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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신망가[忘身忘家], 망신범안[忘身犯顔], 망신부진[亡身不眞], 망신순리[忘身徇利], 망신지로[忘身之老]


망신루[望宸樓]  의주부의 동헌인 진변헌(鎭邊軒)에 붙어 있는 누각이다. 이해응(李海應)의 계산기정(薊山紀程)에서도 투호 놀이를 구경한 내용이 보인다.

망신루[望辰樓]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흥해읍 성내리에 있는 누대를 지칭하는 것으로 보인다. 1546년(명종1)에 흥해 읍성 동편에 건축하였으며, 1809년(순조9)에 중수하였다. 박장원(朴長遠)의 구당집(久堂集) 권1 망신루부(望辰樓賦)에 “이것은 어쩌면 두보의 시 ‘높은 누대에서 북극성을 바라보네.’라는 뜻을 취한 것이 아니겠는가.[此豈非杜子美之句危樓望北辰之意乎.]”라고 하였다.

망신망가[忘身忘家]  자신(自身)과 집안의 일을 잊는다는 뜻으로, 사(私)를 돌보지 않고 오직 나라와 공(公)을 위(爲)해 헌신(獻身)함을 이르는 말이다. 한서(漢書) 48권 가의전(賈誼傳)에는 “다른 사람의 신하가 된 자는 임금만 생각할 뿐 자신을 잊고, 나라만 생각할 뿐 집안을 잊고, 공적인 일만 생각할 뿐 사적인 일을 잊는다.[爲人臣者, 主耳忘身, 國耳忘家, 公耳忘私.]”라고 하였다.

망신범안[忘身犯顔]  망구범안지절(忘軀犯顔之節). 자신의 몸을 잊고 군주의 면전(面前)에서 곧은 말로 간하는 지조. 한서(漢書) 48권 가의전(賈誼傳)에는 “다른 사람의 신하가 된 자는 임금만 생각할 뿐 자신을 잊고, 나라만 생각할 뿐 집안을 잊고, 공적인 일만 생각할 뿐 사적인 일을 잊는다.[爲人臣者, 主耳忘身, 國耳忘家, 公耳忘私.]”라고 하고, 한비자(韓非子) 33권 외저설좌 하(外儲說左下)에는 “면전에서 지극히 간하는 것은 신하로서 동곽아(東郭牙)만한 이가 없다.[犯顔極諫, 臣不如東郭牙.]”라고 하였다.

망신부진 비역인[亡身不眞 非役人]  자기 몸을 죽여 참된 본성을 저버리면 남을 부리는 사람이 아님. 곧 자신의 참된 본성을 지키지 못하면 세상 사람들을 부리는 진인(眞人)이 되지 못하고 도리어 세상 사람들의 부림을 받는 수동적인 존재가 된다는 뜻이다. 장자(莊子) 제6편 대종사(大宗師)에 “만물에 통달함을 즐기는 것은 성인이 아니다. 따로 친근한 사람이 있는 것은 어짊이 아니다. 때에 앞서는 것은 현명한 것이 아니고, 이로움과 해로움이 같이 통하지 않는 것은 군자가 아니다. 명성을 쫓아서 자기를 잃는 것은 선비가 아니다. 자신을 망치면서도 참되지 않은 것은 남을 부리는 사람이 아니다.[樂通物, 非聖人也. 有親, 非仁也. 天時, 非賢也. 利害不通, 非君子也. 行名失己, 非士也. 亡身不眞, 非役人也.]”라고 한 데서 보인다. 곽상(郭象)은 “스스로 자기 본성을 잃어버리고 거짓으로 다른 사람을 따르게 되면 부림을 당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니 어찌 사람을 부릴 수 있겠는가[自失其性而矯以從物, 受役多矣, 安能役人乎.]”라고 풀이하였다.

망신순리[忘身徇利]  자신을 잊고 이익을 따름을 이른다. 자치통감(資治通鑑) 권232 당기(唐紀) 48에, 당나라 덕종 때 부병제 부활을 고려하자 이필(李泌)이 부병제의 장점을 역설할 때 장열이 시작했던 모병제를 비판하며 “병사가 땅에 정착하지 않으면 또 종족이 없으니 스스로 소중히 하고 아끼지 않아 제 몸을 잊은 채 이익을 따르니 화란이 마침내 생겨납니다.[兵不土著, 又無宗族, 不自重惜, 忘身徇利, 禍亂遂生.]”라고 한 말에서 인용한 것이다. 이필(李泌)은 업현후(鄴縣侯)에 봉해졌기 이업후(李鄴侯)라고도 부른다.

망신실례[望神室禮]  봄가을에 사직(社稷)을 봉심할 때 먼저 신실(神室)을 바라보고 절하는 예식이다.

망신지로[忘身之老]  예기(禮記) 표기(表記)에 “대도를 향해 전진하다가 힘이 다하면 중도에 쓰러질지언정, 몸이 늙어가는 것도 모두 잊고 여생이 얼마 되지 않는 것도 깨닫지 못한 채, 오직 애면글면 날마다 힘쓰며 전진하다가 죽은 뒤에야 그만두어야 하는 것이다.[鄕道而行, 中道而廢, 忘身之老也, 不知年數之不足也, 俛焉日有孳孳, 斃而后已.]”라는 공자의 말이 나온다.

망신청검[忘身請劍]  한 몸의 안위(安危) 잊고 상방검(尙方劍) 청함. 한서(漢書) 권67 주운전(朱雲傳)에 “한(漢)나라 성제(成帝) 때 괴리령(槐里令)으로 있던 주운(朱雲)이 성제에게 ‘상방참마검(尙方斬馬劍)을 주면 간신 한 사람을 참수하여 나머지 사람들을 경계하겠다.’라고 하니, 한 성제(漢成帝)가 ‘누구냐?’라고 묻자 바로 성제의 안창후(安昌侯) 장우(張禹)라 하였다. 이에 성제가 크게 노하였으나 주운은 굽히지 않고 직간하며 어전(御殿)의 난간을 잡아당겨 부러뜨렸다[절함折檻]. 성제가 뒤에 주운의 말이 옳음을 깨닫고 난간을 그대로 두어 직간(直諫)하는 신하의 본보기로 삼게 하였다.”는 고사에서 연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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