다. 북송(北宋)의 성리학자 염계(濂溪) 주돈이(周敦頤)가 창 앞의 풀을 베지 않거늘, 정명도(程明道)가 그 까닭을 물으니 “나 자신의 뜻과 똑같기 때문이다.[與自家意思一般]”라고 하였다. <近思錄 卷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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