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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세에 아첨 말고, 오해 받을 짓은 마라 [曳裾侯門예거후문 明珠暗投명주암투] <채근담/소창유기>


먼저 영달한 자가 후배를 업신여기니

권세가에 빌붙어 출세하려 들지 말고

아는 사이에 외려 해코지하려 노리니

험난한 세상길에서 오해 살 일 마시라.


先達笑彈冠,  休向侯門輕曳裾.
선달소탄관,  휴향후문경예거.
相知猶按劍,  莫從世路暗投珠.
상지유안검,  막종세로암투주.

<菜根譚채근담 淸刻本청각본(乾隆本건륭본) : 應酬응수>
<醉古堂劍掃취고당검소/小窓幽記소창유기 : 豪호>

왕유(王維)의 시 작주여배적(酌酒與裵迪)에 “친구여 술이나 한 잔 드시게, 인정은 물결같이 뒤집히는 것. 오래 사귄 벗이 외려 경계하고, 먼저 출세하고는 이끌지 않네.[酌酒與君君自寬, 人精翻覆似波瀾. 白首相知猶按劍, 朱門先達笑彈冠.]”라고 하였다.


  • 선달[先達]  먼저 출세한 사람. 벼슬이나 학문이 자기보다 앞선 선배. 덕행과 학문이 높은 선배. 사로(仕路)에 먼저 진출하여 영달(榮達)한 사람. 나보다 먼저 도(道)에 달통한 사람. 조선 시대에 과거(科擧)에 급제(及第)하였으나 아직 벼슬을 받지 못한 사람을 이르던 말. 참고로, 한유(韓愈)의 송허영주서(送許郢州序)에 “선달한 선비가 훌륭한 사람을 만나 의탁하면 도덕이 드러나고 명예가 후세까지 전하며, 후진의 선비가 훌륭한 사람을 만나 의탁하면 사업이 드러나고 작위가 현달한다.[先達之士得人而託之, 則道德彰而名聞流 ; 後進之士得人而託之, 則事業顯而爵位通.]”라고 하였고, 한유(韓愈)의 여우양양서(與于襄陽書)에 “선비로서 큰 명성을 누리며 당세에 현달(顯達)한 자는 천하의 명망을 지닌 선달(先達)이 앞에서 끌어주었기 때문이고, 선비로서 아름다운 광채를 전하여 후세를 밝게 비추는 자는 천하의 명망을 지닌 후진(後進)이 뒤에서 밀어주었기 때문이다. 앞에서 끌어주는 선달이 없으면 아무리 아름다운 덕행(德行)을 가졌어도 명성을 드러낼 수 없고, 뒤에서 밀어주는 후진이 없으면 아무리 성대한 공적(功績)이 있어도 후세에 전할 수 없으니, 이 두 부류의 사람은 서로 의존하지 않은 적이 없다.[士之能享大名顯當世者, 莫不有先達之士負天下之望者為之前焉 ; 士之能垂休光照後世者, 亦莫不有後進之士負天下之望者為之後焉. 莫為之前, 雖美而不彰 ; 莫為之後, 雖盛而不傳. 是二人者, 未始不相須也.]”라고 하였다.
  • 탄관[彈冠]  관(冠)의 먼지를 털다. 관리(官吏)가 될 준비를 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의기투합하는 지기(知己)의 손을 함께 잡고서 벼슬길에 나설 준비를 함. 출사(出仕) 준비로 갓의 먼지를 털고 임금의 부름을 기다림. 보관하고 있던 관의 먼지를 털면서 장차 벼슬길에 나아갈 준비를 하는 것이다. 입사(入仕)하다. 벼슬할 준비를 하다. 한서(漢書) 왕길전(王吉傳)에 “왕길과 공우가 벗하자 세상 사람들은 ‘왕양(王陽)이 자리에 오르자 공공이 모자(의 먼지)를 털었다’고 말들 했는데, 그들이 행적을 함께한 것을 말한 것이다.[吉與貢禹爲友, 世稱王陽在位, 貢公彈冠, 言其取舍也.]”라고 하였다. 안사고(顔師古)의 주(注)에 “갓을 터는 것은 미구에 벼슬에 들어가겠기 때문이다.[彈冠者, 且入仕也.]”라고 한 데서 유래하였다. 왕길(王吉)은 자가 자양(子陽)으로 왕양(王陽)으로도 부른다. 왕길이 익주 자사(益州刺史)가 되자 친구인 공우(貢禹)가 갓을 털었는데, 그 후 왕길의 추천을 받아 과연 대부가 되었다 한다. 또, 후한서(後漢書) 권63 이고열전(李固列傳)에 “이런 까닭에 암혈(巖穴)에 사는 은자(隱者)와 지혜와 경륜을 갖춘 선비가 갓과 옷깃의 먼지를 털고[彈冠振衣] 즐겨 관직에 쓰이고 싶어 하여, 천하가 흔연(欣然)히 심복(心服)하여 성덕(聖德)으로 쏠립니다.[是以巖穴幽人, 智術之士, 彈冠振衣, 樂欲為用, 四海欣然, 歸服聖德.]”라고 한 데서도 보인다.
  • 탄관진의[彈冠振衣]  갓에 묻은 먼지를 털고 옷에 묻은 먼지를 털음. 후한서(後漢書) 권63 이고열전(李固列傳)에 “이런 까닭에 암혈(巖穴)에 사는 은자(隱者)와 지혜와 경륜을 갖춘 선비가 갓과 옷깃의 먼지를 털고[彈冠振衣] 즐겨 관직에 쓰이고 싶어 하여, 천하가 흔연(欣然)히 심복(心服)하여 성덕(聖德)으로 쏠립니다.[是以巖穴幽人, 智術之士, 彈冠振衣, 樂欲為用, 四海欣然, 歸服聖德.]”라고 하였는데, 벼슬길에 나아가기 위하여 준비함을 뜻한다. 또, 굴원(屈原)의 어부사(漁父辭)에 “내가 들으니 새로 머리를 감은 사람은 반드시 갓을 털고, 새로 목욕한 사람은 반드시 옷을 턴다고 하니, 어찌 깨끗하고 깨끗한 몸으로 남의 더러움을 받겠는가. 내 차라리 소상강 강물에 뛰어들어 강 물고기의 배 속에 장사될지언정, 어찌 희디흰 결백한 몸으로 세속의 더러운 먼지를 뒤집어쓰겠는가.[吾聞之新沐者必彈冠, 新浴者必振衣, 安能以身之察察, 受物之汶汶者乎. 寧赴湘流, 葬於江魚之腹中, 安能以皓皓之白, 而䝉世俗之塵埃乎.]”라고 한 데서도 보이는데, 여기서는 외물(外物)에 자신이 더럽혀질까 두려워한다는 뜻이다.
  • 후문[侯門]  귀인(貴人)의 저택. 권세가(權勢家). 고관대작의 저택. 제후(諸侯)의 문이라는 말로 권문세가(權門勢家)를 가리킨다. 참고로, 송(宋)나라 왕지도(王之道)의 시 증회서운간서백원(贈淮西運幹徐伯遠)에 “아, 나는 회남 마을에 숨어있느라, 십년 동안 공후의 집에는 다니지 않았노라.[嗟予偃伏淮南村, 十年不踐公侯門.]”라고 하였고, 두보(杜甫)의 시 증정십팔분(贈鄭十八賁)에 “온화한 사군자여, 나로 마음에 극진히 품게 하는도다! …… 병을 안고 후의 문을 밀치니, 쇠한 모습 어찌 그리 애쓰시는지?[溫溫士君子, 令我懷抱盡! …… 抱病排侯門, 衰容豈爲敏.]”라고 하였고, 소옹(邵雍)의 시 용문도중작(龍門道中作)에 이르기를 “후의 문은 그 깊이가 바다 같다고 말하기에, 삼십 년 전에 팔 내두르며 갔었지.[侯門見說深如海, 三十年前掉臂行.]”라고 한 데서 보인다.
  • 후문여해[侯門如海]  벼슬아치나 부잣집 대문이 바다 같다는 뜻으로, 고관대작의 저택은 바다처럼 광대하고 경비가 삼엄해서 일반 백성은 출입하기 힘듦. 단속이 엄해 마음대로 출입할 수 없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범터(范攄)의 운계우의(雲溪友議)와 태평광기(太平廣記) 등에 실려 있는, 최교(崔郊)의 시 증거비(贈去婢: 떠나버린 여종에게)에 “공자와 왕손들 다퉈 뒤를 따랐지만, 녹주처럼 흐르는 문물 비단 수건 적시네. 제후의 문에 한 번 들면 바다처럼 깊으니, 그로부터 이내 몸은 완전 남이 되었네.[公子王孫逐後塵, 綠珠垂淚滴羅巾. 侯門一入深如海, 從此蕭郞是路人.]”라고 한 데서 유래하였다. 후문여해(侯門如海)는 권문세가의 집이 단속이 엄하여 마음대로 출입할 수 없음을 뜻하거나, 예전에 친하던 사람이 지위가 높아져서 사이가 소원해지는 것을 뜻한다. 소옹(邵雍)의 시 용문도중작(龍門道中作)에 이르기를 “후의 문은 그 깊이가 바다 같다고 말하기에, 삼십 년 전에 팔 내두르며 갔었지.[侯門見說深如海, 三十年前掉臂行.]”라고 한 데서도 보인다. 후문사해(侯門似海).
  • 예거[曳裾]  옷자락을 땅에 끌음. 긴 옷자락을 늘어뜨림. 왕후나 귀인의 집에 기식(寄食)함. 조정에 나아가 벼슬함. 긴 옷자락을 끌고 다닌다는 예장거(曳長裾)의 축약으로, 고관(高官)이나 귀인(貴人)들이 입는 정복(正服)은 옷의 끝자락이 땅에 끌리기에 고관이나 귀인을 뜻하는 말이었는데, 전하여 왕족이나 권세가의 집에 출입하며 기식(寄食)하여 출세하는 것을 이르는 말이 되었다. 한서(漢書) 권51 추양전(鄒陽傳)에, 한(漢)나라 오왕(吳王) 유비(劉濞)가 모반을 꾀하자 추양(鄒陽)이 글을 올려 간하면서[上吳王書상오왕서] “지금 신(臣)이 지혜를 다하여 모두 헤아리고 극진히 생각하면, 벼슬을 구하지 못할 나라가 없고, 고루(固陋)한 마음을 꾸미만한다면, 어느 왕의 문에서 가히 옷자락을 길게 끌지 못하겠습니까? 그러나 신이 여러 왕의 조정을 거치고 회수(淮水)의 천리를 뒤로하고 여기에 온 것은, 신의 나라인 제(齊)나라를 미워하고 오(吳) 나라의 백성이 됨을 즐거워해서가 아닙니다. 대왕(大王)의 행하심이 고상하다 여기고, 더욱이 대왕의 의리를 기뻐하기 때문입니다. 원컨대 대왕께서는 신의 말을 소홀히 여기지 마시옵소서.[今臣盡智畢議, 易精極慮, 則無國不可奸. 飾固陋之心, 則何王之門不可曳長裾乎? 然臣所以歷數王之朝, 背淮千里而自致者, 非惡臣國而樂吳民也, 竊高下風之行. 尤說大王之義. 故願大王之無忽, 察聽其志.]”라고 한 데서 유래하여, 이후 예거(曳裾)는 제후나 권문세가의 식객(食客)이 되는 것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참고로, 두보(杜甫)의 우작차봉위왕(又作此奉衛王)에 “추곡 받은 지 몇 년을 오직 진정하여 왔던가, 소매를 끌며 종일토록 글 잘하는 선비 가득하도다.[推轂幾年唯鎭靜, 曳裾終日盛文儒.]”라고 하였고, 이백(李白)의 행로난(行路難) 기2(其二)에 “큰 길은 푸른 하늘같건만, 나만 홀로 그 길로 나서지 못한다. 부끄럽게 장안(長安) 시중(市中)의 귀공자를 쫓아다니며, 닭싸움, 개 경주에 배와 밤 걸까보냐. 검 두드리며 노래하여 괴로운 소리 내고, 왕후 문하에서 옷자락 끄는 건 내 성미에 맞지 않아서라네.[大道如靑天, 我獨不得出. 羞逐長安社中兒, 赤雞白狗賭梨栗. 彈劍作歌奏苦聲, 曳裾王門不稱情.]”라고 한 데서 보인다. 예거후문(曳裾侯門). 예거왕문(曳裾王門).
  • 상지[相知]  서로 아는 사이. 서로의 마음까지 아는 친구. 자기의 속마음을 참되게 알아주는 친구. 서로 이해가 깊다. 서로를 이해하여 마음을 알다. 지기(知己). 참고로, 이백(李白)의 시 증종제남평태수지요(贈從弟南平太守之遙)에 “하루아침에 병이 들어 사직하고 강호에서 지내게 되니, 지난날 알고 지낸 사람이 몇이나 남았는가? 전에는 문에서 길게 읍하다가 뒤에는 문을 잠가 놓고, 오늘은 교분을 맺다가 내일은 바꾸어 버리네.[一朝謝病遊江海, 疇昔相知幾人在. 前門長揖後門關, 今日結交明日改.]”라고 하였고, 초사(楚辭) 구가(九歌) 소사명(少司命)에 “살아서 이별하는 것보다 더 큰 슬픔은 없고, 새롭게 서로 알아주는 것보다 더한 즐거움이 없다.[悲莫悲兮生別離 樂莫樂兮新相知]”라고 하였고, 한유(韓愈)의 여여주로낭중논천후희상(與汝州盧郞中論薦侯喜狀)에 “어떤 사람은 하루 종일 무릎을 맞대고 함께 있어도 서로를 잘 알지 못하고, 어떤 사람은 다른 세상에 살면서 멀리서 앙모할 뿐입니다. 지기는 정말로 만나기 어렵기 때문에 사마천은 ‘선비는 마땅히 자신을 알아주는 이를 위해 목숨을 바쳐야 한다’고 했는데 어떻게 그렇지 않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或日接膝而不相知 ; 或異世而相慕. 以其遭逢之難, 故曰士爲知己者死眞, 不其然乎! 不其然乎.]”라고 한 데서 보인다.
  • 안검[按劍]  검의 손잡이를 쥠. 칼을 빼려고 칼자루에 손을 댐. 손으로 검을 어루만지다. 칼을 잡다. 곧 칼을 빼 공격할 것처럼 보이는 것을 가리킨다. 칼을 빼려고 칼자루에 손을 대는 것 또는 칼로 내려칠 기세를 이른다. 사기(史記) 권83 노중련추양열전(魯仲連鄒陽列傳)에 “신은 들으니, 명월주(明月珠)나 야광벽(夜光璧)을 어두운 밤 길 가는 사람에게 던져 줄 경우, 칼을 어루만지며 노려보지 않을 사람이 없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까닭 없이 보물이 앞에 이르기 때문입니다.[臣聞明月之珠, 夜光九璧, 以闇投入於道路, 人無不按劍相眄者, 何則? 無因而至前也.]”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 세로[世路]  세상을 살아 나가는 길. 세상 경험. 처세의 길. 벼슬길. 세상을 겪어나가는 길. 세상 사람들의 인정. 인생행로(人生行路). 과거·현재·미래의 삼세(三世)에 걸쳐 변해 가는 과정을 나타내는 말. 참고로, 도잠(陶潛)의 시 음주(飮酒) 20수 가운데 제19수에 “세상길 광활하고 아득하니, 양주는 이 때문에 가던 길 멈추었지.[世路廓悠悠, 楊朱所以止.]”라고 한 데서 보인다.
  • 암투명주[暗投明珠]  명주암투(明珠暗投). 아무리 귀중한 보배라도 사람에게 증정하는 도리를 다하지 못하면, 오히려 원망을 초래함. 한(漢)나라 때 추양(鄒陽)이 양왕(梁王)에게 올린 글에 “명월주나 야광벽 같은 보배를 암암리에 길 가는 사람에게 던져주면 칼자루를 어루만지며 노려보지 않을 사람이 없으니, 그 까닭은 까닭 없이 보배가 자기 앞에 떨어졌기 때문이다.[明月之珠、夜光之璧, 以闇投人於道路, 人無不按劍相眄者, 何則? 無因而至前也.]”라고 한 내용이 있다. 후에 이를 ‘명주암투(明珠暗投)’라 하여 느닷없이 시를 지어주고 화답해주기를 요구하는 것을 뜻하게 되었다. <史記 卷83 鄒陽列傳>
  • 명주암투[明珠闇投]  보배로운 구슬을 어둠속에 던진다는 뜻으로, 어떤 귀한 선물도 도리에 벗어난 방법으로 주면 도리어 원망을 삼. 재능은 있으나 알아주는 사람을 만나지 못하고 있음을 비유해 이르는 말. 명주(明珠)는 명월주(明月珠)로 대합조개에서 나오는 구슬로 밤중에도 빛을 발하는 보주(寶珠)를 말하고, 암투(暗投)는 어둠 속에서 무작정 던진다는 뜻이니, 밤에 길 가는 행인을 위해서 명월주나 야광주(夜光珠)를 몰래 던져 주면 고맙게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의심한다는 말이다. 사기(史記) 노중련추양열전(魯仲連鄒陽列傳)에, 한(漢)나라 추양(鄒陽)이 모함을 받고 투옥된 뒤에 옥중에서 상소한 글에 “신은 들으니, 명월주(明月珠)나 야광벽(夜光璧)을 어두운 밤 길 가는 사람에게 던져 줄 경우, 칼을 어루만지며 노려보지 않을 사람이 없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까닭 없이 보물이 앞에 이르기 때문입니다.[臣聞明月之珠夜光之璧, 以闇投人於道路, 人無不按劍相眄者. 何則? 無因而至前也.]”라는 대목이 나오는데, 여기에서 유래한 말이다. <史記 卷83 魯仲連鄒陽列傳>
  • 투주어곡[投珠於谷]  통감절요(通鑑節要) 권37 당기(唐紀) 태종황제 중(太宗皇帝中)에, 당나라 태종(太宗)이 말하기를 “옛날에 요 임금과 순 임금은 벽옥(璧玉)을 산에 던져버리고, 진주를 골짝에 던졌다.[堯舜抵璧於山, 投珠於谷.]”라고 하였는데, 부주(附註)에서 육가(陸賈)의 신어(新語)에 이르기를 “성인은 주옥을 사용하지 않고 자기 몸을 보배롭게 여겼기 때문에 순 임금은 황금을 깎아지른 험한 산에 버리고 주옥을 오호(五湖)의 냇물에 버려서 자신의 음란하고 간사한 욕심을 막았다.[陸賈新語曰, 聖人不用珠玉而寶其身, 故舜棄黃金於巉巖之山, 捐珠玉於五湖之川, 以杜淫邪之欲也.]”라고 하였다.
  • 투주여시[投珠與豕]  돼지에게 구슬을 던져 줌. 값어치를 모르는 사람에게 귀중한 것을 주다. 쓸데없는 낭비를 하다.
  • 탄관상경[彈冠相慶]  벼슬하게 된 것을 서로 축하(祝賀)함. 벗이나 사이가 좋은 사람 사이에 벼슬하도록 서로 끌어주는 것을 가리킨다. 한서(漢書) 왕길전(王吉傳)에 “왕길(王吉)은 공우(貢禹)와 좋은 벗이었다. 세상에서 ‘왕양(王陽)이 관직에 있으면 공공(貢公)이 갓을 턴다.’라고 하였으니, 그 취사가 같음을 말한 것이다.[吉與貢禹爲友, 世稱王陽在位, 貢公彈冠, 言其取舍也.]”라고 하였다. 후에 소순(蘇洵)의 관중론(管仲論)에서는 탄관상경이란 말이 나쁜 사람들이 득의하는 모양을 풍자하고 비판하는 의미를 띠게 되었다. 왕길(王吉)의 자는 자양(子陽)이다. 그는 어려서부터 배우기를 좋아하였고, 품행이 단정하였다. 후에 수도인 장안(長安)에 와서 한(漢) 선제(宣帝)의 휘하에서 주치고병(主治庫兵)이라는 관리를 지냈다.

【譯文】 毋媚權貴,  毋攀俗緣.
先期發達歡笑彈冠相慶,  休要向達官顯貴輕易搖曳長裾  ;  相交知己猶如按劍相眄,  莫要從塵世路途暗自投入明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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