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폭[萬瀑] 수만 갈래의 폭포. 이백(李白)의 시 망여산폭포(望廬山瀑布)에 “햇빛이 향로봉 비추어 붉은 놀이 생겼는데, 멀리 보니 폭포는 전천이 거꾸로 걸린 듯하네. 삼천 척 높이를 곧장 쏜살같이 내리쏟아라, 아마도 은하수가 하늘에서 떨어진 게 아닐까.[日照香爐生紫煙, 遙看瀑布挂前川. 飛流直下三千尺, 疑是銀河落九天.]”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李太白集 卷20>
만폭동[萬瀑洞] 강원도 금강군 내강리(內剛里) 금강산 내금강에 있다. 금강문으로부터 화룡담까지의 1.2km 구간을 포괄한다. 금강산 중에서도 계곡의 절경을 대표하는 구역으로 수많은 폭포들과 소(沼)들이 있다고 하여 만폭동이라 하였다.
만폭동[萬瀑洞] 금강산 내금강(內金剛)에 있는 골짜기이다. 이유원(李裕元)이 쓴 봉래비서(蓬萊秘書)에 “만폭동은 표훈사(表訓寺)에서 5리쯤 떨어진 지점에 있는데, 수미동(須彌洞)과 팔담동(八潭洞)의 물이 교류하는 곳이다. 대소(大小)의 향로봉(香爐峯)이 문을 이루고 청학대(靑鶴臺)가 대치하고 있다. 바위 면에는 ‘소동령령 풍패청청(疎桐泠泠風佩淸淸)’, ‘봉래풍악 원화동천(蓬萊楓嶽元化洞天)’, ‘만폭동(萬瀑洞)’이란 문구가 새겨져 있는데, 모두 양봉래(楊蓬萊)의 글씨이고, 또 ‘천하제일명산(天下第一名山)’이란 것이 새겨져 있는데, 김곡운(金谷雲)의 글씨이다. 또 돌 면에 바둑판이 새겨져 있는데 이름은 삼산국(三山局)이라 한다.”라고 하였다.
만폭동[萬瀑洞] 표훈사에서 만천(萬川)을 따라 동북쪽으로 오르면 금강문(金剛門)이 있는데, 금강문에서부터 화룡담(火龍潭)까지의 구간을 만폭동이라고 부른다. 금강대(金剛臺) 아래에 펼쳐진 200미터가량의 반석(槃石)과 만폭팔담(萬瀑八潭) 등의 절경으로 이루어져 있어 옥류동(玉流洞)·만물상(萬物相)과 더불어 금강산 3대 절승의 하나로 꼽힌다.
만품[萬品] 만품(萬品)은 만물(萬物)과 같은 뜻이다. 삼국 시대 조식(曹植)의 시 동지헌말리송표(冬至獻襪履頌表)에 “사방에 천지 기운이 통하여 만물이 소생한다.[四方交泰, 萬物昭蘇.]”라고 하였다.
만풍[晩風] 늦바람. 저녁나절에 부는 바람. 두보(杜甫)의 시 칠월삼일정오사후교열퇴만가소량온수유시인론장년악사희정원이십일조장(七月三日亭午巳後較熱退晚加小凉穩睡有詩因論壯年樂事戲呈元二十一曹長)에 “저녁 바람이 오암에 서늘하게 불어오니, 꺾이었던 근력이 소생되누나.[晩風爽烏匼, 筋力蘇摧折.]”라고 한 데서 보인다.
만풍단우[蠻風蜑雨] 남방의 이민족들이 사는 혜주(惠州)에 부는 바닷바람과 바다에 내리는 폭우를 가리킨다. 만(蠻)은 남쪽에 사는 이민족들에 대한 비칭이고, 단(蜑: 蜒)은 배 위에서 고기를 잡으며 사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만풍여단우[蠻風與蜑雨] 만풍여단우(蠻風與蜑雨)는 단우만풍(蜑雨蠻風)으로 남방 해상의 비바람을 말한다. 원래 만단(蠻蜑)은 중국 남방의 부족 이름으로, 대부분 배를 타고 물 위에서 생활하기 때문에 단호(蜑戶)라고도 한다. 소식(蘇軾)의 시 십일월이십육일송풍정하매화성개(十一月二十六日松風亭下梅花盛開)에 “어찌 유락하며 다시 볼 줄 알았으랴? 남쪽 바다 비바람에 황혼 무렵 시름하네.[豈知流落復相見? 蠻風蜑雨愁黃昏.]”라고 하였다. 만(蠻)은 남쪽 오랑캐를 뜻하고, 단우(蜑雨)는 남쪽 바다에 내리는 사나운 비를 가리키므로 소식 자신이 변방의 남쪽 지방으로 쫓겨나 쓸쓸하게 지내고 있는 것을 가리킨 것이다.
만풍정[晩風亭] 평안도 용강현에 있는 정자이다.
만필[晩筆] 늘그막에 쓴 글씨나 그림을 가리킨다.
만필[漫筆] 붓이 돌아가는 대로 씀. 붓이 가는 대로 쓰는 것을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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