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魏)나라 혜왕(惠王) 영(瑩)이 제(齊)나라 전후(田侯) 모(牟)와 맹약을 맺었는데, 전후(田侯) 모(牟)가 그 맹약을 배반했다. 위나라 혜왕은 분노하여 사람들을 시켜 그를 찔러 죽이려 하였다.
위(魏)나라 서수(犀首: 공손연公孫衍)이 그 이야기를 듣고 부끄럽게 여기면서 말하였다.
“임금님께서는 만승의 군주이신데도 필부나 하는 방법으로 원수를 갚으려 하고 계십니다. 제게 20만의 군사를 내려주시어 임금님을 위해 제나라를 공격하게 하여 주십시오. 그리하면 제나라 백성들을 포로로 사로잡고 제나라의 소와 말들을 끌어옴으로써 제나라 임금이 속이 타서 등창이 터지게 만들겠습니다. 그런 뒤에 그 나라를 빼앗아버리겠습니다. 제(齊)나라 장수 전기(田忌)를 달아나게 만들고 그를 잡아 매를 쳐서 척추를 부러뜨려 버리겠습니다.”
위(魏)나라의 계자(季子)가 그 이야기를 듣고는 부끄럽게 여기며 말하였다.
“열길 높이의 성을 쌓아놓았을 때, 그 열길 높이의 성을 다시 허물어버린다면 이것을 쌓은 일꾼들이 고생만 한 결과가 됩니다. 지금 전쟁이 일어나지 않은지 7년이 되었는데, 이는 주군께서 왕자(王者)가 될 수 있는 정치의 기반입니다. 전쟁을 주장하는 공손연은 나라를 어지럽히는 사람입니다. 그의 말을 들어주셔서는 안 됩니다.”
위(魏)나라의 화자(華子)가 그 말을 듣고는 추하게 여기며 말하였다.
“제나라를 정벌하자는 얘기를 하는 자는 혼란을 일삼는 사람입니다. 제나라를 정벌하지 말자고 그럴듯하게 말하는 자 또한 혼란을 일삼는 사람입니다. 제나라를 정벌하자고 말하는 자와 제나라를 정벌하지 말자고 말하는 자가 혼란을 일삼는 자라고 말하는 자도 역시 나라를 어지럽히는 사람입니다.”
위나라 혜왕이 말하였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습니까?”
화자가 말하였다.
“임금님께서는 올바를 도를 추구하기만 하시면 그 뿐입니다.”
혜자(惠子)가 그런 말들을 듣고는 위나라의 유도자(有道者) 대진인(戴晉人)을 혜왕에게 소개하여 만나게 하였다.
대진인이 혜왕에게 말하였다.
“임금님께서는 달팽이를 알고 계십니까?”
혜왕(惠王)이 말하였다.
“알고 있습니다.”
대진인(戴晉人)이 말하였다.
“달팽이의 왼쪽 뿔에 나라 하나가 있는데 촉씨(蠻氏)라고 합니다. 달팽이의 오른쪽 뿔에도 한 나라가 있는데 만씨(觸氏)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두 나라가 땅을 서로 빼앗으려고 전쟁을 벌였습니다. 쓰러진 시체가 수만이나 되었고, 패배하여 도망치는 자들을 추격하여 십오일 만에야 되돌아 왔습니다.”
혜왕이 말하였다.
“그 무슨 허무맹랑한 이야기입니까?”
대진인이 말하였다.
“제가 임금님을 위하여 이 이야기를 실증해 보이겠습니다. 임금님께서 생각하시기에 사방과 하늘과 땅을 생각할 때 한계가 있다고 여기십니까?”
혜왕이 말하였다.
“그야 무한하겠지요.”
대진인이 말하였다.
“마음을 한계도 없는 경지에서 노닐게 할 줄 안다면, 돌이켜 이 세상의 나라를 생각해 볼 때, 나라 하나쯤은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없는 것 같기도 한 작은 존재로 여겨질 것입니다.”
혜왕이 말하였다.
“그렇겠지요.”
대진인이 말하였다.
“이 세상에 위(魏)라는 나라가 있고 위나라 안에 서울인 량(梁) 땅이 있고 양 땅 안에 임금님께서 계신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임금님의 존재와 달팽이 오른쪽 뿔 위의 군주 만씨(蠻氏)와 무슨 다른 점이 있겠습니까?”
혜왕이 말하였다.
“다를 것이 없겠군요.”
대진인이 나가자, 혜왕은 멍하니 자신도 잊은 듯이 있었다.
대진인이 나가고 난 뒤 곧 혜자(惠子)가 들어와 알현하니, 혜왕이 말하였다.
“그 손님은 대단한 사람이었습니다. 성인이라도 그만은 못할 것입니다.”
혜자가 말하였다.
“피리를 불면 고운 피리소리가 나지만, 칼자루 끝에 뚫린 구멍에 입을 대고 불면 픽하고 작은 바람 새는 소리만 날 뿐입니다. 요(堯)임금과 순(舜)임금은 사람들이 기리는 성인(聖人)입니다. 하지만 요(堯)와 순(舜)을 대진인에 비교하여 말하는 것은 칼자루 끝에서 작은 바람 소리가 한 번 나는 것과 같을 뿐입니다.”
<장자(잡편) : 제25편 칙양>
魏瑩與田侯牟約, 田侯牟背之. 魏瑩怒, 將使人刺之.
犀首聞而恥之, 曰: 「君為萬乘之君也, 而以匹夫從讎! 衍請受甲二十萬, 為君攻之, 虜其人民, 係其牛馬, 使其君內熱發於背, 然後拔其國. 忌也出走, 然後抶其背, 折其脊.」
季子聞而恥之, 曰: 「築十仞之城, 城者既十仞矣, 則又壞之, 此胥靡之所苦也. 今兵不起七年矣, 此王之基也. 衍亂人, 不可聽也.」
華子聞而醜之, 曰: 「善言伐齊者, 亂人也 ; 善言勿伐者, 亦亂人也 ; 謂伐之與不伐亂人也者, 又亂人也.」 王曰: 「然則若何?」 曰: 「君求其道而已矣.」
惠子聞之而見戴晉人. 戴晉人曰: 「有所謂蝸者, 君知之乎?」 曰: 「然.」 戴晉人曰: 「有國於蝸之左角者曰觸氏, 有國於蝸之右角者曰蠻氏, 時相與爭地而戰, 伏尸數萬, 逐北旬有五日而後反.」 君曰: 「噫! 其虛言與?」 曰: 「臣請為君實之. 君以意在四方上下有窮乎?」 君曰: 「無窮.」 曰: 「知遊心於無窮, 而反在通達之國, 若存若亡乎?」 君曰: 「然.」 曰: 「通達之中有魏, 於魏中有梁, 於梁中有王. 王與蠻氏, 有辯乎?」 君曰: 「無辯.」 客出而君惝然若有亡也.
客出, 惠子見. 君曰: 「客, 大人也, 聖人不足以當之.」 惠子曰: 「夫吹筦也, 猶有嗃也 ; 吹劍首者, 吷而已矣. 堯·舜, 人之所譽也 ; 道堯·舜於戴晉人之前, 譬猶一吷也.」 【莊子(雜篇) : 第25篇 則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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