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대[望大] 바라는 욕심이 크다는 말이다.
망대덕사소원[忘大德思小怨] 큰 은덕을 잊고 작은 원망을 생각함. 시경(詩經) 소아(小雅) 곡풍(谷風) 3장에 “나의 큰 은덕을 잊고 나의 작은 원망을 생각하는가?[忘我大德, 思我小怨?]”라고 한 것에 대한 소주(小註)에 경원 보씨(慶源輔氏: 보광輔廣)가 말하기를 “대덕은 붕우의 의리가 하늘에서 나온 것을 말하고, 소원은 원망하는 말과 성난 기색이 사람에게서 나온 것을 말한다. 대덕을 잊고 소원을 생각하니 필시 당시의 사람 중에 이와 같은 실제의 일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마지막 장에 바람으로 인하여 비유를 삼아 분명하게 말하여 이와 같이 해서는 안 됨을 경계한 것이다.[大德謂朋友之義出於天者, 小怨謂懟語忿色生於人者. 忘大德思小怨, 必是當時人有如此實事. 故末章因風以爲比而明言之, 以戒其不可如是也.]”라고 하였다.
망대망생[罔戴罔生] 서경(書經) 우서(虞書) 대우모(大禹謨)에 “사랑해야 되는 것은 임금이 아니겠는가. 두려워해야 되는 것은 백성이 아니겠는가. 백성은 임금이 아니면 누구를 받들며, 임금은 백성이 아니면 나라를 지킬 수 없을 것이니, 네가 가진 지위에서 신중하게 행동하여 사람들이 누구나 다 원하는 것을 경건하게 수행하라. 사해가 곤궁하면 하늘의 녹이 영원히 끊어지리라.[可愛非君? 可畏非民? 衆非元后, 何戴? 后非衆, 罔與守邦? 欽哉! 愼乃有位, 敬修其可願, 四海困窮, 天禄永終.]”라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
망대부[莽大夫] 후한 때 양웅(揚雄)을 가리켜 주희(朱熹)가 쓴 말이다. 양웅은 한(漢)나라 성제(成帝) 때의 학자로 덕망이 높았는데, 후에 왕망(王莽)이 왕위를 찬탈하여 세운 신(新)나라의 대부가 되었다. 주희는 자치통감강목(資治通鑑綱目)에서 양웅을 폄하하여 “왕망의 대부 양웅이 죽었다.[莽大夫揚雄死]”라고 기록하였다.
망대부[莽大夫] 망대부(莽大夫)는 ‘왕망(王莽)의 대부’라는 뜻으로, 양웅(揚雄)을 폄하하여 일컫는 말이다. 양웅(揚雄)은 전한(前漢) 말기의 학자로, 자는 자운(子雲)이다. 박학다식하여 문장으로 이름을 드날렸다. 왕망(王莽)은 한 원제(漢元帝)의 비인 효원황후(孝元皇后)의 조카로, 일찍이 대사마(大司馬)가 되어 권력을 잡았다. 애제(哀帝)가 즉위하자 물러났다가 애제가 죽은 뒤 다시 기용되어 평제(平帝)를 옹립하고 자신의 딸을 황후로 들여 조정의 정사를 전횡하였다. 이윽고 평제를 죽인 뒤 그 어린 아들 영(嬰)을 세워 섭정을 하면서 스스로 가황제(假皇帝)라고 일컫더니 마침내 제위를 찬탈하고 스스로 천자가 되어 국호를 신(新)이라고 하였다. 양웅은 왕망이 제위를 찬탈한 뒤에 그의 조정에서 벼슬하여 대부가 되었으며, ‘진(秦)나라의 학정을 비난하고 신(新)나라의 미덕을 찬미한다’는 의미의 극진미신(劇秦美新)이라는 글을 지어 왕망이 세운 신나라를 찬미하기도 하였다. 뒤에 주희(朱熹)가 자치통감강목(資治通鑑綱目)을 저술하면서 양웅이 왕망에게 아첨했던 것을 온당치 못하게 여겨 양웅의 죽음을 두고 ‘왕망의 대부 양웅이 죽다.[莽大夫揚雄死.]’라고 폄하(貶下)한 일이 있다. <漢書 卷87 揚雄傳>
망대형[亡大兄] 망대형(亡大兄)은 진 간문제(晉簡文帝)의 세자인 도생(道生). 성품이 조급하고 예도(禮度)에 어긋나는 일이 많아 유폐되어 24세 때 죽었다.
망덕서원[望德書院] 함경남도 정평군(定平郡) 정평읍(定平邑)에 있던 서원으로, 선조(宣祖) 때에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와 정암(靜庵) 조광조(趙光祖)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세웠는데, 이때에 와서 포저와 청음(淸陰) 김상헌(金尙憲)을 배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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