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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인[妄認], 망인[罔人], 망인[亡人], 망인무당[亡人無黨], 망인무친[亡人無親]


망인[妄認]  무턱대고 인정함. 고금사문유취(古今事文類聚) 후집 권1 ‘무턱대고 조상으로 인식하지 않음[不妄認祖]’조가 이 말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

망인[罔人]  다른 사람을 속임.

망인[亡人]  망명인(亡命人)이란 뜻으로, 진(晉)나라 공자(公子)인 중이(重耳) 즉 나중의 문공(文公)을 이른다. 진 문공(晉文公)이 공자(公子)로 있을 때 여회(驪姬)의 참소를 만나 19년 동안 외국(外國)에 망명(亡命)한 일이 있었다.

망인무당 유당필유수[亡人無黨 有黨必有讎]  망명 중인 사람은 당여(黨與)가 없어야 하니 당여(黨與)가 있다 보면 반드시 원수가 있게 된다. 국어(國語) 진어(晉語) 기예답진목공문(冀芮答秦穆公問)에서 보인다.

망인무친 신인이위친[亡人無親 信仁以爲親]  망명객에게는 친근하게 상대해 줄 사람이 없고, 신의와 인덕이 있은 뒤라야 친근하게 상대해 줌. 망인(亡人)은 공자(公子) 중이(重耳)를 이르는 말이고 무친(無親)은 그가 불효자의 누명을 쓰고서 어버이를 버리고 외국으로 도망 나왔기 때문에 세상에서 친근하게 대해 줄 사람이 없다는 말이다. 국어(國語) 권8 진어(晉語)에, 진(秦)나라 목공(穆公)이 공자 집(縶)을 사자로 보내어 적(翟)으로 가서 공자 중이를 위로하게 하시기를 “과군께서 저를 시켜 공자가 망명의 근심 속에 또다시 거듭 어버이의 초상을 만난 것을 위로하라 하셨습니다. 과군께서 말씀하시기를 ‘과인은 들으니, 국가를 얻는 것도 항상 국상(國喪)의 때이고, 나라를 잃는 것도 항상 국상의 때라 하였소. 기회의 시기를 잃어서도 안 되고, 국상 기간이 길 수도 없으니, 공자는 고려해 보도록 하시오.’라고 하셨습니다.’”라고 하였다. 중이가 구범(舅犯)에게 이 일을 고하자, 구범이 말하였다. “옳지 않습니다. 망명객에게는 친근하게 상대해 줄 사람이 없습니다. 신의와 인덕이 있은 뒤라야 친근하게 상대해 주고 이렇게 해서 군주의 자리에 오른 자라야 위태로움에 빠지지 않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빈소가 아직 당에 차려져 있는 상태에서 이익을 구하려 하면, 백성들 중 누가 우리를 인덕이 있다 하겠으며, 공자들마다 똑같은 기회를 가졌는데 우리가 요행을 바라고자 하면, 백성들 중 누가 우리를 신의 있다고 하겠습니까. 인덕도 없고 신의도 없다면, 장차 무엇을 가지고 길이길이 이익을 누리겠습니까?” 이에 공자 중이가 나가서 사자를 만나 말하기를 “군주께서 은혜롭게 망명객을 위로해 주시고 또 거듭 명하는 말씀이 있으셨으나, 중이가 도망쳐 나온 신세여서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도 곡(哭)하고 읍(泣)하는 자리에도 참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또 어찌 감히 다른 뜻을 두어 군주의 은의를 욕되게 하겠습니까?”라고 하고, 재배하고서 머리를 땅에 조아리지 않았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한 차례 곡하고, 자리에서 물러가서는 개인적으로 사신을 만나지 않았다. 공자 집이 물러나와 양나라로 가서 공자 이오를 위로하기를 공자 중이에게 위로한 말과 똑같이 하였다. 이오가 기예(冀芮)에게 고하기를 “진나라 사람이 나를 돕겠답니다.”라고 하니, 기예가 말하였다. “공자께서는 노력하십시오! 망명 중인 사람은 소신을 고집하거나 몸을 깨끗이 가질 수 없습니다. 소신을 고집하거나 몸을 깨끗이 갖다보면 큰일을 이룰 수 없습니다. 많은 뇌물을 공자의 지위에 걸맞게 써야 할 것이니, 공자께서는 힘을 다하고 재물을 아끼지 마십시오. 공자들마다 똑같은 기회를 가졌는데 우리가 요행으로 구할 수 있다면 또한 뇌물이라도 쓰는 것이 옳은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에 공자 이오가 나와서 사자를 만나보고, 두 번 절하고서 머리를 땅에 대고 한참을 조아렸고, 자리에서 일어나서는 곡하지 않았고, 자리에서 물러나왔다가는 공자 집을 개인적으로 만나서 말하였다.……공자 집이 나라로 돌아와서 목공에게 복명하자, 목공이 말하기를 “나는 공자 중이를 도와주고 싶다. 중이의 사람됨이 어질다. 재배하고 머리를 땅에 조아리지 않았음은 후계자가 되는 것을 탐하지 않음이고, 자리에서 일어나 한 차례 곡한 것은 그 아버지를 사랑해서이고, 물러간 뒤에 사사로이 공자 집을 만나지 않은 것은 국가를 얻는 이익을 탐하지 않은 것이다.”라고 하였다.[乃使公子縶, 吊公子重耳於翟, 曰:“寡君使縶吊公子之憂, 又重之以喪. ‘寡人聞之, 得國常於喪, 失國常於喪. 時不可失, 喪不可久, 公子其圖之.’” 重耳告舅犯, 舅犯曰:“不可. 亡人無親, 信仁以爲親. 是故置之者不殆. 父死在堂而求利, 人孰仁我? 人實有之, 我以徼幸, 人孰信我? 不仁不信, 將何以長利?” 公子重耳出見使者, 曰:“君惠吊亡臣, 又重有命, 重耳身亡, 父死不得與於哭泣之位, 又何敢有它志, 以辱君義?” 再拜不稽首, 起而哭, 退而不私. 公子縶退, 吊公子夷吾於梁, 如吊公子重耳之命. 夷吾告冀芮曰:“秦人勤我矣.” 冀芮曰:“公子勉之. 亡人無狷潔, 狷潔不行. 重賂配德. 公子盡之, 無愛財! 人實有之, 我以徼幸, 不亦可乎?” 公子夷吾出見使者, 再拜稽首, 起而不哭, 退而私於公子縶, ……公子縶反, 致命穆公. 穆公曰:“吾與公子重耳, 重耳仁. 再拜不稽首, 不沒爲後也. 起而哭, 愛其父也. 退而不私, 不沒於利也.”]고 한 데서 보인다.

망인위천인[忘人爲天人]  사람들을 잊게 되면 그로 인해 자연의 사람이 됨. 장자(莊子) 경상초(庚桑楚)에 “남에게 굴복하고서도 부끄러워하지 않으면 사람들을 잊게 되니 사람들을 잊게 되면 그로 인해 자연의 사람이 된다.[夫複謵不饋而忘人, 忘人, 因以爲天人矣.]”라고 한 데서 보인다. 곽상(郭象)은 “사람의 감정이 없게 되면 저절로 자연의 사람이 된다.[無人之情, 則自然爲天人.]”라고 풀이하였다.

망인지세[忘人之勢]  다른 사람의 권세는 잊음. 맹자(孟子)가 옛날의 현사(賢士)에 대해 설명하면서 “자기의 도를 즐거워하며 남의 권세는 잊었으므로, 왕이나 공이 공경을 다하고 예를 극진히 하지 않으면 자주 볼 수가 없었다. 보는 것도 자주 하지 못하였는데, 하물며 신하로 삼을 수 있었겠는가.[樂其道而忘人之勢, 故王公不致敬盡禮, 則不得亟見之, 見且由不得亟, 而況得而臣之乎.]”라고 말한 대목이 맹자(孟子) 진심 상(盡心上)에 나온다.

망인지자[亡人之子]  도망친 사람의 아들. 도망친 사람은 괴외(蒯聵)를 이르고, 아들은 출공첩(出公輒)을 이른다. 괴외가 추방된 뒤 영공이 죽자, 위(衛) 나라에서는 괴외의 아들 첩을 임금으로 세웠다. 그 진(晉) 나라 조씨(趙氏)에게 망명해 있던 괴외는 조씨의 도움을 얻어 환국(還國)하려 하였으나 위 출공은 군사를 동원하여 부자간에 공방전을 벌였다. 그 4년 뒤 괴외는 위 나라의 권신 공회(孔悝)의 도움으로 출공첩을 몰아내고 드디어 임금이 되었다. 이가 바로 위 장공(衛壯公)이다. 출공은 노(魯) 나라로 망명하였다가 3년 뒤에 다시 환국하여 임금이 되었다. <史記 衛康叔世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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