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사[網絲] 거미줄. 그물을 뜨는 데에 쓰는 실.
망사[望祀] 망제(望祭)와 같은 말로, 제사를 지내려는 산천에까지 가지 않고 먼 곳에서 바라보면서 축원을 올리며 지내는 제사로, 오악(五嶽), 사진(四鎭), 사독(四瀆)에 지내는 제사 및 유(類), 조(造), 회(禬), 영(禜)의 제사를 모두 포괄한다. 멀리 산천을 우러르며 음식을 차리고 불을 피워 신에게 제사를 드린다. 망질(望秩). 망사(望祠). 매달 보름에 지내는 제사.
망사[望祠] 제사 명칭으로 망사(望祀)와 같다. 멀리서 산천에 지내는 제사인데, 오악(五嶽), 사진(四鎭), 사독(四瀆)에 지낸다.
망사[罔赦] 용서할 수 없을 정도의 큰 죄.
망사대[望思臺] 한나라 무제(武帝)가 강충(江充)의 무고(巫蠱) 사건에 억울한 누명을 쓰고 자살한 여태자(戾太子)를 불쌍히 여겨 사자대(思子臺)와 함께 지은 누대이다. 무제가 병들었을 때 강충이 여태자가 저주(咀呪)한 때문이라고 하면서 무고 사건을 일으켜 수많은 사람을 죽게 했다. 이에 격분한 여태자는 그를 죽이고 자살했는데, 뒤에 무제는 여태자의 억울함을 깨닫고는 강충의 삼족을 멸하였다. <漢書 卷45 江充傳> <漢書 武五子傳>
망사대[望思臺] 한 무제(漢武帝)가 억울하게 죽은 위 태자(衛太子)를 위해 세운 대이다. 태자는 위 황후(衛皇后)의 소생이었는데, 무제 말년에 황제의 병이 깊어지자, 태자와 위 황후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강충(江充)이 훗날 자신의 처지가 위태로워질 것을 두려워하여, 마침 일어난 무고(巫蠱) 사건을 이용해 태자를 궁지에 빠뜨렸다. 강충은 무제에게 황제의 병이 낫지 않는 것은 누군가의 저주 때문이라고 충동질하여 자신이 사자(使者)가 되어 무고를 다스렸다. 그는 저주에 쓰인 나무 인형[木偶人]을 찾는다며 궁궐 안을 차례차례 파 들어가다가 태자궁에서 나무 인형을 찾아내었다. 이때 황제는 병이 깊어 감천궁(甘泉宮)에서 피서 중이었고 황후와 태자만 궁궐에 있었는데, 이에 앞서 무고로 승상 및 공주, 위 황후의 종족들이 죽음을 당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위험을 느낀 태자가 황제의 명을 사칭하여 강충을 잡아들이도록 하였다. 그러나 강충 쪽에서 이를 의심하자 태자가 무력을 써서 강충 등을 잡아들여 죽이고, 마침내 승상 유굴리(劉屈氂) 등의 군대와 전쟁을 하여 도성이 크게 어지러워졌다. 태자가 모반을 일으켰다는 소문이 퍼져서 백성들은 태자 쪽에 가담하지 않았고, 마침내 태자는 패배하여 호(湖)로 달아났다가 자신을 체포하려는 관리들이 닥치자 방 안으로 들어가서 문을 잠그고 자결하였다. 뒤에 황제가 태자에게 다른 뜻이 없었음을 깨달았고, 또 차천추(車千秋)가 상서(上書)하여 태자의 원통함을 아뢰자, 황제가 태자를 불쌍하게 여겨 사자궁(思子宮)을 짓고 태자가 달아났던 곳에 귀래망사대(歸來望思臺)를 지었다. <漢書 卷6 武帝紀, 卷45 江充傳, 卷63 武五子傳>
망사망사[罔使罔事] 서경(書經) 함유일덕(咸有一德)에 “임금은 백성이 아니면 부릴 사람이 없고 백성은 임금이 아니면 섬길 사람이 없다.[后非民, 罔使. 民非后, 罔事.]”고 하였다.
망사지죄[罔赦之罪] 용서(容恕)할 수 없을 정도의 큰 죄(罪). 용서할 수 없는 큰 죄를 이른다.
망산[邙山] 낙양(洛陽) 북쪽에 있는 산명으로, 한(漢), 위(魏), 진(晉) 시대에 왕후(王侯)와 공경(公卿)들을 여기에 많이 장사 지냈던 데서, 묘지(墓地)의 뜻으로 쓰인다. 낙양 북쪽에 있었으므로 북망산(北邙山)이라 칭하기도 한다. 북망(北芒) 또는 망산(邙山)·겹산(郟山)·북산이라고도 한다.
망산[芒山] 망산(芒山)은 하남성(河南城) 영성현(永城縣)에 있는 산이다. 진시황(秦始皇)이 늘 ‘동남방에 천자의 기운이 있다’고 하여, 동쪽으로 행차하여 그 기운을 누르고자 하였다. 훗날 한 고조(漢高祖)가 되는 유방(劉邦)이 자신이 장본인이라 여겨 망산(芒山)과 탕산(碭山)의 습지대에 숨어 지냈는데, 그가 가는 곳마다 운기(雲氣)가 떠 있었다 한다. 번쾌(樊噲)도 그때 유방과 함께 숨어 지냈다 한다. <漢書 卷8 高祖本紀, 卷41 樊噲傳>
망삼준[亡三儁] 이제현(李齊賢)의 시 괴통(蒯通)에 “공로를 질투하고 화 즐김은 삼준을 망쳤고, 구변으로 이름 날려 두 신하 기용했네. 그 주인이란 한 마디로 죽음을 면했으니, 입을 꿰맨 묘중인과 같을 수 있겠는가.[嫉功樂禍亡三儁, 肆辯邀名起兩臣. 其主一言能免鑊, 豈如緘口廟中人.]”라고 한 데서 보이는데, 괴통(蒯通)이 역이기(酈食其)를 삶아 죽이게 만들고 전횡(田橫)을 패하게 만들고 한신(韓信)을 교만심이 나게 한 것을 이른다. <漢書 卷四十五 蒯伍江息夫列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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