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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제[亡題], 망제[望祭], 망제[望帝], 망제[忘蹄], 망제객[亡齊客]


망제[亡題]  무제(無題)와 같은 말로, 일종의 시제(詩題)이다. 고인(古人)의 시(詩)에서 제목을 붙이기 마땅치 않은 경우에 흔히 제목 대신 이것을 사용한다.

망제[望祭]  멀리서 바라보고 제사함을 이른다. 가뭄이 극심할 적에 북교(北郊)에 나아가 악(嶽)·해(海)·독(瀆)·명산(名山)·대천(大川)의 19신위(神位)에게 비를 내려 달라고 빌던 제사이다. 옛날에 산천(山川)의 신(神)에게 직접 가서 제사하기 어려울 경우 일정한 장소에 단을 설치하고 멀리서 바라보면서 제사하였는데, 때로는 강(江)에 가로막혀 갈 수가 없을 경우 선조(先祖)의 묘소에도 망제(望祭)를 지냈다 한다.

망제[望祭]  매달 보름에 종묘에서 지내던 제사. 멀리 떨어진 곳에서 조상의 무덤이 있는 곳을 향하여 지내는 제사. 혹은 고려·조선조 때 매달 보름에 조정에서 종묘에 지내는 제사를 말하기도 한다. 고대에 산천(山川)의 신(神)에게 직접 가서 제사하기 어려울 경우 일정한 장소에 단을 설치하고 멀리서 바라보면서 제사하였는데, 때로는 강(江)에 가로막혀 갈 수가 없을 경우 선조(先祖)의 묘소에도 망제(望祭)를 지냈다 한다.

망제[望帝]  망제(望帝)는 촉제(蜀帝) 두우(杜宇)로, 전설에 촉나라의 망제(望帝) 두우(杜宇)가 재상 별령(鱉令)에게 대규모 운하 공사를 맡기고 그의 아내와 간음하였다가, 뒤에 이 때문에 재상 별령(鱉令)에게 왕위를 빼앗기고는 원통함과 한을 품고 죽었는데, 그 후 자규 한 마리가 날아와 궁궐 앞에서 슬피 울자, 촉나라 사람들이 이 새를 망제의 혼으로 여겨 망제혼이라 하였고, 그 울음소리가 네 박자로 불여귀거(不如歸去)라고 하는 것 같다고 하여 불여귀(不如歸)라고 불렀다. <太平御覽 卷166> 또,환우기(寰宇記)에 “촉왕 두우는 호를 망제라 했다. 왕위를 다른 사람에게 물려주고 난 다음 죽은 후에 자규가 되었다.[蜀王杜宇, 號望帝, 後因禪位, 自亡去, 化爲子規.]”라고 하였다. 자규는 두견(杜鵑)이다.

망제[望帝]  망제(望帝)는 전국 시대 말엽의 촉(蜀)나라 왕 두우(杜宇)로, 억울하게 왕위를 선양한 뒤에 서산(西山)에 들어가 은거하다가 죽었는데, 그의 원통한 넋이 두견새가 되어 돌아와 봄이면 밤낮으로 애절하게 피를 토하며 운다는 전설이 있다. <華陽國志 卷3 蜀志> 그 새의 울음소리가 처절하여 객수(客愁)를 자아낸다고 한다. 자규(子規) 또는 촉혼(蜀魂)이라고도 한다.

망제[望帝]  촉(蜀)나라 망제가 임금 자리를 내주고 도망칠 때에 두견이가 울었는데, 그 뒤로 촉 땅 사람들이 두견이의 울음소리를 들을 때면 망제를 생각한 나머지 비감에 사로잡히면서 마치 “어째서 빨리 돌아가지 않느냐.[不如歸去]”라고 울어대는 것처럼 들었다는 고사가 있다. <蜀王本紀> 또, 두보(杜甫)의 시 두견(杜鵑)에 “두견새 늦은 봄 날아와서 숲 사이에서 슬프게 울었네. 내가 볼 때마다 재배했으니, 옛 망제(望帝)의 넋임을 존중해서였네.[杜鵑暮春至, 哀哀叫其間. 我見常再拜, 重是古帝魂.]”라고 보인다.

망제[忘蹄]  올무를 잊음. 장자(莊子) 외물(外物)에 “통발은 고기를 잡는 도구이지만 고기를 잡고 나면 통발을 잊게 된다. 올무란 토끼를 잡는 기구이지만 토끼를 잡고 나면 올가미를 잊게 된다. 말이란 것은 뜻을 표현하는 도구이지만, 뜻을 표현하고 나면 말을 잊게 된다. 우리는 어찌하면 말을 잊은 사람들과 더불어 얘기를 할 수 있게 될까?[筌者所以在魚, 得魚而忘筌. 蹄者所以在兎, 得兎而忘蹄. 言者所以在意, 得意而忘言. 吾安得夫忘言之人而與之言哉!]”라고 한 데서 온 말인데, 전하여 올가미나 통발은 곧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도구 또는 방편의 뜻으로서, 도를 얻은 다음에는 형식 따위는 잊어야 한다는 뜻이다.

망제객[亡齊客]  망한 제(齊)나라의 객(客). 전국 시대 제(齊)나라 화읍(畫邑) 사람인 왕촉(王蠋)을 의미한다. 연(燕)나라 장수 악의(樂毅)가 제나라를 공격해 들어갔을 때 왕촉의 명성을 듣고 화읍을 30리 밖에서 포위하고 사람을 보내 왕촉에게 연나라 장수로 삼고 만호(萬戶)의 식읍을 주겠다고 하였으나 왕촉이 사양하였다. 이에 악의가 삼군(三軍)을 거느리고서 화읍을 도륙하겠다고 협박하자, 왕촉이 “충신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않고, 열녀는 두 지아비를 섬기지 않는다.[忠臣不事二君, 貞女不更二夫.]”라 하고는 목을 매어 자결하였다. <史記 卷82 田單列傳> 참고로, 환온(桓溫)의 천초원언표(薦譙元彦表)에 “예와 착과 같은 이들의 폐허 속에서 무라를 만나길 기대하고, 망한 제나라의 경내에서 왕촉을 만날 것을 생각하였습니다.[庶武羅於羿浞之墟, 想王蠋於亡齊之境.]”라고 하였다. <文選 卷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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