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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자계치[亡子計齒], 망자긍대[妄自矜大], 망자비박[妄自菲薄], 망자재배[芒刺在背]


망자[網子]  그물처럼 얽은 망태.

망자[芒刺]  초목의 줄기와 잎. 열매의 껍질에 있는 깔끄러운 수염. 곡식의 껍질에 있는 긴 수염 같은 것. 즉 까끄라기를 가리킨다. 참고로, 육구몽(陸龜蒙)의 시 장미(薔薇)에 “겉으로는 향기롭게 웃고 있지만, 속에 있는 가시로 사람 상하네.[外包芳菲雖笑日, 中含芒刺欲傷人.]”라고 하였고, 두보(杜甫)의 시 제초(除草)에 “까끄라기 내 눈을 찌르는 것 같은데, 어떻게 깊은 가을 기다릴 수 있으리.[芒刺在我眼, 焉能待高秋.]”라고 한 데서 보인다.

망자계치[亡子計齒]  죽은 자식(子息) 나이 세기라는 뜻으로, 이미 지나간 쓸데없는 일을 생각하며 애석(哀惜)하게 여김을 이른다.

망자긍대[妄自矜大]  망령되이 스스로 자랑하고 잘난 체함을 이른다.

망자분식[妄自粉飾]  필요 이상으로 칠해 꾸미다.

망자비박[妄自菲薄]  자신을 함부로 하찮게 여겨 폄하함을 이른다. 제갈량(諸葛亮)이 북벌(北伐)을 위해 출정할 적에 올린 상소에서 “망녕되이 스스로 하잘것없이 여겨 비유함에 본의를 잃어 충성스런 간언을 올리는 길을 막아서는 안 될 것입니다.[不宜妄自菲薄, 引喩失義, 而塞忠諫之路也.]”라고 하였다. <三國志 卷5 蜀志 諸葛亮傳>

망자산[望子山]  망자산(望子山)은 ‘아들이 오는 것을 바라보는 산’이라는 의미로, 망부산(望夫山)이나 망부석(望夫石)과 같은 의미로 쓰인다.

망자자모문중[亡者子某門中]  망자(亡子)의 자식 아무개의 문중. 죽은 형제의 이름 대신 그의 자식인 조카의 이름을 대신 내세우는 호칭이다. 양장거(梁章鉅)의 칭위록(稱謂錄) 4에 “형제를 잃은 사람은 그 형제를 차마 지칭할 수 없어, 그 형제의 자식 이름을 불렀다.[兄弟已亡者, 不忍稱其兄弟, 而稱其兄弟之子之名也,]”라고 하였다.

망자재배[芒刺在背]  까끄라기와 가시를 등에 지고 있다는 뜻으로, 등 뒤에 자기가 꺼리고 두려워하는 사람이 있어서 마음이 편하지 않음. 주변에 꺼리거나 두려워하는 사람이 있어 마음이 조마조마하고 편하지 않다는 말이다. 한서(漢書) 권68 곽광전(霍光傳)에 “선제가 처음 즉위하여 고조의 사당에 알현하러 갈 때 대장군 곽광이 따라 배승(陪乘)했는데, 상이 속으로 곽광을 두려워하여 마치 까끄라기가 등에서 찌르는 것처럼 느꼈다.[宣帝始立, 謁見高廟, 大將軍光從驂乘, 上內嚴憚之, 若有芒刺在背.]”라고 한 데서 유래하였다. 한(漢)나라 선제(宣帝)가 보위에 올라 종묘사직(宗廟社稷)에 고하기 위해 궁궐을 출발할 때, 대장군 곽광(霍光)이 그 호위를 맡게 되었다. 곽광은 일찍이 무제(武帝)를 섬겨 말년에는 대사마대장군(大司馬大將軍) 박륙후(博陸侯)로서 후사를 위탁받았다. 그는 8세의 어린 소제(昭帝)를 세우고, 소제의 이복형인 연왕(燕王) 단(丹)의 반란을 진압한 후 정사를 독점하였다. 소제가 죽은 후에는 그를 계승한 창읍왕(昌邑王)을 행실이 음란하다는 이유로 폐위시키고 선제를 임금의 자리에 세운 사람이다. 이렇듯 곽광의 권력이 하늘을 찌를 정도였으므로 선제는 내심 그를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래서 곽광과 함께 가는 것이 마치 까끄라기와 가시를 등에 진 것과 같이 불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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