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어[忘魚] 물가에서 낚시를 하면서 물고기 잡는 것을 잊는다는 말이다. 소식(蘇軾)의 시 강교(江郊)에 “낚시하려 했으나 물고기 잡는 것은 잊고, 이 낚싯대와 줄만 즐기노라.[意釣忘魚, 樂此竿綫.]”라고 하였다.
망어강호[忘於江湖] 장자(莊子) 대종사(大宗師)에 “물이 바짝 말라 물고기들이 땅바닥에 처하게 되면, 서로들 김을 내뿜어 축축하게 해 주고 서로들 거품으로 적셔 주지만, 그보다는 강과 호수에서 서로들 잊고 지내느니만 못하다.[泉涸, 魚相與處於陸, 相呴以濕, 相濡以沫, 不如相忘於江湖.]”라고 하였다.
망어락[忘魚樂] 기심(機心)이 전혀 없는 즐거움을 뜻한다. 소식(蘇軾)의 시 강교(江郊)에 “낚시만 생각하고 고기는 잊어, 이 낚싯대와 줄만 즐기노니, 조용하고도 한가로이, 사물의 변화를 완상하네.[意釣忘魚, 樂此竿綫. 優哉悠哉, 玩物之變.]”라고 하였다.
망어전[忘魚筌] 고기를 잡고 나면 고기를 잡는 도구인 통발은 필요가 없는 것처럼 목적을 달성하고 나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도구는 잊어버린다는 뜻이다. 장자(莊子) 외물(外物)에 “통발은 고기를 잡는 것이니 고기를 잡고 나면 통발은 버리고, 올무는 토끼를 잡는 것이니 토끼를 잡고 나면 올무는 버리며, 말은 뜻을 담는 것이니 뜻을 얻고 나면 말은 버린다.[筌者所以在魚, 得魚而忘筌; 蹄者所以在兎, 得兎而忘蹄; 言者所以在意, 得意而忘言.]”라고 하였다. 득어망전(得魚忘筌).
망언[忘言] 뜻을 깨달으면 언어는 필요가 없어짐을 의미한다. 장자(莊子) 외물(外物)에 “통발은 고기를 잡는 도구이지만 고기를 잡고 나면 통발을 잊게 된다. 올가미란 토끼를 잡는 기구이지만 토끼를 잡고 나면 올가미를 잊게 된다. 말이란 것은 뜻을 표현하는 도구이지만, 뜻을 표현하고 나면 말을 잊게 된다. 우리는 어찌하면 말을 잊은 사람들과 더불어 얘기를 할 수 있게 될까?[筌者所以在魚, 得魚而忘筌. 蹄者所以在兎, 得兎而忘蹄. 言者所以在意, 得意而忘言. 吾安得夫忘言之人而與之言哉!]”라고 하였다.
망언[忘言] 적당하게 표현할 말을 찾지 못함을 이른다. 도잠(陶潛)의 시 음주(飮酒)에 “산기운은 조석으로 아름답고 나는 새는 서로 함께 돌아오네. 이 가운데 자연의 참뜻이 있는지라. 변론하려도 이미 말을 잊었네.[山氣日夕佳, 飛鳥相與還. 此中有眞意, 欲辯已忘言.]”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陶淵明集 卷三>
망언[妄言] 이치나 사리에 맞지 아니하고 망령(妄靈)되게 말함. 이치에 맞지 않고 허황되게 말함. 또는 그 말. 터무니없는 말을 하다. 망령된 말을 하다.
망언교[忘言交]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도 마음이 서로 잘 통하는 지기(知己)의 교의(交誼). 벗끼리 말을 주고받지 않아도 서로 뜻이 통하는 사이를 망언교(忘言交)라 한다. 진(晉)나라 산도(山濤)가 완적(阮籍)을 만나 죽림(竹林)에서 사귀며 망언(忘言)의 친교를 맺었다 한다. 진서(晉書) 권43 산도열전(山濤列傳)에 “산도(山濤)는 자(字)가 거원(巨源)으로, 하내(河內) 회현(懷縣) 사람이다. 아버지는 요(曜)로, 완구령(宛句令)을 지냈다. 산도는 일찍이 고아가 되어 가난하게 살았지만, 젊어서부터 그릇이 크고 굳건하여 평범한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았다. 천성이 장자(莊子)와 노자(老子)를 좋아하여 항상 몸을 숨기고 자신을 드러내지 않았다. 처음에는 혜강(嵇康), 여안(呂安)과 친하게 지냈으며, 나중에 완적(阮籍)을 만나자 곧 죽림(竹林)의 벗이 되어, 말이 필요 없는 허물없는 사귐을 가졌다.[山濤, 字巨源, 河內懷人也. 父曜, 宛句令. 濤早孤, 居貧, 少有器量, 介然不群. 性好莊老, 每隱身自晦. 與嵇康·呂安善, 後遇阮籍, 便為竹林之交, 著忘言之契.]”라고 하였다. 망언지교(忘言之交). 망언지계(忘言之契).
망언다사[妄言多謝] 자기(自己)가 한 말 속에 망언(妄言)이 있으면 깊이 사과(謝過)한다는 뜻으로, 편지(便紙) 따위의 글 끝에 자신(自身)의 말을 겸손(謙遜)히 낮추는 뜻으로 쓰는 말이다.
망언이지[汒焉異之] 멍해져서 그것을 괴이하게 여기게 되었다는 뜻. 멍해진 채 무엇이 무엇인지 모르게 되었다는 뜻으로 보는 것이 좀 더 명확하다. 汒은 茫과 통용, 아득하다, 멀다는 뜻. 장자(莊子) 추수(秋水)에 “나는 스스로 최고의 경지에 도달했다고 생각해 왔다. 그런데 나는 지금 장자(莊子)의 말을 듣고는 멍해진 채 무엇이 무엇인지 모르게 되어 버렸다.[吾自以爲至達已. 今吾聞莊子之言, 茫然異之.]”라고 한 데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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