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예와 치욕이 한 꼭지에 달렸거늘
굳이, 치욕은 싫어하고
영예만을 추구할 필요가 있겠으며
살음과 죽음이 한 뿌리를 가졌거늘
굳이, 살고자 욕심내고
죽음은 두려워할 필요가 있겠는가.
榮與辱共蒂, 厭辱何須求榮.
영여욕공체, 염욕하수구영.
生與死同根, 貪生不必畏死.
생여사동근, 탐생불필외사.
<菜根譚채근담 淸刻本청각본(乾隆本건륭본) : 評議평의>
- 영욕[榮辱] 영화(榮華)와 치욕(恥辱). 영예와 치욕을 아울러 이르는 말. 흔히 세월의 흐름에 따라 점철되는 영광과 치욕을 아울러 이르는 말. 참고로, 주역(周易) 계사전 상(繫辭傳上)에 “언행은 군자의 추기이다. 추기가 나오는 것은 영욕이 주체이다.[言行 君子之樞機 樞機之發 榮辱之主也]”라고 하였고, 강절(康節) 소옹(邵雍)의 시 수미음(首尾吟) 135수 중, 제22수의 함련(頷聯)에 “사생(死生)에 이르기까지 모두 처결한다면, 그 밖의 영욕(榮辱)은 알 수 있다네.[以至死生皆處了 自餘榮辱可知之]”라고 하였고, 소옹(邵雍)의 이천격양집서(伊川擊壤集序)에 “관물의 즐거움으로 말하면 또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비록 사생(死生)과 영욕(榮辱)이 눈앞에 전개되면서 싸움을 벌인다 할지라도, 우리의 주관적인 마음이 그 속에 개입되지만 않는다면, 사시에 따라 바람과 꽃과 눈과 달이 우리의 눈앞에 한 번 스쳐 지나가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況觀物之樂複有萬萬者焉. 雖死生榮辱轉戰於前, 曾未入於胸中, 則何異四時風花雪月一過乎眼也?]”라고 하였고, 관자(管子) 목민(牧民)에 “곳집이 가득 차면 예절을 알게 되고, 의식이 풍족하면 영욕을 알게 된다.[倉廩實則知禮節, 衣食足則知榮辱.]”라고 하였고, 주역(周易) 계사전 상(繫辭傳上)에 “언행은 군자의 추기이니 추기의 발함이 영욕의 주체이다. 언행은 군자가 천지를 감동시키는 것이니 삼가지 않을 수 있겠는가?[言行, 君子之樞機. 樞機之發, 榮辱之主也. 言行, 君子之所以動天地也, 可不愼乎.]”라고 한 데서 보인다.
- 사생영욕[死生榮辱] 죽음과 삶과 영예와 치욕의 뜻으로, 인간 삶의 파란만장(波瀾萬丈) 인생 역정의 의미한다. 소옹(邵雍)의 격양집자서(擊壤集自序)에 “비록 사생과 영욕이 눈앞에 전개되어 싸움을 벌인다 할지라도, 흉중에 그것을 개입시키지 않는다면, 사시에 따라 바람과 꽃, 눈과 달 등이 우리의 눈앞에 한번 스쳐 지나가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雖死生榮辱, 轉戰於前, 曾未入于胷中, 則何異四時風花雪月一過乎眼也?]”라고 하였다.
- 공체[共蒂] 한 꼭지. 병체(竝蒂). 참고로, 당(唐)나라 두보(杜甫)의 시 진정(進艇)의 경련(頸聯)에 “함께 나는 호랑나비는 원래 서로 쫓고, 나란히 핀 연꽃은 본래 한 쌍이네.[俱飛蛺蝶元相逐, 竝蒂芙蓉本自雙.]”라고 하였다.
- 하수[何須] 하필(何必). 구태여 ~할 필요가 있겠는가. 어찌 ~할 필요가 있겠는가. 굳이 ~할 필요가 없다. 무엇이 다른가[何異]. 참고로, 조식(曹植)의 시 야전황작행(野田黃雀行)에서 “날카로운 칼 한 자루 내 손 안에 없는데. 친구가 많다 한들 무슨 소용 있겠는가.[利劍不在掌 結友何須多]”라고 하였고, 두보(杜甫)의 시 빈교행(貧交行)에 “손 뒤집으면 구름이요 손 엎으면 비로다. 경박한 작태 분분함을 어찌 셀 거나 있으랴.[翻手作雲覆手雨, 紛紛輕薄何須數.]”라고 하였고, 당(唐)나라 이교(李嶠)의 시 상청휘각우설(上淸暉閣遇雪)에 “이는 바로 신선이 경포를 대한 격이니, 무엇하러 옛 자취 찾아 요지로 가겠는가.[即此神仙對瓊圃, 何須轍跡向瑤池.]”라고 하였고, 왕안석(王安石)의 절구(絶句: 만사萬事)에 “닭과 벌레의 득실이야 어찌 따질 것 있으랴만, 붕새와 뱁새는 자적할 줄을 각기 안다오.[鷄蟲得失何須算 鵬鷃逍遙各自知]”라고 한 데서 보인다.
- 구영[求榮] 영예를 구하다. 영달을 구하다.
- 탐생[貪生] 장생(長生)을 바라다. 목숨을 아끼다. 사는 것에 지나치게 미련을 두는 것을 가리킨다. 폄훼하는 의미가 담겨 있다. 참고로, 한비자(韓非子) 난언(難言)에 “말이 세속에 영합하고 말이 남을 거스르지 않으면 듣고서 제 목숨을 부지하려고 윗사람에게 아첨한다고 여길 것이다.[言而近世, 辭不悖逆, 則見以爲貪生而諛上.]”라고 하였고, 장자(莊子) 지락(至樂)에 “장자(莊子)가 초(楚)나라로 가다가 앙상한 해골을 보았는데, 바싹 말라 겨우 형체만이 남아 있었다. 장자가 말채찍으로 해골을 두드리며 해골에게 ‘그대는 과도하게 생(生)의 욕망을 추구하다가 도리(道理)를 잃어서 이 지경이 된 것인가? 아니면 그대는 나라의 멸망을 만나 죽었거나 도끼로 주륙당하는 형벌에 처해져 이렇게 된 것인가? 또는 그대는 좋지 못한 짓을 저질러 부모와 처자에게 치욕을 남기게 된 것을 부끄럽다고 자살하여 이렇게 된 것인가? 아니면 그대는 추위와 배고픔의 환난을 만나서 이렇게 된 것인가? 아니면 그대의 수명이 다해서 이렇게 된 것인가?[夫子貪生失理, 而爲此乎? 將子有亡國之事, 斧鉞之誅, 而爲此乎! 將子有不善之行, 愧遺父母妻子之醜, 而爲此乎? 將子有凍餒之患, 而爲此乎? 將子之春秋故及此乎?]’라고 물었다.”고 한 데서 보인다.
- 탐생외사[貪生畏死] 목숨을 아끼고 죽음을 두려워하다. 한서(漢書) 문삼왕전(文三王傳)에 “지금 유립(劉立)은 스스로 중랑(中郞) 조장(曹將)을 죽인 사실을 알고 있었고, 시간이 촉박하니 삶을 탐내고 죽음을 두려워하여, 거짓으로 쓰러져 병든 체하며, 잠시라도 벗어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今立自知賊殺中郞曹將, 冬日迫促, 貪生畏死, 即詐僵仆陽病, 徼幸得踰於須臾.]”라고 한 데서 보인다.
- 불필[不必] 필요(必要)가 없음. ~하지 마라. ~할 필요가 없다. ~할 것까지는 없다. 반드시 ~한 것은 아니다. 참고로, 논어(論語) 헌문(憲問)에 “덕을 소유한 사람은 반드시 이에 합당한 말을 하게 마련이지만, 그럴듯한 말을 한다고 해서 그 사람에게 꼭 덕이 있다고는 말할 수 없다.[有德者, 必有言, 有言者, 不必有德.]”라는 공자의 말이 나온다.
- 외사[畏死] 죽음을 두려워하다. 참고로, 서경(書經) 강고(康誥)에 “백성들이 스스로 죄를 저질러 강도 짓을 하고 훔치며 속이고 도둑질하며 재물 때문에 사람을 죽이거나 쓰러뜨리고도 사나워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를 미워하지 않는 이가 없다.[凡民自得罪, 寇攘姦宄, 殺越人于貨, 暋不畏死, 罔弗憝.]”라고 하였고, 한서(漢書) 문삼왕전(文三王傳)에 “지금 유립(劉立)은 스스로 중랑(中郞) 조장(曹將)을 죽인 사실을 알고 있었고, 시간이 촉박하니 삶을 탐내고 죽음을 두려워하여, 거짓으로 쓰러져 병든 체하며, 잠시라도 벗어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今立自知賊殺中郞曹將, 冬日迫促, 貪生畏死, 即詐僵仆陽病, 徼幸得踰於須臾.]”라고 한 데서 보인다.
【譯文】 榮辱共蒂, 生死同根.
榮耀與羞辱共一蒂, 厭惡羞辱又何必追求榮耀 ; 生存與死亡同一根, 貪戀生存就不必畏懼死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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