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잡하고 긴급한 일을 당하여
귀먹고 눈먼 사람을 부려야 하고
쫓고 쫓기는 상황을 만나
야위고 병든 말을 타야 하며
희미하게 꺼져가는 촛불 아래
뒤엉킨 실타래를 풀어야 하는데도
뜻과 생각이 조급해지지 않고
목소리와 얼굴빛이 변하지 않으며
일처리 또한 뒤늦지 않는 사람이라면
그 재능과 기량에 나는 진심으로 감복할 것이다.
當繁迫事, 使聾瞽人.
당번박사, 사농고인.
值追逐時, 騎瘦病馬. 對昏殘燭, 理爛亂絲.
치추축시, 기수병마. 대혼잔촉, 이란난사.
而能意念不躁, 聲色不動, 亦不後事者, 其才器吾誠服之矣.
이능의념부조, 성색부동, 역불후사자, 기재기오성복지의.
<呻吟語신음어 : 應務응무>
- 번박[繁迫] 번다(繁多)하고 긴박(緊迫)하다. 일이 많고 촉박하다. 일이 많고 긴박하다. 복잡하고 촉박하다. 할 일이 많고 시급하다. 일이 많고 매우 급하다. 정신없이 바쁘다. 참고로, 양계초(梁啓超)의 호남시무학당학약(湖南時務學堂學約)에 “정자(程子)는 한나절은 고요히 앉아 마음을 다스리고, 한나절은 책을 읽었는데, 지금은 해야 할 일이 많고 촉박하여 그렇게 할 수 없다.[程子以半日靜坐, 半日讀書, 今功課繁迫, 未能如此.]”라고 한 데서 보인다.
- 농고[聾瞽] 귀머거리와 소경. 귀가 멀고 눈이 먼 사람. 귀먹고 눈멀다. 지각이 없고 식견이 좁은 사람 또는 무지한 사람을 비유하기도 한다. 참고로, 신당서(新唐書) 권107 진자앙열전(陳子昂列傳) 찬(贊)에 “자앙이 무후에게 유세하여 명당과 태학을 부흥시켰는데, 그 말은 매우 고상하나 자못 괴이하고 우습도다. …… 장님은 태산을 보지 못하고, 귀머거리는 우렛소리를 듣지 못하니, 자앙은 말에 있어 그 귀머거리와 장님이 아니겠는가![子昂說武后興明堂太學, 其言甚高, 殊可怪笑. …… 瞽者不見泰山, 聾者不聞震霆, 子昂之於言, 其聾瞽歟!]”라고 한 데서 보인다.
- 추축[追逐] 뒤쫓다. 추구하다. 뒤쫓아 다님. 쫓아 버림. 친구끼리 서로 오가며 사귐. 남의 뒤를 쫓아 따름. 서로 이기려고 다투며 덤벼듦. 서로 세력을 다투다. 쫓고 쫓기며 하다. 추구하다. 쫓다. 참고로, 소식(蘇軾)의 조주한문공묘비(潮州韓文公廟碑)에 “이백(李白)과 두보(杜甫)를 따라 함께 나래치고 올라가 노닐었으므로, 장적과 황보식(皇甫湜) 등은 땀을 흘리며 달리다가 넘어지기 일쑤였다.[追逐李杜參翶翔, 汗流籍湜走且僵.]”라고 한 데서 보인다.
- 수병[瘦病] 야위고 병듦. 수척하고 초췌하다. 마르고 초췌하다. 수척하고 피곤해 보이다. 참고로, 시경(詩經) 주남(周南) 여분(汝墳)의 “방어의 꼬리 붉으니, 왕실이 불타는 듯하네.[魴魚赬尾, 王室如燬.]”라는 구절에 대한 정현(鄭玄)의 전(箋)에 “군자가 어지러운 세상에 벼슬하여 안색이 초췌한 것이 마치 물고기가 지치면 꼬리가 붉어지는 것과 같다. 군자가 그러한 까닭은 왕실의 잔혹함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니, 이때에 주왕(紂王)이 제위(帝位)에 있었다.[君子仕於亂世, 其顔色瘦病, 如魚勞則尾赤. 所以然者, 畏王室之酷烈, 是時紂存.]”라고 한 데서 보이고, 소식(蘇軾)의 시 왕진경작연강첩장도부부시십사운진경화지어특기려인복차운(王晉卿作煙江疊嶂圖仆賦詩十四韻晉卿和之語特奇麗因㚆次韻)에 “병으로 수척해져 도리어 기이한 뼈마디가 드러나니, 소금수레 끄는 재난이 어찌 운명이 아니겠는가.[却因瘦病出奇骨, 鹽車之厄寧非天.]”라고 한 데서 보인다.
- 잔촉[殘燭] 거의 다 타 꺼지려는 촛불. 거의 꺼져 가는 촛불. 다 타고 얼마 남지 않은 촛불. 밤이 깊어진 것을 뜻하기도 하고, 인생의 덧없음을 뜻하기도 한다.
- 난란[爛亂] 흐트러지고 뒤엉킴. 흐트러지고 어지러움.
- 난사[亂絲] 헝클어진 실.
- 의념[意念] 생각. 견해. 관념.
- 부조[不躁] 조급하지 않다. 침착하다.
- 성색[聲色] 말소리와 얼굴빛을 아울러 이르는 말. 음악(音樂)과 여색(女色)을 아울러 이르는 말. 목소리와 낯빛. 언어(言語)와 기색(氣色). 음악과 미색 등의 감각적 오락. 넓게는 육근(六根)의 감각 기능. 인간이 사는 욕락(欲樂)의 세계를 표현한 것이다. 참고로, 중용장구(中庸章句) 제33장에 “시경(詩經)에 이르기를 ‘나는 밝은 덕이 음성과 얼굴빛을 대단찮게 여김을 생각한다.’라 하거늘 공자께서는 ‘음성과 얼굴빛은 백성을 교화함에 있어 말단이다.’라고 하였다.[詩云 予懷明德 不大聲以色 子曰 聲色之於以化民 末也]”고 하였고, 순자(荀子) 성악편(性惡篇)에 “사람의 본성은 악하니, 그 선한 것은 작위로 이루어진 것이다. 지금 사람의 본성은 태어나면서부터 이익을 좋아하는 마음이 있는데 이를 그대로 따르기 때문에 쟁탈이 생겨나 사양하는 마음이 없는 것이며, 태어나면서부터 미워하는 마음이 있는데 이를 그대로 따르기 때문에 해침이 생겨나 충신(忠信)이 없는 것이며, 태어나면서부터 눈과 귀의 욕망이 있고 아름다운 음악과 여색을 좋아하는 마음이 있는데 이를 그대로 따르기 때문에 음란함이 생겨나 예의와 규범이 없는 것이다.[人之性惡, 其善者, 僞也. 今人之性, 生而有好利焉, 順是, 故爭奪生而辭讓亡焉; 生而有疾惡焉, 順是, 故殘賊生而忠信亡焉; 生而有耳目之欲, 有好聲色焉, 順是, 故淫亂生而禮義文理亡焉.]”라고 한 데서 보인다.
- 부동[不動] 움직이지 않음. 물건이나 몸이 움직이지 아니함. 생각이나 의지가 흔들리지 아니함. 한번 가진 마음이나 신념이 흔들리지 않음. 참고로, 중용장구(中庸章句) 제33장에 “시경(詩經)에 ‘네가 홀로 방안에 있음을 보니, 여기서도 방 귀퉁이에 부끄럽지 않다.’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군자는 동하지 않아도 공경하며, 말하지 않아도 믿게 한다.[詩云: 相在爾室, 尙不愧于屋漏. 故君子不動而敬, 不言而信.]”라고 하였고, 회남자(淮南子) 병략훈(兵略訓)에 “날아다니는 새가 움직이지 않으면, 그물에 걸리지 않을 수 있다.[飛鳥不動, 不絓網羅.]”라고 하였고, 주역(周易) 계사전 상(繫辭傳上)에 “역(易)은 생각도 없고 하는 것도 없다. 하지만 고요히 움직이지 않고 있다가, 일단 느끼게 되면 마침내 천하의 일을 통하게 된다. 천하의 지극히 신묘한 자가 아니면 누가 여기에 참여하겠는가.[易, 无思也, 无爲也. 寂然不動, 感而遂通天下之故. 非天下之至神, 其孰能與於此.]”라고 한 데서 보인다.
- 부동[不動] 팔대(八大) 명왕(明王)의 하나로 중앙(中央)을 지키며 일체의 악마(惡魔)를 굴복시키는 왕으로, 보리심(菩提心)이 흔들리지 않는다 하여 이렇게 이른다. 오른손에 칼, 왼손에 오라를 잡고 불꽃을 등진 채 돌로 된 대좌(臺座)에 앉아 성난 모양(模樣)을 하고 있다. 제개장보살(除蓋障菩薩)의 화신(化身)으로 오대존(五大尊) 명왕(明王)의 하나이기도 하다.
- 후사[後事] 뒷일. 죽은 뒤의 일. 뒷날에 생길 일. 일을 미루다. 일을 뒤로하다. 참고로, 사기(史記) 진시황본기(秦始皇本紀)에 “항간의 속담에 “지난 일을 잊지 않으면 뒷일의 스승이 된다.”라고 하였다. 이 때문에 군자가 나라를 다스릴 때는 상고 시대를 자세히 살펴 그 시대에 증험해 보고, 세상일을 참조하여 성쇠의 이치를 관찰하며, 권세의 적합함을 세심히 살피어 버리고 얻는 것에 순서를 두고, 변화는 때에 따르기 때문에 세월이 오래 지속되고 사직도 안정되었던 것이다.[野諺曰: ‘前事之不忘, 後事之師也.’. 是以君子爲國, 觀之上古, 驗之當世, 參以人事, 察盛衰之理, 審權勢之宜, 去就有序, 變化有時, 故曠日長久而社稷安矣.]”라고 하였고, 자치통감강목(資治通鑑綱目)에 호씨(胡氏: 호인胡寅)가 장량(張良)을 평하기를 “훌륭하다, 자방(子房)이 간언을 잘하였구나. 일에 앞서서 억지로 떠들지 않고, 일에 뒤늦어서 기회를 잃지 않으며, 묻지 않으면 말하지 않고, 말하면 반드시 그 옳음에 합당하였다. 그러므로 듣기가 쉽고 쓰기에 어렵지 않았던 것이다.[善乎! 子房之能納說也. 不先事而彊聒, 不後事而失幾, 不問則不言, 言則必當其可. 故, 聽之易而用之不難也.]”라고 한 데서 보인다.
- 재기[才器] 사람이 지닌 재주와 기량(器量)을 아울러 이르는 말. 재주가 있어서 인재(人材)가 될 만한 인품(人品). 또는 그런 사람.
- 재기[材器] 재주와 국량(局量). 사람의 됨됨이와 쓸모 있는 바탕. 재기(材器)재주와 국량(局量). 사람의 됨됨이와 도량(度量). 쓸모 있는 사람. 재능. 건축·기구에 쓰이는 재목.
- 성복[誠服] 정말로 복종함. 탄복하다. 심복(心服)하다. 참고로, 맹자(孟子) 공손추 상(公孫丑上)에 “덕으로 남을 심복하게 하면 마음속으로 희열하며 참으로 귀의하게 되는 법인데, 예를 들면 칠십 명의 제자가 공자에게 귀의한 것이 그것이다.[以德服人者, 中心悅而誠服也, 如七十子之服孔子也.]”라고 하였고, 근사록(近思錄) 권14 관성현류(觀聖賢類)의 북송(北宋)의 이천(伊川) 정이(程頤)가 지은 명도(明道) 정호(程顥)의 전기(傳記)에 “선생은 현우(賢愚)와 선악을 막론하고 모두 그들을 감복시켰기 때문에 교활하고 거짓된 사람도 선생에게는 정성을 바치고, 포악하고 거만한 사람도 선생에게는 공경을 다하며, 멀리서 그 풍도를 듣기만 해도 진정으로 감복하고, 가까이에서 그 덕을 목도하는 사람은 그에게 심취하였다.[賢愚善惡, 咸得其心, 狡僞者獻其誠, 暴慢者致其恭, 聞風者誠服, 覿德者心醉.]”라고 한 데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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