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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자재신[芒刺在身], 망자존대[妄自尊大], 망재강[網在綱], 망재거[忘在莒]


망자재신[芒刺在身]  가시가 몸에 있다. 가시를 몸에 지니고 있는 것처럼 초조하고 불안해하는 것을 말한다. 망자재궁(芒刺在躬), 망자재배(芒刺在背)라고도 한다. 한 선제(漢宣帝)가 처음 즉위하여 고조(高祖)의 사당에 알현할 때, 대장군(大將軍) 곽광(霍光)이 선제를 모시고 수레에 함께 탔는데, 선제는 곽광이 역모를 일으키지나 않을까 몹시 꺼려하여 마치 가시를 등에 진 것처럼 불안해하였다고 한다. 한서(漢書) 권68 곽광전(霍光傳)에 “선제가 처음 즉위하여 고조의 사당에 알현하러 갈 때 대장군 곽광이 따라 배승(陪乘)했는데, 상이 속으로 곽광을 두려워하여 마치 까끄라기가 등에서 찌르는 것처럼 느꼈다.[宣帝始立, 謁見高廟, 大將軍光從驂乘, 上內嚴憚之, 若有芒刺在背.]”라고 하였다.

망자존대[妄自尊大]  종작없이 함부로 제가 잘난 체함. 망령(妄靈)되이 자기(自己)만 잘났다고 뽐내며 남을 업신여김. 아주 건방지게 자기만 잘났다고 뽐내어 자신을 높이고 남을 업신여김. 망령되이 스스로 높은 체하고 큰 체한다는 뜻으로, 과대망상에 빠져 있음을 비판하는 말이다. 후한의 명장(名將) 마원(馬援)이 어렸을 때 공손술과 한마을에서 자랐는데, 뒤에 공손술이 스스로 촉왕(蜀王)이라 칭하고 성도(成都)에 도읍했다가 이윽고 천자(天子)로 자칭하고, 어렸을 적 친구인 마원을 부르자, 마원이 가서 그의 여러 가지 동정을 살펴보고는 다른 이에게 말하기를 “자양은 우물 안의 개구리일 뿐인데, 망녕되이 스스로 잘난 체하고 있으나, 동방에 전심하는 것만 못하다.[子陽井底蛙耳, 而妄自尊大, 不如專意東方.]”라고 한 데서 온 말로, 즉 견문이 좁아서 세상일을 모르는 사람의 비유로 쓰인다. 후한서(後漢書) 권54 마원열전(馬援列傳)에서 보인다.

망작효제 이교행어봉후부귀자야[妄作孝悌 而儌倖於封侯富貴者也]  함부로 효(孝)니 제(悌)니 하는 덕목을 만들어 놓아 제후에 봉해지고 부귀하게 되는 요행을 바라게 하는 자임. 봉후부귀(封侯富貴)는 제후에 봉해져 부귀하게 됨. 요행(儌倖)은 바란다는 뜻이다. 장자(莊子) 제29편 도척(盜跖)에서 보인다.

망작흉[妄作凶]  망녕되이 행동하니 흉함. 밍녕되게 흉한 일을 하게 됨.

망장안어일하[望長安於日下]  당나라 시인 왕발(王勃)의 등왕각시서(滕王閣詩序)에 “해 지는 곳으로 장안을 바라보고 구름 사이로 오회를 가리킨다.[望長安於日下, 指吳會於雲間.]”라고 하였다. 참고로, 세설신어(世說新語) 숙혜(夙惠)에 “어린 진 명제(晉明帝)가 원제(元帝)의 무릎 위에 앉아 있었다. 어떤 사람이 장안에서 오자, 원제가 낙양의 소식을 묻더니 눈물을 흘리며 울었다. 명제가 ‘어째서 우십니까’라고 물으니, 원제는 어린 명제에게 진왕조가 강을 건너 동쪽으로 온 것에 관한 저간의 사정을 세세히 말해주었다. 그러고 나서 원제가 ‘너는 장안과 해 가운데 어느 것이 더 멀다고 생각하느냐?’라고 물으니, 명제가 대답하기를 ‘해가 멉니다. 해에서 온 사람이 없으니 힘들이지 않고도 알 수 있습니다.’라고 하였다. 원제는 참 기이하다 싶었다. 다음날, 원제가 신하들을 모아 연회를 연 자리에서 어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고 명제에게 다시 물었다. 명제가 대답하기를 ‘해가 가깝습니다.’라고 하니, 원제가 얼굴색을 달리하며 묻기를 ‘어째서 어제 한 말과 다른 것이냐’라고 하니, 명제가 대답하기를 ‘눈을 들면 해가 보이지만 장안은 볼 수가 없습니다.’라고 하였다.[晉明帝數歲, 坐元帝厀上. 有人從長安來, 元帝問洛下消息, 潸然流涕. 明帝問何以致泣? 具以東渡意告之. 因問明帝: ‘汝意謂長安何如日遠?’ 答曰: ‘日遠. 不聞人從日邊來, 居然可知.’ 元帝異之. 明日集羣臣宴會, 告以此意, 更重問之. 乃答曰: ‘日近.’ 元帝失色, 曰: ‘爾何故異昨日之言邪?’ 答曰: ‘舉目見日, 不見長安.’]”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망재강[網在綱]  서경(書經) 반경 상(盤庚上)에 “그물은 벼릿줄이 걸려 있어야 가닥이 잡혀 헝클어지지 않는 것과 같다.[若網在綱, 有條而不紊.]”라고 하였다.

망재거[忘在莒]  무망재거(毋忘在莒). 과거 곤경에 처해 어려웠던 때를 잊지 않는다는 뜻이다. 춘추 시대에 제(齊)나라 양공(襄公)이 무도하니 여러 동생들이 화를 당할까 두려워하여 공자 규(公子糾)는 노(魯)나라로 달아났는데 관중(管仲)이 도왔고, 뒷날에 환공(桓公)이 되는 소백(小白)은 거(莒) 땅으로 달아났는데 포숙아(鮑叔牙)가 도왔다. 뒤에 양공이 죽음을 당하자 제나라에서 소백을 불러들여 왕으로 삼으니, 노나라에서 관중을 함거(檻車)에 가두어 제나라로 보냈다. 포숙아의 추천으로 관중이 재상에 등용되어 술자리에서 환공에게 “원컨대 공께서는 거 땅에서 고생하던 일을 잊지 마소서.[毋忘在莒] 신은 노나라에서 함거에 갇혔던 일을 잊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한 고사가 있다. <管子 少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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