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만물 중에 천지와 일월보다 큰 것이 없건만
두보는 “해와 달은 조롱 속의 새요, 하늘과 땅은 물 위의 부평초다.”라고 하였고
사람의 일 중에 나라를 양보함과 정벌보다 더 큰 것이 없건만
소강절은 “요와 순의 선양은 석 잔의 술이요, 탕과 무의 정주는 한판의 바둑이다.”라고 하였다.
사람이 이런 포부와 안목으로 천지사방을 삼키고 뱉으며, 천고의 시간을 오르내리고
일이 닥쳐도 큰 바다에 생긴 거품으로 여기고, 일이 가도 허공으로 사라진 그림자로 여긴다면
스스로 만 가지 변화를 다스리면서도 한 점 티끌만큼도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物莫大於天地日月, 而子美云 : “日月籠中鳥, 乾坤水上萍.”
물막대어천지일월, 이자미운 : “일월농중조, 건곤수상평.”
事莫大於揖遜征誅, 而康節云 : “唐虞揖遜三杯酒, 湯武征誅一局棋.”
사막대어읍손정주, 이강절운 : “당우읍손삼배주, 탕무정주일국기.”
人能以此胸襟眼界呑吐六合, 上下千古,
인능이차흉금안계탄토육합, 상하천고,
事來如漚生大海, 事去如影滅長空, 自經綸萬變而不動一塵矣.
사래여구생대해, 사거여영멸장공, 자경륜만변이부동일진의.
<菜根譚채근담 淸刻本청각본(乾隆本건륭본) : 評議평의>
※ 일월롱중조 건곤수상평[日月籠中鳥 乾坤水上萍] 두보(杜甫)의 시 형주송이대부칠장부광주(衡州送李大夫七丈赴廣州)에 “부월이 조정으로부터 내려오니, 누선이 동정호를 지나가리라. 서늘한 기운은 북풍을 따라 일고, 남두는 문성을 피하리로다. 해와 달은 조롱 속의 새요, 하늘과 땅은 물 위의 부평초라네. 왕손께서는 내게 어른벌이 되시거늘, 늘그막까지 먼 곳을 떠도는구려.[斧鉞下靑冥, 樓船過洞庭. 北風隨爽氣, 南斗避文星. 日月籠中鳥, 乾坤水上萍. 王孫丈人行, 垂老見飄零.]”라고 하였다.
※ 당우읍손삼배주 탕무정주일국기[唐虞揖遜三杯酒 湯武征誅一局棋] 소옹(邵雍)의 수미음(首尾吟)에 “요부(堯夫)는 시 읊기를 좋아하지 않으니, 시는 바로 요부가 탄식할 만한 때라네. 오직 세상 사람들이 속임을 많이 쓰기에, 온 세상이 의심으로 가득 차게 되었네. 당(唐)과 우(虞)의 선양(禪讓)은 세 잔 술이고, 탕(湯)과 무(武)의 정벌은 한 판 바둑이라네. 크고 작음이 같지 않을 뿐이니, 요부는 시를 읊기를 좋아하지 않는다네.[堯夫非是愛吟詩, 詩是堯夫可嘆時. 只被人間多用詐, 遂令天下盡生疑. 唐虞揖讓三杯酒, 湯武征誅一局棋. 小大不同而已矣, 堯夫非是愛吟詩.]”라고 하였다.
- 자미[子美] 두보(杜甫)를 지칭한다. 두보는 성당(盛唐) 때 시인(詩人)으로 시성(詩聖)이라고도 하는데, 자미(子美)는 그의 자(字)이다. 당(唐)나라의 저명한 시인(詩人)으로 이름은 보(甫)이고 자미(子美)는 그의 자(字)이며 호는 소릉(少陵), 자호는 두릉포의(杜陵布衣) 또는 소릉야로(少陵野老)라 하였다. 공현(鞏縣: 지금 하남성河南省 공의시鞏義市)에서 출생하였는데, 그의 생애는 대체로 곤궁하고 불우한 삶이었다. 일찍이 좌습유(左拾遺)와 공부원외랑(工部員外郞)의 벼슬을 하였기 때문에 두습유(杜拾遺) 또는 두공부(杜工部)라고 칭하기도 한다. 이백(李白)과 함께 한시(漢詩)의 양대 산맥으로 일컬어져 이백(李白)은 시선(詩仙), 두보(杜甫)는 시성(詩聖)으로 불린다. 두보(杜甫)는 현종(玄宗) 천보(天寶) 14년(755) 안록산(安祿山)의 난리를 만나 현종(玄宗)을 따라 성도(成都)에 가서 온갖 고생을 겪었는데, 그의 시(詩)에는 사군우국(思君憂國)의 내용이 많고, 유독 웅혼침통(雄渾沈痛)하며 충후(忠厚)한 정이 넘쳐흐른다. 두공부집(杜工部集) 20권이 있다.
- 읍손[揖遜] 읍양(揖讓). 읍(揖)하는 예(禮)를 갖추면서 자기를 낮춤. 겸손함. 예를 갖추어 겸손한 태도를 가짐. 빈주(賓主)가 서로 만나 볼 적에 상대방에게 양보하는 예의(禮儀)로 읍양(揖讓)과 같은 말이다. 선양(禪讓). 양위(讓位)를 이른다. 요순시대를 말한다. 요 임금의 아들과 순 임금의 아들이 모두 불초(不肖)하여 임금 자리를 이어받지 못하였다.
- 선양[禪讓] 덕망이 있는 인물에게 제위를 물려줌. 혈통상 아무런 관계가 없는 사람에게 왕위를 물려줌. 임금이 살아있으면서 다른 사람에게 왕위를 물려 줌. 선양(禪讓)은 혈통상 아무런 관계가 없는 사람에게 왕위를 물려주는 행위이다. 유교의 이상적인 정권 교체 방식으로, 천자(天子)가 제위(帝位)를 유덕자(有德者)에게 양도하는 것을 말한다. 곧 요(堯)·순(舜)·우(禹) 사이에 행해진 정권의 이양을 말하는 것으로, 유교 정치의 모범이 되었다. 선(禪)은 봉선(封禪)의 뜻으로 하늘에 제사를 지내 천의(天意)를 묻고 하늘에 고함을 말하는 것으로, 후에 천위(天位)를 수수(授受)한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 정주[征誅] 폭군에 대한 무력적 징벌. 정벌하고 주살함. 정벌하여 죽임. 정벌하여 주륙함. 참고로, 논어집주(論語集註) 팔일(八佾)에 주자(朱子)가 “그러나 순 임금의 덕은 성품대로 한 것이요 또 읍하여 사양한 것으로 천하를 소유하였으며, 무왕의 덕은 본성을 회복한 것이요 또 정벌과 주륙으로 천하를 얻은 것이다. 그러므로 그 실상은 다른 것이다.[然舜之德, 性之也, 又以揖遜而有天下 ; 武王之德, 反之也, 又以征誅而得天下, 故其實有不同者.]”라고 하였다.
- 강절[康節] 강절(康節)은 소옹(邵雍)의 시호이다. 북송(北宋) 인종(仁宗)·신종(神宗) 때 사람으로, 자는 요부(堯夫), 호는 안락선생(安樂先生)·이천옹(伊川翁)이다. 이지재(李之才)로부터 도서(圖書)・천문(天文)・역수(易數)를 배워 가우(嘉祐) 연간에 장작감 주부(將作監主簿)로 추대되었으나 사양하고, 일생을 낙양(洛陽)에 은거하여 은퇴한 사마광(司馬光), 부필(富弼) 등과 교유하였고, 여러 차례 징소(徵召)되었으나 출사하지 않았다. 주역(周易)에 조예가 깊었고 상수학(象數學)의 능통하였다. 상수(象數)에 의한 신비적 우주관과 자연 철학을 제창하였다. 벼슬에 나아가지 않고 소문산(蘇門山) 백천(百泉)에서 독서하며 사는 집을 안락와(安樂窩)라 하고 자호를 안락(安樂) 선생이라 하였다. 또한 낙양(洛陽)에 살 때에는 공중누각(空中樓閣)을 지어 자호를 무명공(無名公)이라 하기도 하였다. 저서에 관물편(觀物篇), 이천격양집(伊川擊壤集), 황극경세서(皇極經世書) 등이 있다. 그의 황극경세서(皇極經世書)는 수리(數理)로 천문과 역법을 해설한 저술로 후세에 큰 영향을 끼쳤다.
- 강절[康節] 소강절(邵康節). 송나라 학자인 소옹(邵雍)을 가리킨다. 자는 요부(堯夫)이며, 강절(康節)은 그의 시호이다. 송나라 영종(英宗)·신종(神宗) 때 사람으로 뒤에 하남부(河南府) 숭현(嵩縣)으로 이사하여 살았다. 젊었을 때 재주가 뛰어나 웅지(雄志)를 품고 세상에 큰 공업(功業)을 세우려 하였다. 이지재(李之才)에게 주역(周易)의 상수학(象數學)을 배워 신묘(神妙)하게 알았으며, 황하(黃河)와 분수(汾水)를 건너고 회수(淮水)와 한수(漢水)를 지나 제(齊)·노(魯)·송(宋)·정(鄭)의 옛터를 주류(周流)하였다고 한다. 나중에는 벼슬에 나가지 않고 소문산(蘇門山) 백천(百泉)에서 독서하며 사는 집을 안락와(安樂窩), 자호를 안락선생(安樂先生)이라고 하였다. 송원학안(宋元學案)에 “소옹(邵雍)의 자는 요부로(堯夫)로 본래 범양(范陽) 사람이며, 증조(曾祖) 영진(令進)이 군직으로 예조(藝祖: 송 태조太祖)를 섬겼고, 이때부터 형장(衡漳)에 정착하였다.[字堯夫, 其先范陽人, 曾祖令進以軍職逮事藝祖, 始家衡漳.]”라고 하였다.
- 당우[唐虞] 당요(唐堯)와 우순(虞舜). 중국 고대의 임금인 도당씨(陶唐氏) 요(堯)와 유우씨(有虞氏) 순(舜)을 아울러 이르는 말. 요(堯)와 순(舜). 요순(堯舜)시대. 당(唐)은 제요(帝堯)의 호. 우(虞)는 제순(帝舜)의 호로 요(堯)와 순(舜)의 이대(二代)를 말한다. 요(堯)는 처음에 도(陶) 땅에 살았고 후에 당(唐) 땅에 봉해져 당후(唐侯)가 되었기 때문에 도당씨(陶唐氏)이라 일컬었고, 순(舜)이 제위에 오르기 전에 다스렸던 나라가 우(虞)였으므로 순을 유우씨(有虞氏)라 일컬었다. 이 당우(唐虞)의 시대는 흔히 요순지치(堯舜之治)라 하여 태평성세(太平盛世)를 가리킨다. 논어(論語) 태백(泰伯)에 “요순의 시대와 주무왕의 시기에 인재가 가장 풍성하였다.[唐虞之際, 於斯爲盛.]”라고 하였고, 서경(書經) 요전(堯典)에, “백성을 평등하게 다스린다.[平章百姓.]”, “여민이 아! 변하여 이에 화목해졌다.[黎民, 於變, 時雍.]”라고 하였고, 서경(書經) 익직(益稷)에, “증민이 이에 곡식을 먹어서 만방이 다스려졌다.[烝民乃粒, 萬邦作乂.]”라고 한 구절이 있고, 사기(史記) 권120 급암열전(汲黯列傳)에, 급암(汲黯)은 한 무제 때에 직신(直臣)으로 이름이 높았는데, 무제가 일찍이 천하에 인의(仁義)를 베풀고자 한다는 말을 했을 때, 급암이 대답하기를 “폐하께서는 속으로는 욕심이 많으면서 겉으로만 인의를 베푸니, 어떻게 요순의 정치를 본받으려 한단 말입니까.[陛下內多欲, 而外施仁義, 奈何欲效唐虞之治乎.]”라고 하자, 무제가 노하여 얼굴을 붉히고 조회를 파하였다. 무제는 물러가서 다른 사람에게 이르기를 “심하다, 급암의 우직함이여.[甚矣, 汲黯之戇也.]”라고 하였다고 한다.
- 당우읍양[唐虞揖讓] 당우(唐虞)는 요순(堯舜)을 가리키는 말이고, 읍양은 천자(天子)의 지위를 서로 양여(讓與)하는 일을 말한다. 즉 요와 순이 서로 평화롭게 천자의 자리를 주고받은 것을 뜻하는 말로, 공영달(孔穎達) 상서정의 서(尙書正義序)에 “요(堯)임금과 순(舜)임금이 읍양(揖讓)하니 전(典; 堯典·舜典)과 모(謨; 大禹謨·皐陶謨)가 일어나고, 탕왕(湯王)과 무왕(武王)이 혁명(革命)하니 서(誓)‧고(誥)가 생겨났다.[勳華揖讓而典謨起, 湯武革命而誓誥興.]”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 당우읍양삼배주[唐虞揖讓三盃酒] 요 임금과 순 임금은 천자의 지위를 사양하기를 술 석 잔을 사양하는 것처럼 가볍게 하였다는 뜻이다. 당우는 요 임금과 순 임금을 가리킨다. 송나라의 학자인 소옹(邵雍)의 수미음(首尾吟)에 “요순이 사양한 것은 석 잔 술이고, 탕무가 싸운 것은 한 판 바둑이다.[唐虞揖讓三盃酒, 湯武交爭一局棋.]”라고 하였는데, 이 시는 천자의 지위를 선양한 요순의 겸손한 기상을 말한 시라고 한다. <擊壤集 卷20>
- 탕무[湯武] 폭군을 정벌하여 내쫓고 왕이 된 상탕(商湯)과 주 무왕(周武王). 상(商: 은殷)나라 개국 군주 탕(湯)임금과 주(周)나라를 세운 무왕(武王)을 이른다. 탕(湯)은 곧 성탕(成湯: 무공武功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성탕이라 함)인데 성은 자(子), 이름은 이(履)이다. 탕(湯)은 호(號), 또는 시호(諡號)라고도 한다. 무(武)는 무왕(武王)인데 문왕(文王)의 아들로서 성은 희(姬), 이름은 발(發)이다. 탕왕(湯王)은 하(夏)나라의 걸왕(傑王)을 추방[湯放桀]하고 은(殷)나라를 세웠고, 무왕(武王)은 은(殷)나라의 주왕(紂王)을 토벌[武王伐紂]하고 주(周)나라를 세워 유가(儒家)의 성군(聖君)으로 추앙되었다. 참고로, 맹자(孟子) 이루상(離婁上)에 “못을 위하여 고기를 몰아주는 것은 수달이고, 나무숲을 위하여 참새를 몰아주는 것은 새매이고, 탕 임금과 무왕을 위하여 백성을 몰아 준 자는 걸왕과 주왕이다.[爲淵敺魚者, 獺也; 爲叢敺爵者, 鸇也; 爲湯武敺民者, 桀與紂也.]”라고 하였고, 맹자(孟子) 진심 상(盡心上)에 “요순은 인의(仁義)의 성품을 타고났고, 탕왕과 무왕은 몸에 익혔고, 춘추 오패는 차용하였다. 오래도록 차용하고서 반환하지 않았으니, 자기의 소유가 아니라는 것을 그들이 어떻게 알았겠는가.[堯舜性之也 湯武身之也 五覇假之也 久假而不歸 烏知其非有也]”라고 하였고, 소옹(邵雍)의 시 수미음(首尾吟)에 “요순이 서로 사양한 것은 석 잔 술이고, 탕무가 싸운 것은 한 판 바둑이다.[唐虞揖讓三盃酒, 湯武交爭一局棋.]”라고 하였고, 주역(周易) 혁괘(革卦) 단전(彖傳)에 “탕왕(湯王)과 무왕(武王)이 혁명을 하여 하늘의 뜻에 따르고 사람들의 마음에 응하였으니 혁(革)의 때가 크도다.[湯武革命 順乎天而應乎人 革之時大矣哉]”라고 하였다.
- 흉금[胸襟] 앞가슴의 옷깃. 가슴 속에 품은 생각.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마음속에 품은 생각. 옷의 가슴자락. 포부.
- 안계[眼界] 눈으로 바라볼 수 있는 범위(範圍). 생각이 미치는 범위. 눈과 눈이 보는 대상 그리고 안식(眼識)이 서로 도와서 형성하는 세계. 시계. 시야. 견문. 식견.
- 탄토[呑吐] 삼키고 뱉음. 삼키기도 하고 뱉기도 함. 물건(物件)을 받아들이기도 하고 내보내기도 함. 벼슬길에 항상 있지 못하고 들어갔다 나왔다 하기를 여러 번 반복함. 탄탄토토(呑呑吐吐)의 준말. 얼버무리다. 애매모호하게 말하다. 분명하게 말하지 않다. 탄토(呑吐)는 삼키고 토하는 것으로, 관직이 있다가 없어지고 없다가 생기기도 함을 이르기도 한다. 참고로, 삼국지(三國志) 촉지(蜀志) 선주전(先主傳)에, 조조가 유비에게 말하기를 “대저 영웅이란 흉중(胸中)에 원대한 뜻을 품고 복중(腹中)에 좋은 계책이 있으며, 우주를 감싸 안을 만한 기틀과 천지를 삼킬 만한 뜻을 지닌 자이다. 지금 천하의 영웅은 그대 유비와 나 조조뿐이다.[夫英雄者, 胸懷大志, 腹有良謀, 有包藏宇宙之機, 呑吐天地之志者也. 今天下英雄, 唯使君與操耳.]”라고 한 데서 보인다.
- 육합[六合] 천지(天地)와 사방(四方). 상하(上下)・사방(四方). 곧 하늘과 땅, 동(東), 서(西), 남(南), 북(北)의 사방(四方)을 아울러 이르는 말. 곧, 온 누리를 말한다. 참고로, 가의(賈誼)의 과진론(過秦論)에 “동주와 서주, 그리고 각 제후들의 나라를 모두 멸망시키고 황제의 자리에 올라 천하를 다스렸는데 혹독한 형벌로 천하 백성을 부리며 위세를 사해에 떨쳤다.[呑二周而亡諸侯, 履至尊而制六合, 執敲朴以鞭笞天下, 威振四海.]”라고 하였고, 한서(漢書) 권72 왕길전(王吉傳)에 “춘추(春秋)가 대일통이 되는 이유는 천하가 똑같이 천자의 교화를 받고 구주에도 관통하기 때문이다.[春秋所以大一統者, 六合同風, 九州共貫.]”라고 하였고, 장자(莊子) 재유(在宥)에 “상하 사방을 드나들고 온 천하를 유람하면서 홀로 오고 홀로 가는 것을 나 자신의 삶이라 한다.[出入六合, 遊乎九州, 獨往獨來, 是謂獨有.]”라고 하였고, 장자(莊子) 제물론(齊物論)에 “육합 밖의 일은 성인은 그냥 두고 논하지 않으며, 육합 안의 일은 성인은 논하기만 하고 따지지 않는다.[六合之外, 聖人存而不論 ; 六合之內, 聖人論而不議.]”라고 하였는데, 성현영(成玄英)의 소(疏)에 “육합은 천지(天地)와 사방(四方)을 이른다.[六合者, 謂天地四方也.]”라고 하였고, 사기(史記) 권6 진시황본기(秦始皇本紀)에 “육합의 안이 모두 황제의 땅이니, 서쪽으로는 유사, 남쪽으로는 북호, 동쪽으로는 동해, 북쪽으로는 대하에 이르기까지 인적이 이르는 곳이라면 모두 신하가 아님이 없습니다.[六合之內, 皇帝之土. 西涉流沙, 南盡北戶, 東有東海, 北過大夏, 人迹所至, 無不臣者.]”라고 한 데서 보인다.
- 육합[六合] 1년 12달 중 계절이 상응하는 변화를 가리키는 말로, 중춘(仲春)과 중추(中秋)가 합(合)이 되고 중하(仲夏)와 중동(中冬)이 합이 되는 식이다. 이것이 모두 여섯 개이므로 육합(六合)이라 한다.
- 육합[六合] 음양가(陰陽家)의 설(說)로, 자(子)와 축(丑), 인(寅)과 해(亥), 묘(卯)와 술(戌), 진(辰)과 유(酉), 사(巳)와 신(申), 오(午)와 미(未)가 서로 합(合)하는 것을 이른다. 자(子)는 축(丑)과 맞고, 인(寅)은 해(亥)와 맞고, 묘(卯)는 술(戌)과 맞고, 진(辰)은 유(酉)와 맞고, 사(巳)는 신(申)과 맞고, 오(午)는 미(未)와 맞는다는 음양가의 주장인데, 성호는 이것이 본래 주례(周禮) 춘관종백(春官宗伯) 대사악조(大司樂條)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보았다. 춘관종백(春官宗伯) 대사조(大師條)의 주(注)에서 정현(鄭玄)은 12율(律)과 12지(支)를 서로 짝지어 황종은 자(子)의 기(氣)이고, 대려는 축(丑)의 기이고, 대주는 인(寅)의 기이고, 응종은 해(亥)의 기이고, 고선은 진(辰)의 기이고, 남려는 유(酉)의 기이고, 유빈은 오(午)의 기이고, 임종(林鍾) 즉 함종은 미(未)의 기이고, 이칙은 신(申)의 기이고, 중려(仲呂) 즉 소려는 사(巳)의 기이고, 무역은 술(戌)의 기이고, 협종은 묘(卯)의 기라고 하였다. 이것을 근거로 육합이 여기서 나온 것으로 보았다.
- 천고[千古] 천추(千秋). 아주 오랜 세월. 썩 먼 옛적. 영구(永久)한 세월(歲月). 영원히. 아주 오랜 옛날. 오랜 세월을 통하여 그 종류(種類)가 드문 일. 오랜 세월을 통하여 유례가 없을 정도로 드묾. 죽은 사람을 애도하는 말로 영원한 이별을 뜻함. 영결(永訣), 죽은 이를 애도하는 말. 참고로 당나라 때 설수(薛收)가 죽자, 진왕(秦王) 이세민(李世民)이 설수의 조카 설원경(薛元敬)에게 편지를 보내어 “어찌 하루아침이 영원한 이별을 이룰 줄을 기약이나 했겠는가.[豈期一朝成千古也?]”라고 한 데서 보이고, 소강절(邵康節)이 백원(百源)에서 여러 해 동안 독실하게 공부하다가 탄식하기를 “고인은 위로 천고를 벗하는데 나는 사방에도 미쳐본 적이 없으니 문득 그만 둘 수 있겠는가?[昔人尙友千古, 而吾未嘗及四方, 遽可已乎?]”라고 한 데서 보이고, 황정견(黃庭堅)이 주돈이(周敦頤)의 인품을 평하여 “당세에서 구하는 것을 비루하게 여기고 위로 천고의 인물과 벗한다.[陋于希世而尙友千古]”라고 한 데서 보이고, 두보(杜甫)의 시 우제(偶題)에 “문장은 천고토록 썩지 않을 사업, 잘 됐는지의 여부는 마음속으로 잘 안다오.[文章千古事, 得失寸心知.]”라고 한 데서 보인다.
- 장공[長空] 높고 먼 하늘. 넓고 높고 먼 하늘. 참고로, 주희(朱熹)의 시 제서림가사달관헌(題西林可師逹觀軒)에 “옛 절에 다시 오니 감개가 깊은데, 작은 집은 옛날에 지내던 그대로이네. 지난날 묘처라고 여겼던 것이 지금은 한으로 남나니, 만고의 하늘에 한 조각 마음이로다.[古寺重來感慨深, 小軒仍是舊窺臨. 向來妙處今遺恨, 萬古長空一片心.]”라고 한 데서 보인다.
- 경륜[經綸] 국가를 경영하는 일. 나라를 다스리는 포부와 재능. 정치적인 식견. 국가의 대사(大事)를 다스릴 것을 꾀함. 큰 포부(抱負)를 가지고 어떤 일을 조직적으로 계획함. 또는 그 계획이나 포부. 천하(天下)를 다스리는 것. 또는 이에 필요한 경험이나 능력. 참고로 주역(周易) 둔괘(屯卦) 상전(象傳)에 “구름과 우레가 둔이니, 군자가 보고서 경륜한다.[雲雷屯, 君子以, 經綸.]”라고 하였는데, 이에 대한 주자(朱子)의 본의(本義)에 “경륜은 실을 다스리는 일이니, 경은 이끎이요, 윤은 다스림이다. 어려운 세상은 군자가 큰일을 할 수 있는 때이다.[經綸, 治絲之事, 經, 引之; 綸, 理之也. 屯難之世, 君子有爲之時也.]”라고 하였다. 또, 중용장구(中庸章句) 제32장에 “오직 천하에 지극히 성실한 분이어야 능히 천하의 대경을 경륜하며 천하의 대본을 세우며 천지의 화육을 알 수 있다.[唯天下至誠, 爲能經綸天下之大經, 立天下之大本, 知天地之化育.]”라고 하였다.
- 만변[萬變] 온갖 변화(變化). 끝없이 변화함. 갖가지 변고가 있음. 여러 가지로 변화하다. 천변만화하다. 참고로, 주희(朱熹)의 경재잠(敬齋箴)에 “둘을 둘로 여기지 말고 셋을 셋으로 여기지 말아서 오직 마음을 전일하게 하여 모든 변화를 살피라.[弗貳以二, 弗參以三, 惟心惟一, 萬變是監.]”라고 한 데서 보인다.
【譯文】 小中見大, 大中見小.
物體沒有大過天空大地太陽月亮的, 然而杜甫卻說 : “日月是籠中的鳥雀, 天地是水上的浮萍.” 事情沒有大過迎揖遜讓征伐誅滅的, 然而邵雍卻說 : “唐虞謙讓不過三杯酒, 湯武交爭只是一局棋” 人們能夠用這樣的胸襟眼界容納天地四方, 古今久遠年代, 事情到來猶如漚泡產生在浩瀚的海洋, 事情過去如同幻影湮滅在遼闊的天空, 自然是經緯綱綸萬般變化也不能移動一粒微塵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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