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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예도 치욕도 없이 원만하게 모나지 않게 [元氣渾然원기혼연 圭角不露규각불로] <채근담>


비리고 더러운 데는 파리 등에 모여 빨고

꽃다운 향기에는 벌 나비 서로 달려드니

이에 군자는 더러운 업적 만들지 않고

좋은 명성 또한 세우려 하지 않는다.

오직 원기를 원만히 하고 나를 내세우지 않으면

이것이 바로 몸을 지켜 세상을 사는 안락한 집이다.


羶穢則蠅蚋叢嘬,  芳馨則蜂蝶交侵.
전예즉승예총최,  방형즉봉접교침.
故君子不作垢業,  亦不立芳名.
고군자부작구업,  역불립방명.
只是元氣渾然,  圭角不露,  便是持身涉世一安樂窩也.
지시원기혼연,  규각불로,  변시지신섭세일안락와야.

<菜根譚채근담 淸刻本청각본(乾隆本건륭본) : 應酬응수>


  • 전예[羶穢]  누린내가 나고 더러움. 비린내가 나고 더러움.
  • 승예[蠅蚋]  파리와 등에. 파리와 모기. 참고로, 맹자(孟子) 등문공 상(滕文公上)에 “상고시대에 자신의 어버이가 죽자 들어다 구렁에 버리고 장례를 치르지 않은 자가 있었다. 후일에 그곳을 지나게 되었는데, 여우와 살쾡이가 파먹고 파리와 등에가 모여서 빨아먹고 있었다. 그는 무안해져 이마에 땀이 났으며 곁눈으로 보고 차마 똑바로 보지 못하였으니, 땀이 난 것은 남들이 보기 때문에 난 것이 아니라 그 마음이 얼굴에 드러난 것이다. 그는 집으로 돌아와 삼태기와 들것에 흙을 담아다가 시신을 가렸으니, 시신을 가린 것이 진실로 옳다면 효자와 어진 사람이 자신의 어버이를 가리는 것은 또한 반드시 도리가 있을 것이다.[蓋上世, 嘗有不葬其親者, 其親死, 則擧而委之於壑. 他日過之, 狐狸食之, 蠅蚋姑嘬之, 其顙有泚睨而不視. 夫泚也, 非爲人泚, 中心達於面目. 蓋歸反虆梩而掩之, 掩之誠是也, 則孝子仁人之掩其親, 亦必有道矣.]”라고 한 데서 보인다.
  • 취전각예[聚羶卻蚋]  누린내 나는 것을 모아놓고 파리를 쫓음. 참고로, 장자(莊子) 서무귀(徐无鬼)에 “몸을 움츠려 뻗어 나가는 기상이 없는 사람은 순 임금과 같은 사람이다. 양고기는 개미를 사모하지 않는데 개미는 양고기를 사모하니, 이는 양고기가 누린내를 풍기기 때문이다. 순 임금의 행동에도 누린내 나는 구석이 있다. 그래서 백성이 좋아하여 모여드는 것이다.[卷婁者, 舜也. 羊肉不慕蟻, 蟻慕羊肉, 羊肉羶也. 舜有羶行, 百姓悅之.]”라고 하였고, 한비자(韓非子) 외저설(外儲說)에 “사람은 누구나 왼손으로 네모꼴을 그리면서 동시에 오른손으로 원형을 그릴 수는 없다. 고기를 가지고 개미를 쫓으려고 하면 개미는 더욱 많아질 것이며, 생선으로 파리를 쫓으려 하면 파리는 더욱 모여들 것이다.[人莫能左畫方而右畫圓也. 以肉去蟻, 蟻愈多. 以魚驅蠅, 蠅愈至.]”라고 하였다.
  • 방형[芳馨]  방훈(芳薰). 꽃향기. 향기로운 꽃. 향초. 아름다운 명성. 참고로, 초사(楚辭) 구가(九歌) 상부인(湘夫人)에 “여러 가지 풀을 모아 정원을 채우고, 향기로운 꽃을 쌓아 문을 덮으리.[合百草兮實庭, 建芳馨兮廡門.]”라고 하였다.
  • 봉접[蜂蝶]  벌과 나비. 벌과 나비를 아울러 이르는 말.
  • 구업[垢業]  더러운 일. 수치스러운 일.
  • 방명[芳名]  높은 명성. 좋은 평판. 남에게서 칭찬(稱讚)을 듣는 좋은 평판(評判)이나 이름. 꽃다운 이름이라는 뜻으로 남의 이름을 높여 이르는 말로 주로 젊은 여성에게 쓴다.
  • 원기[元氣]  마음과 몸의 활동력. 본디 타고난 기운(氣運). 만물이 자라는 데 근본이 되는 정기(精氣). 만물(萬物)이 이루어지는 근본의 힘. 사람의 생명 활동을 유지하는 데서 근본으로 되는 기(氣). 기운과 정력. 원기(元氣)는 천지의 정기(精氣)로 만물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도교(道敎)에서는 태양(太陽)과 태음(太陰)과 중화(中和)를 세 개의 원기라 일컫는다. 참고로, 두보(杜甫)의 시 유소부화산수장가(劉少府畫山水障歌)에 “원기가 흥건하여 장자(障子)에 아직도 축축이 젖어 있는 듯하니, 진재가 위로 올라가 하소연하여 하늘도 응당 울었으리.[元氣淋漓障猶濕, 眞宰上訴天應泣.]”라고 한 데서 보이고, 회암집(晦庵集) 권85 육선생화상찬(六先生畫像讚) 명도선생(明道先生)에 “봄기운처럼 따뜻하고 산처럼 우뚝 섰으며, 옥빛처럼 아름답고 종소리처럼 쟁쟁하니, 원기가 모여 혼연히 천연으로 이루었네.[揚休山立, 玉色金聲, 元氣之會, 渾然天成.]”라고 한 데서 보인다.
  • 혼연[渾然]  다른 것이 조금도 섞이지 아니한 고른 모양. 차별이나 구별이 없는 모양. 모나지도 아니하고 결점도 없는 원만한 모양. 구별이나 차별 또는 결점이 없다. 완전히. 음양(陰陽)으로 분화되기 전의 태극(太極)처럼 부족한 것이 전혀 없고 모든 것이 하나로 뭉쳐진 혼돈(混沌) 상태를 이른다. 참고로, 논어(論語) 이인(里仁)에 “우리 도는 한 가지 이치가 만 가지 일을 꿰뚫고 있다.[吾道一以貫之.]”라고 하였는데, 집주에 “성인의 마음은 혼연히 한 이여서 널리 응하고 곡진히 마땅하여 용이 각기 같지 않다.[聖人之心, 渾然一理而泛應曲當, 用各不同.]”라고 한 데서 보이고, 회암집(晦庵集) 권85 육선생화상찬(六先生畫像讚) 명도선생(明道先生)에 “봄기운처럼 따뜻하고 산처럼 우뚝 섰으며, 옥빛처럼 아름답고 종소리처럼 쟁쟁하니, 원기가 모여 혼연히 천연으로 이루었네.[揚休山立, 玉色金聲, 元氣之會, 渾然天成.]”라고 한 데서 보이고, 북송(北宋)의 성리학자 양시(楊時)의 구산어록(龜山語錄) 권2에 “물건에 뾰족한 부분이 있으면 사람의 눈을 많이 찌를뿐더러 이지러지기가 쉬운 법이니, 군자의 처세는 원만하고 자연스럽게 해야 한다. 그러면 남들이 싫어서 버리지 않을 것이다.[物有圭角, 多刺人眼, 目亦易玷闕, 故君子處世, 當渾然天成, 則人不厭棄矣.]”라고 한 데서 보인다.
  • 원기혼연[元氣渾然]  본래의 기운이 자연스럽게 하나로 어우러진 상태. 참고로, 회암집(晦庵集) 권85 육선생화상찬(六先生畫像讚) 명도선생(明道先生)에 “봄기운처럼 따뜻하고 산처럼 우뚝 섰으며, 옥빛처럼 아름답고 종소리처럼 쟁쟁하니, 원기가 모여 혼연히 천연으로 이루었네.[揚休山立, 玉色金聲, 元氣之會, 渾然天成.]”라고 하였다.
  • 규각[圭角]  사람의 언행이나 뜻이 모가 나서 남과 잘 화합하지 못함. 말이나 행동이 모가 나서 원만하지 못함. 성격·행동 등이 모가 남. 사물이 서로 들어맞지 않음. 강정(剛正)하고 지조(志操)가 엄준(嚴峻)함. 자신의 뜻을 강하게 주장함. 봉망(鋒芒). 규(圭)는 옛날 벼슬아치들의 신분을 나타내는 신표로 위가 뾰족하고 밑이 네모난 벽옥(璧玉: 규옥圭玉)인데, 이 벽옥의 뾰족한 모서리가 규각(圭角)이다. 성품이 깐깐하여 시비(是非)와 곡직(曲直)을 잘 나타냄을 이르며, 때로는 예의와 규범을 의미하기도 한다. 참고로, 북송(北宋)의 성리학자 양시(楊時)의 구산어록(龜山語錄) 권2에 “물건에 뾰족한 부분이 있으면 사람의 눈을 많이 찌를뿐더러 이지러지기가 쉬운 법이니, 군자의 처세는 원만하고 자연스럽게 해야 한다. 그러면 남들이 싫어서 버리지 않을 것이다.[物有圭角, 多刺人眼, 目亦易玷闕, 故君子處世, 當渾然天成, 則人不厭棄矣.]”라고 하였고, 소철(蘇轍) 신사책(臣事策)에 “근세 이래로 어사(御史)가 된 사람은 정신을 바짝 차려서 스스로 그 규각(圭角)을 보이지 않는 일이 없고, 강개하게 죄목을 늘어놓는 일에 있어서는 천하의 원망을 돌아보지 않습니다.[自近歲以來, 爲御史者, 莫不洗濯磨淬, 以自見其圭角, 慷慨論列, 不顧天下之怨.]”라고 한 데서 보인다.
  • 규각불로[圭角不露]  자신의 개성이나 모난 부분을 밖으로 드러내지 않음.
  • 지신[持身] 제 몸의 처신(處身). 지신하다. 처신하다. 몸가짐을 하다. 몸을 지키다. 지궁(持躬).
  • 섭세[涉世]  세상(世上)을 살아나감. 세상을 살아가다. 세상 물정을 겪다. 세상 경험을 쌓다. 세상사를 겪다. 세상일을 경험하다. 당언겸(唐彦謙)의 시 제삼계(第三溪)에 “세상일 꿈 같단 걸 일찍부터 알아서, 봄비 내린 뒤 때 산밭 가는 걸 버려둘 수 없었네.[早知涉世眞成夢, 不棄山田春雨犁.]”라고 하였다.
  • 안락와[安樂窩]  안락한 움집. 편안한 집. 좁으나 편안하고 즐거움을 느끼는 움집. 안락한 곳. 은사의 처소. 비록 누추하지만 마음 편히 살 수 있는 거처를 뜻하는 말로 쓰인다. 안락와는 본디 낙양현(洛陽縣) 천진교(天津橋) 남쪽에 있는 거실(居室) 이름이다. 송대(宋代)의 유학자인 소옹(邵雍)은 인종(仁宗), 신종(神宗) 연간을 살면서 한 번도 벼슬길에는 나가지 않고 오직 학문에만 전념하였으며, 당대의 현상(賢相)인 부필(富弼), 사마광(司馬光), 여공저(呂公著) 등과 낙양(洛陽)에서 서로 종유(從遊)하였는데, 친구들의 도움으로 오대(五代) 시대 주(周) 나라 안심기(安審琦)의 고택(故宅)을 얻어 거처하면서 항상 유유자적하며 안락와(安樂窩)라 명명하고 또 안락선생(安樂先生)이라 자호(自號)하였던 데서 온 말이다. 참고로, 송사(宋史) 권427 소옹열전(邵雍列傳)에 “소옹(邵雍)이 처음 낙양에 왔을 때 사는 집이 매우 누추하여 바람과 비를 막지 못해서 몸소 나무를 하고 불을 때서 부모를 섬겼다. 비록 평상시에는 자주 굶주렸지만 화락하며 매우 즐거워하는 것이 있었으나 사람들은 그의 뜻을 능히 살피지 못하였다. 부모님의 장례를 치룰 때에는 애통함이 예(禮)를 다하였다. 부필(富弼), 사마광(司馬光, 여공저(呂公著) 등 제현은 퇴거하여 낙양에 있었는데 소옹을 공경하며 항상 서로 교유하며 그를 위하여 원택(園宅)을 사주었다. 소옹은 매일 농사를 지으면서 근근이 생계를 이루었으니 그의 거처를 ‘안락와(安樂窩)’로 이름 지었는데 이로 인하여 자호를 ‘안락선생(安樂先生)’이라고 하였다. 아침에는 향을 태워서 정좌를 하였고 밤에는 서너 잔의 술을 따라 마시다가 조금 취하면 바로 그치고 언제나 대취하지 않았으며 흥이 오르면 종종 시를 읊으며 스스로 노래를 불렀다. 봄과 가을에는 성 안을 나와 돌아다녔고, 바람이나 비가 내리면 항상 집을 나서지 않다가, 집 밖으로 나가면 작은 수레를 타고서 사람 한명이 이를 이끌며 마음 가는 곳을 돌아다녔다. 사대부의 집안에서 그의 수레 소리를 알아채면 다투어 서로 환대하였고, 아이들과 노비들은 모두 기뻐하면서 ‘우리 집에 선생이 오셨다’고 말하며 다시 그의 성과 자를 칭하지 않고, 혹 이삼일 머무르다 떠났다. 호사가들은 별도로 소옹이 거처하는 곳처럼 집을 만들어서 그가 오기를 기다리며 ‘행와(行窩)’라고 이름하였다.[初至洛, 蓬蓽環堵, 不芘風雨, 躬樵爨以事父母, 雖平居屢空, 而怡然有所甚樂, 人莫能窺也. 及執親喪, 哀毀盡禮. 富弼·司馬光·呂公著諸賢退居洛中, 雅敬雍, 恒相從遊, 為市園宅. 雍歲時耕稼, 僅給衣食. 名其居曰 ‘安樂窩’, 因自號安樂先生. 旦則焚香燕坐, 晡時酌酒三四甌, 微醺即止, 常不及醉也, 興至輒哦詩自詠. 春秋時出遊城中, 風雨常不出, 出則乘小車, 一人挽之, 惟意所適. 士大夫家識其車音, 爭相迎候, 童孺廝隸皆歡相謂曰: ‘吾家先生至也.’ 不復稱其姓字. 或留信宿乃去. 好事者別作屋如雍所居, 以候其至, 名曰 ‘行窩’.]”라고 하였다.

【譯文】 元氣渾然,  圭角不露.
羶臭汙穢蒼蠅蚊子就聚集姑嘬,  芳香甘馨蜜蜂蝴蝶就交互侵擾.  所以有才德的人不做恥辱事情,  也不樹立美好名聲.  只要是本元精氣質樸純眞,  不露鋒芒,  就是把持身心涉曆世事的一個安樂窩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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