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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지[望之], 망지도[忘持度], 망지불사[望之不似], 망지불사인군[望之不似人君]


망지[望之]  한(漢)나라 사람 소망지(蕭望之)이다. 한(漢)나라 선제(宣帝)와 원제(元帝) 때의 문신으로 자(字)는 장천(長倩)이고 동해(東海) 난릉(蘭陵) 사람이며, 기린각(麒麟閣)에 상(像)이 그려진 11명의 현신 중의 한 명이다. 자는 장천(長倩)이다. 선제(宣帝) 때 평원 태수(平原太守), 좌풍익(左馮翊), 어사대부(御史大夫)를 지냈다. 어사대부(御史大夫)로 있을 때, 승상 병길(邴吉)에게 무례하였다는 이유로 김안상(金安上) 등으로부터 탄핵을 받아 좌천당한 일이 있었다. 후에 태자태부(太子太傅)로 유조(遺詔)를 받들어 어린 임금 원제(元帝)를 보필하였다. 환관 홍공(弘恭)과 석현(石顯)이, 소망지 등이 붕당을 지어 군주의 친척을 이간질하고 권력을 독점하려 한다고 무함하여 법관에게 조사하게 할 것을 청하였다. 이 소식을 들은 소망지가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기를 “내 일찍이 정승의 지위에 올라 60세가 넘었으니, 늙어서 감옥에 갇혀 구차히 살려고 한다면 비루하지 않겠는가.”라 하고, 독약을 마시고 자살하였다. <漢書 卷78 蕭望之傳>

망지굴풍익[望之屈馮翊]  망지(望之)는 소망지(蕭望之)이고 풍익(馮翊)은 벼슬 이름이다. 자치통감(資治通鑑) 권27에 “한연수(韓延壽)가 소망지를 대신하여 좌풍익(左馮翊)이 되었다. 소망지가, 한연수가 동군(東郡)에 있을 때 관청의 돈 1000여만 전(錢)을 풀었다는 말을 듣고 어사(御使)로 하여금 조사하도록 하였다. 한연수가 그 말을 듣고 이부(吏部)로 가서 소망지가 풍익으로 있을 때 늠희(廪犧)의 돈 100여만 전을 풀었다는 이유로 조사하니, 소망지가 스스로 상소를 올려 말하기를 ‘신의 직책이 천하의 일을 총괄하니만큼 사건을 듣고 감히 조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라고 하였다. 주상이 이로 말미암아 한연수를 옳게 여기지 않고 각각 끝까지 조사하도록 하였는데, 소망지는 그러한 사실이 없었고 한연수는 과실이 드러나 사형을 당하였다.”라고 하였다.

망지도[忘持度]  치수를 재고 그것을 잊고 옴. 시장에서 자기의 발을 내밀면 쉽게 신을 살 수 있는 것을 생각하지 못하고, 집에 적어놓고 잊고 온 발 치수만을 믿는 어리석은 자를 비유한다. 한비자(韓非子) 제32편 외저설(外儲說)에 “정(鄭)나라 사람으로 신발을 사려고 하는 사람이 있었다. 먼저 자기 발의 길이를 재어 종이게 기록했으나 그 종이를 잊고 장에 갔다. 시장에서 신발을 보고는 ‘칫수를 적은 쪽지를 잊고 왔구나.’라고 하고는 집으로 돌아와 종이를 가지고 시장에 다시 나갔으나 장은 이미 파한 뒤였다. 어떤 사람이 ‘여보시오. 신발을 신어 봤으면 됐을 것이 아니요.’라고 물으니, 그 사나이가 말하기를 ‘칫수를 적은 종이는 믿을 수 있어도 내 발은 믿을 수 없다.’라고 하였다.[鄭人有欲買履者, 先自度其足而置之其坐, 至之巿而忘操之. 已得履, 乃曰: ‘吾忘持度.’ 反歸取之. 及反, 巿罷, 遂不得履. 人曰: ‘何不試之以足?’ 曰: ‘寧信度, 無自信也.’]”고 한 데서 보인다.

망지불사[望之不似]  남이 보기에 꼴이 온당(穩當)치 아니함.

망지불사인군[望之不似人君]  군주로서 위엄을 지니지 못한 모습을 뜻한다. 맹자(孟子) 양혜왕장구 상(梁惠王章句上)에 “맹자(孟子)가 양(梁)나라 양왕(襄王)을 보고 나와서 다른 사람에게 말하기를 ‘멀리서 바라보니 인군(人君) 같지 않았는데, 앞에 나가서도 두려워할 만한 것이 보이지 않았다.’라고 하였다.[孟子見梁襄王, 出語人曰, 望之不似人君, 就之而不見所畏焉.]”라고 한 데서 보인다.

망지불휼[亡之不恤]  포로로 외국에 붙잡혀 있는 자신을 걱정하지 아니함. 亡(망)은 포로로 붙잡혀 외국에 있는 것이다.

망지삼보거[望之三輔去]  망지(望之)는 한 나라 사람 소망지(蕭望之)인데 선제(宣帝) 때에 중앙 정부에 삼보(三輔)의 지방관으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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