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魏)나라 공숙좌(公叔痤)가 위나라의 장수(將帥)가 되어 한(韓)나라・조(趙)나라와 회북(澮北)에서 전투를 벌여 낙조(樂祚)를 사로잡았다. 위 혜왕(魏惠王)은 기쁜 마음에 교외에 나가 맞이하여 백만록(百萬祿)의 전지(田地)를 상으로 주었다. 공숙좌가 돌아와서 재배하며 사양하였다.
“무릇 사졸들이 붕괴되지 않게 하고 곧바로 내달아 흩어지지 않게 하며 적의 공격을 피하지 않게 한 것은 바로 오기(吳起)의 가르침이었지 저의 능력이 아니었습니다. 또 앞 지형의 험조(險阻)를 살펴 그에 맞는 이롭고 해로움에 대한 준비를 결정하여 3군으로 하여금 미혹에 빠지지 않게 한 것은 파녕(巴寧)과 찬양(爨襄)의 힘입니다. 그런가 하면 앞에서는 상벌을 분명히 밝혀주고 백성들로 하여금 뒤에서는 확고한 믿음을 갖도록 한 것은 바로 대왕의 밝은 법입니다. 적을 마주하여 이길 수 있다는 판단으로 북을 쳐서 감히 태만하거나 게으르지 않게 하는 것이 저의 능력일 뿐입니다. 왕께서는 특별히 저의 북 치는 오른손이 게으르지 않았다고 하여 상을 내리시니 도리에 맞는 것이겠습니까? 저에게 공이 있다고 하시지만 과연 무슨 공이 있겠습니까?”
왕이 말하였다.
“훌륭하오.”
그리고는 오기의 후손을 찾아 20만의 전지를 내려 주고, 파녕과 찬양에게는 각각 10만의 전지를 하사하였다.
왕이 말하였다.
“공숙좌를 어찌 훌륭한 장자(長者)라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미 과인을 위해 강한 적을 이기고도 옛 어진 이들의 후손도 빠뜨리지 않으며, 또 능력 있는 용사들의 공적을 덮어두지 않았으니, 이러한 공숙좌에게 어찌 상급을 더 늘리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리하여 다시 40만의 토지를 더하여 본래의 1백만에 1백 40만이 되게 하여 주었다. 그러므로 노자가 이르기를 ‘성인은 자신을 위해 저축함이 없이 모두 남의 것으로 여긴다. 그 때문에 자신은 더욱 소유하게 된다. 또 이미 모두 남에게 주기 때문에 자신은 갈수록 많아지는 것이다[聖人無積: 盡以爲人, 己愈有; 旣以與人, 己愈多.]’라고 하였는데 공숙좌가 바로 이에 해당한다.
<전국책 : 위책>
魏公叔痤爲魏將, 而與韓・趙戰澮北, 禽樂祚. 魏王說, 迎郊, 以賞田百萬祿之. 公叔痤反走, 再拜辭曰: “夫使士卒不崩, 直而不倚, 撓㨂而不辟者, 此吳起餘敎也, 臣不能爲也. 前脉形地之險, 阻決利害之備, 使三軍之士不迷惑者, 巴寧・爨襄之力也. 縣賞罰於前, 使民昭然信之於後者, 王之明法也. 見敵之可也, 鼓之, 不敢怠倦者, 臣也. 王特爲臣之右手不倦賞臣何也. 若以臣之有功, 臣何力之有乎?” 王曰: “善.” 於是索吳起之後, 賜之田二十萬; 巴寧・爨襄田各十萬. 王曰: “公叔豈非長者哉! 旣爲寡人勝强敵矣, 又不遺賢者之後, 不揜能士之迹, 公叔何可無益乎? 故又與田四十萬, 加之百萬之上, 使百四十萬. 故老子曰: ‘聖人無積: 盡以爲人, 己愈有; 旣以與人, 己愈多.’ 公叔當之矣. 【戰國策 : 魏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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