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평[萬坪] 만평은 점고만평(點考萬坪)의 줄임말이다. 안정복(安鼎福)이 성호(星湖)에게 보낸 편지에 “옛날 처음 서울에 들어갈 때 길이 삼전포(三田浦)의 큰 들판을 지났는데 점고만평(點考萬坪)이라는 곳이었습니다. 그 명칭의 유래를 물었더니 ‘광평대군(廣坪大君)이 여기에 궁(宮)을 지었기 때문에 마을 이름을 궁(宮)이라 하고, 이 들판이 모두 광평대군의 절수(折受)인데 소작자가 점고(點考)하여 종자(種子)를 받은 것이 만(萬)이나 되었기 때문에 점고만(點考萬)이라 하였다.’고 하였습니다. 뒤에 지지(地志)를 상고하니, 이 들판에는 옛날에 정금원(鄭金院)이 있었는데, 이 들판이 이름을 얻은 것은 과연 이것 때문이었습니다. 이것을 통해 비로소 우리나라 사람이 이름을 인하여 말을 만든 것이 모두 이런 따위임을 알았습니다.”라는 말이 나온다.
만포[蠻布] 만포(蠻布)는 중국 남방에 살던 변방 민족이 짠 베를 말한다. 소식(蘇軾)이 일찍이 만포 활집을 하나 샀는데, 거기에는 매요신(梅堯臣)의 시 춘설(春雪)이 직조(織組)되어 있었다는 이야기가 구양수(歐陽脩)의 육일시화(六一詩話)에 실려 있다.
만포[灣包] 역관의 팔포(八包) 정액과 같이 일정액의 정액 무역권을 만상(灣商)에게 허가하였기 때문에 만포라고도 불렀는데 책문후시(柵門後市)를 말한다.
만포궁의[蠻布弓衣] 만포(蠻布)로 만든 활집. 북송(北宋) 구양수(歐陽脩)의 시화집 육일시화(六一詩話)에 “학사 소자첨은 촉 지방 사람이다. 일찍이 육정감에서 서남 지역 오랑캐 사람이 파는 만포로 만든 활집을 얻었는데, 거기에 매성유의 춘설(春雪) 시가 수놓아져 있었다. 이 시는 매성유의 시집 중에 절창이 되지 못하는데, 대개 매성유의 명성이 천하에 떨쳐져 그가 지은 시마다 모두 이적들에게 전파되고, 이역에 사는 사람들이 이처럼 귀중하게 여긴 것이다.[蘇子瞻學士, 蜀人也. 嘗于淯井監, 得西南夷人所賣蠻布弓衣, 其文織成梅聖俞春雪詩. 此詩在聖俞集中, 未爲絕唱. 蓋其名重天下, 一篇一詠, 傳落夷狄, 而異域之人貴重之如此耳.]”라고 하였다. <歐陽脩全集 卷128 六一詩話>
만포낭[蠻布囊] 만포(蠻布) 활집. 만포(蠻布)는 중국 남방에 살던 변방 민족이 짠 베를 말한다. 소식(蘇軾)이 일찍이 만포 활집을 하나 샀는데, 거기에는 매요신(梅堯臣)의 시 춘설(春雪)이 직조(織組)되어 있었다는 사실이 구양수(歐陽脩)의 육일시화(六一詩話)에 실려 있다.
만포진[滿浦鎭] 평안도 강계에 소속된 거진으로, 병마첨절제사를 배치했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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