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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경[妄境], 망경대[望景臺], 망경지비[亡鏡之悲], 망계[妄計], 망계[望溪]


망경[妄境]  망경(妄境)은 불교 용어로, 즉 망심(妄心)이 일어나는 허망부실(虛妄不實)한 경계를 말하고, 진원(眞源)은 곧 본성(本性)을 의미한다.

망경대[望景臺]  전라북도 전주시 고덕산(高德山)에 있는 대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만경대(萬景臺)로 되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권33 전라도 전주부 만경대 조를 보면 “만경대는 고덕산 북록(北麓)에 있는데, 기이하고 빼어난 바위 봉우리가 마치 층운(層雲) 같은 모습이다. 그 위에 수십 명이 앉을 수 있고, 사면에 수목이 울창하며 석벽이 그림 같고 기상이 천태만상이다.”라고 하였다.

망경루[望京樓]  안주의 동쪽 성 위에 있던 누대 이름이다. 김창업(金昌業)은 노가재연행일기(老稼齋燕行日記) 1713년 3월 22일 기사에서 망경루를 두고 “통군정과 우열을 다툴 만하고 백상루에 비할 바 아니다.[其勢可與統軍亭甲乙, 非百祥樓所比.]”라고 일컬었다.

망경루[望京樓]  제주목 관아 안에 있던 조선 시대 누각이다. 조선 시대에 지방의 20개 목(牧) 가운데 제주목에만 유일하게 존재했던 2층 누각으로, 바다 건너 멀리 떨어진 변방에서 임금이 있는 한양을 바라본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망경루는 특히 제주 앞바다로 침범하는 왜구를 감시하는 망루 역할도 하였다. 현재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삼도 1동에 있다.

망경루[望京樓]  중국 요양현에 있다.

망경루[望京樓]  평안남도 성천군 성천읍에 있는 고려 시대 객사(客舍)의 문루(門樓)이다. 송객정(送客亭) 또는 방선문(訪仙門)이라고도 한다. 성천 객사는 비류강변에 있으며 객사의 중심 건물인 동명관(東明館)을 중심으로 좌우의 통선관(通仙館)·유선관(留仙館) 등과 기타 부속 건물을 합하여 모두 33칸으로 이루어져 있다. 성천읍지(成川邑誌) 에 따르면 망경루(방선문)는 정면 3칸, 측면 2칸에 4익공 겹처마 팔작지붕의 건물로 1670년에 세워졌으며, 1727년에 개축했다고 한다.

망경지비[亡鏡之悲]  현신(賢臣)을 잃은 슬픔. 당 태종(唐太宗)이 위징(魏徵)이 죽은 뒤에 탄식하기를 “구리로 거울을 만들면 의관을 바르게 할 수 있고, 옛 역사로 거울을 만들면 흥망성쇠를 알 수가 있고, 현인으로 거울을 만들면 득실을 잘 알 수가 있다. 짐이 일찍이 세 개의 거울[三鑑]로 자신을 비춰 보며 허물을 짓지 않으려고 노력하였는데 이제 위징이 세상을 떠났으니 거울 하나를 잃은 것이다.[以銅爲鑑, 可正衣冠. 以古爲鑑, 可知興替. 以人爲鑑, 可明得失, 朕嘗保此三鑑, 內防己過, 今魏徵逝, 一鑑亡矣.]”라고 하였다. 구당서(舊唐書)에는 ‘감(鑑)’ 자가 ‘경(鏡)’ 자로 되어 있다. <舊唐書 卷71 魏徵列傳> <新唐書 卷97 魏徵列傳>

망계[妄計]  옳지 못한 계책(計策). 망상. 망념. 터무니없이 망령된 생각. 잊다. 모르다.

망계[望溪]  청(淸)나라 방포(方苞)의 호이다. 자는 영고(靈皐)이다. 청나라 동성인(桐城人)으로, 강희 진사로 벼슬은 시랑(侍郞)이었다. 논학(論學)에 있어서는 송유(宋儒)를 종(宗)으로 삼아 정주(程朱)의 학을 추연하였으며 더욱 춘추(春秋)·삼례(三禮)에 힘을 쏟았고, 학술은 정주학(程朱學)을 따랐고 문장은 한유(韓愈)와 구양수(歐陽脩)를 본받았아 의법(義法)에 엄했으며, 무릇 붓을 댄 것에는 다 육적(六籍)의 정화(精華)가 있었다. 동성파(桐城派) 산문(散文)의 초조(初祖)이다. 저서로는 망계문집(望溪文集) 등이 있다.

망계방씨[望溪方氏]  망계(望溪) 방씨(方氏). 청(淸)나라 때의 문인이자 학자인 방포(方苞)를 이른다. 자는 봉구(鳳九)·영고(靈皐), 호는 망계(望溪)이다. 강희(康熙) 진사로 벼슬은 시랑(侍郞)을 지냈다. 학문은 송유(宋儒)를 종주로 삼아 정주(程朱)의 학문을 추구하였고, 문학은 한유(韓愈)와 구양수(歐陽脩)를 배웠다. 동성파(桐城派)의 초조(初祖)이다. 저서로는 망계집(望溪集)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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