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공의 교만치 않고 인색치 않음을 본다면
재주가 있다하여 어찌 스스로 자랑하겠으며
안자의 마치 없는 듯 빈 듯한 모습을 보고
학문을 함에 있어 어찌 스스로 만족하겠는가.
觀周公之不驕不吝, 有才何可自矜.
관주공지불교불린, 유재하가자긍.
觀顏子之若無若虛, 爲學豈容自足.
관안자지약무약허, 위학기용자족.
<圍爐夜話위로야화>
- 주공[周公] 희단(姬旦). 주(周) 문왕(文王) 희창(姬昌)의 넷째 아들이고 무왕(武王)의 동생이다. 이름은 단(旦), 시호는 원(元)이다. 주공단(周公旦)라고도 부른다. 무왕(武王)을 도와 주(紂: 은殷)나라를 멸하였다. 무왕이 죽고 어린 성왕이 즉위하자 스스로 섭정의 자리에 앉아 주나라를 통치하다가 성왕이 장성하자 섭정의 자리에서 내려와 신하의 자리로 돌아갔다. 그는 예악(禮樂)을 정비하고 전장(典章)제도를 만들어 주(周)나라의 기반을 마련하였으며, 주례(周禮)를 지었다고 한다. 공자를 비롯한 유가들에게 성인(聖人)으로 추앙 받았다.
- 불교[不驕] 교만하지 않음. 효경(孝經) 제후장(諸侯章)에, “윗자리에 있으면서 교만하지 않으면 높아도 위태롭지 않고, 절제하여 법도를 삼가 지키면 가득 차도 넘치지 않는다.[在上不驕 高而不危 制節謹度 滿而不溢]”라고 하였고, 효경(孝經) 기효행(紀孝行)에 “부모를 섬기는 자는 윗자리에서는 교만하지 말아야 하고, 아랫사람이 되어서는 어지럽히지 말아야 하며, 동료간에는 다투지 말아야 한다. 윗자리에 있으며 교만하면 망하게 되고 아랫사람이 되어서 어지럽히면 형벌을 받으며, 동료간에 다투면 다치게 된다. 이 세 가지를 지키지 않으면 비록 날마다 최고의 음식으로 봉양한다 하더라도 오히려 불효가 되는 것이다.[事親者, 居上不驕, 爲下不亂, 在醜不爭. 居上而驕則亡, 爲下而亂則刑, 在醜而爭則兵. 三者不除, 雖日用三牲之養, 猶爲不孝也.]”라고 하였고, 중용장구(中庸章句) 제27장에 “윗자리에 있어서는 교만하지 않고 아랫사람이 되어서는 배반하지 않는다. 나라에 도가 있을 때에는 그 말이 충분히 흥기(興起)할 수 있고, 나라에 도가 없을 때에는 그 침묵이 충분히 몸을 용납할 수 있다. 시경(詩經)에 ‘이미 밝고 또 밝아, 자기 몸을 보전한다.’ 하였으니, 이것을 말함일 것이다.[居上不驕, 爲下不倍, 國有道, 其言足以興, 國無道, 其黙足以容. 詩曰 旣明且哲, 以保其身, 其此之謂與.]”라고 하였다.
- 불린[不吝] 아끼지 않다. 인색하지 않다. 아까워하지 않다. 참고로, 서경(書經) 이훈(伊訓)에 이윤(伊尹)이 태갑(太甲)에게 선왕인 탕왕의 덕을 말하여 훈계하면서 “간언을 따르고 거스르지 않으셨다.[從諫弗咈]”라고 하였으며, 중훼지고(仲虺之誥)에 중훼가 탕왕의 덕을 칭송하면서 “잘못을 고치는 데 인색하지 않으셨다.[改過不吝]”라고 하였다.
- 불교불린[不驕不吝] 교만하지 않고 인색하지 않음. 논어집주(論語集註) 태백(泰伯) 제11장의 “만일 주공과 같은 아름다운 재주를 가지고 있더라도 만일 교만하고 인색하다면 그 나머지는 볼 것이 없다.[如有周公之才之美, 使驕且吝, 其餘不足觀也已.]”라는 구절에 대한 주희(朱熹)의 주(註)에 “교만과 인색함은 비록 기운이 차고 부족한 차이는 있으나 그 형세는 항상 서로 연관이 되니, 교만은 인색함의 지엽이고 인색함은 교만의 근본이다. 그러므로 일찍이 천하 사람들에게 징험해보니, 교만하고서 인색하지 않은 자가 없었으며 인색하고서 교만하지 않은 자가 없었다.[驕吝, 雖有盈歉之殊, 然其勢常相因, 蓋驕者吝之枝葉; 吝者驕之本根. 故嘗驗之天下之人, 未有驕而不吝, 吝而不驕者也.]”라고 하였다.
- 하가[何可] 어찌 가능하겠는가. 어찌 허락하랴. 어찌 들어주랴.
- 자긍[自矜] 제 스스로 하는 자랑. 스스로에게 긍지를 가짐. 또는 그 긍지. 스스로 자랑스러워하다. 자기 자랑을 하다. 자만하다. 참고로, 도덕경(道德經) 24장에 있는 “스스로 뽐내는 자는 공이 없고 스스로 자랑하는 자는 오래 가지 못하니, 그것은 도에 있어서 찌꺼기 음식이요 군더더기 살이다.[自伐者無功 自矜者不長 其在道曰餘食贅行]”라고 하였다.
- 안자[顔子/顏子] 복성안자(復聖顔子). 공자(孔子)의 수제자 안회(顔回)를 높여 이르는 말이다. 이름은 회(回)이고 자는 자연(子淵)인데 통상 안연(顔淵)으로 불린다. 노(魯)나라 곡부(曲阜) 출신이다. 공자보다 30세 연소하였으며 가장 촉망받던 제자였는데, 29세에 백발이 되었고 32세에 공자보다 먼저 사망하였다. 후대 사람들은 그를 높여 안자(顔子)라 칭하고 복성(復聖)으로 추앙하였다. 원(元)나라 문종(文宗) 때 연국복성공(兗國復聖公)으로 추증되었고, 명(明)나라 세종(世宗) 때 복성공(復聖公)으로 추봉되었다. 학문을 좋아했으며, 집이 가난했으나 이를 괴로워하지 않고 안빈낙도(安貧樂道)했으며, 무슨 일에도 성내지 않았으며 잘못은 두 번 다시 저지르지 않았다 한다. 젊어서 죽었기 때문에 저술이나 업적을 남기지는 못했으나 논어(論語)에 안연편(顔淵編)이 있고, 그 밖에 몇몇 서적에도 그를 현자(賢者)와 호학자(好學者)로서 덕행(德行)이 뛰어난 사람이라고 전하고 있다. 논어(論語) 옹야(雍也)에 공자가 이르기를 “안회는 그 마음이 석 달을 인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 나머지는 날로 달로 거기에 이를 따름이다.[回也 其心三月不違仁 其餘則日月至焉而已矣]”라고 하였고, 논어(論語) 위정(爲政)에 공자가 이르기를 “내가 안회와 이야기를 나눔에 하루 종일 내 말을 어기지 않아 바보 같아 보였으나 물러난 뒤에 그가 하는 것을 보니 배운 대로 잘 따랐다. 안회는 바보가 아니었다.[吾與回言, 終日不違如愚. 退而省其私, 亦足以發, 回也不愚.]”라고 하였고, 논어(論語) 선진(先進)에 안연이 죽자 공자가 “아! 하늘이 나를 망하게 하였구나! 하늘이 나를 망하게 하였구나![噫 天喪予 天喪予]”라고 하였다. 맹자(孟子) 이루하(離婁下)에 “안회가 난세에 누추한 골목에 있는 집에서 대나무 그릇에 밥을 담아 먹고 표주박으로 물을 떠 마시면서도 다른 사람들은 견디지 못하는 것을 즐기며 바꾸려 하지 않자 공자가 안회를 어질다고 칭찬하였다.[顔子當亂世, 居於陋巷, 一簞食, 一瓢飮. 人不堪其憂, 顔子不改其樂, 孔子賢之.]”라고 하였다. 또, 송유(宋儒) 주돈이(周敦頤)는 통서(通書) 권10에 “안연이 배웠던 바를 배워 이들을 능가하면 바로 성인이 될 수 있을 것이요, 제대로 따라가기만 해도 현인이 될 수 있을 것이다.[學顔子之所學, 過則聖, 及則賢.]”라고 하였다.
- 약무약허[若無若虛] 없는 듯이하고 빈 듯이 함. 논어(論語) 태백(泰伯)에, 증자(曾子)가 안연(顔淵)을 칭송하기를 “유능하면서도 무능한 사람에게 물으며, 학식이 많으면서도 적은 사람에게 물으며, 있어도 없는 듯이 하며, 가득차도 빈 듯이 하며, 자신에게 잘못을 범하는 자가 있어도 따지지 않는 것을, 예전에 내 친구[顔回]가 그렇게 했었다.[以能問於不能, 以多問於寡, 有若無, 實若虛, 犯而不校, 昔者, 吾友嘗從事於斯矣.]”라고 하였다.
- 기용[豈容] 어찌 용납하겠는가.
- 자족[自足] 스스로 만족함. 필요한 물건을 자기 스스로 충족시킴. 스스로 넉넉함을 느낌. 다른 곳으로부터 구함이 없이 자기가 가진 것으로써 충분(充分)함.
【譯文】 有才若無, 有德若虛.
周公制禮作樂, 是周朝的聖人, 但是, 他卻不因爲自己的才德, 而對他人有驕傲和鄙吝的心. 有才能的人, 哪裏可以自以爲了不起呢? 顏淵是孔子的得意門生, 他卻 “有才若無, 有德若虛”, 不斷虛心學習. 求學問哪裏可以自以爲滿足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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