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울도[莽蔚島] 어느 곳인지 확실하지 않다. 최부(崔溥)의 표해록(漂海錄)에 울도(蔚島)에 대한 설명이 나오는데, 울도는 현재 인천광역시 옹진군 덕적면에 속하는 섬으로, 인천 서남쪽 71km 지점에 있다고 한다. 따라서 울도를 망울도로 표기한 것으로 추측된다.
망원[望苑] 박망원(博望苑)으로, 동궁(東宮)의 내원이다. 한 무제(漢武帝)가 여태자(戾太子) 거(據)를 위하여 박망원(博望苑)을 세우고 빈객이 출입하게 하였다. 문제 맡기에 당시 권세를 부리던 강충(江充)이 무고(巫蠱)의 사건을 기회로 삼아 태자를 무함하였는데, 태자가 소부(少傅) 석덕(石德)의 말을 듣고 군사를 일으켜 강충을 죽이고 나서 패하여 자살하였다.
망원정[望遠亭] 망원정(望遠亭)은 세종(世宗)의 형인 효령대군(孝寧大君)이 1424년(세종6)에 지은 것으로, 매년 봄과 가을 농사일을 살피고 한강에서 벌어지는 수전을 관람하기 위한 행차가 자주 있었다. 한번은 가뭄이 심하던 때 세종이 이곳에 왔는데, 때마침 소나기가 내려 들판이 촉촉이 젖는 것을 보고 ‘기쁜 비를 만난 정자’라는 뜻으로 희우정(喜雨亭)이란 이름을 내렸다고 한다. 이후 성종(成宗)의 형인 월산대군(月山大君)이 정자를 물려받아 고쳐 짓고, 먼 경치도 잘 보인다는 뜻으로 이름을 망원정으로 바꾸었다. 지금도 망원동(望遠洞)에 그 터가 남아 있다.
망원정[望遠亭] 망원정(望遠亭)은 양화도(楊花渡) 동쪽 언덕에 있는데, 원래 효령대군(孝寧大君)의 희우정(喜雨亭)이었다. 성종(成宗) 연간에 월산대군(月山大君)이 고쳐 짓고 망원정으로 개명하였는데, 매년 농사를 살필 때나 수전(水戰) 연습을 관찰할 때 성종이 늘 이 정자에 거둥했다고 한다. 성종이 일찍이 망원정시(望遠亭詩) 8수를 지었는데, 점필재 김종직(金宗直)이 성종의 시에 화운(和韻)하였다.
망원지화[亡猿之禍] 망원(亡猿)의 화(禍). 사소한 것을 추구하다가 큰 것을 잃을 수 있음을 비유한 말로, 회남자(淮南子) 설산훈(說山訓)에 “초나라 왕이 원숭이를 잃자 원숭이를 찾느라 나무를 다 베어내어 숲속의 나무가 없어졌고, 송나라 임금이 구슬을 잃자 구슬을 찾느라 연못물을 다 퍼내어 연못 속의 물고기가 말라죽었다.[楚王亡其猿, 而林木爲之殘, 宋君亡其珠, 池中魚爲之殫.]”고 한 데서 유래하였다.
망원해임고대[望遠海臨高臺] 악부 상화가사 가운데 등고구망원해(登高丘望遠海)가 있으며, 고취곡사 가운데 임고대(臨高臺)가 있다.
망원행[望遠行] 망원행(望遠行)은 사패(詞牌)의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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