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하는 이는 이미 배워 알지라도
배움이 꾸준하지 못할까 염려해야 하고
사람은 가난을 근심할 것이 아니라
가난하더라도 뜻이 있는 것이 중요하다.
士既知學, 還恐學而無恒.
사기지학, 환공학이무항.
人不患貧, 只要貧而有志.
인불환빈, 지요빈이유지.
<圍爐夜話위로야화>
- 무항[無恒] 항심(恒心)이 없다. 끈기가 없다. 진득하지 못하다. 항상성이 없다. 참고로, 맹자(孟子) 양혜왕 상(梁惠王上)에 “일정한 생업[恒産]이 없으면서도 떳떳한 마음[恒心]을 간직하는 것은 오직 선비만이 그럴 수 있다. 일반 백성의 경우에는 일정한 생업이 없으면 떳떳한 마음도 따라서 없어진다. 만일 떳떳한 마음이 없어지게 되면 방탕하고 사치한 짓[放辟邪侈]을 하지 않음이 없을 것이니, 백성이 죄에 빠지기를 기다린 뒤에 좇아가서 그들을 벌준다면 이는 백성을 그물질하는[罔民] 것이다.[無恒産而有恒心者, 惟士爲能. 若民則無恒産, 因無恒心, 苟無恒心, 放辟邪侈, 無不爲已, 及陷於罪然後, 從而刑之, 是罔民也.]”라고 보인다.
- 환빈[患貧] 가난함을 걱정함. 살림살이가 넉넉하지 못하여 걱정함. 참고로, 논어(論語) 계씨(季氏)에 “내가 듣건대, 나라를 소유하고 집을 소유한 사람은 백성이 적음을 근심하지 않고 생활 형편이 고르지 못함을 근심하며, 가난함을 근심하지 않고 편안하지 못함을 근심한다고 하니, 이는 대개 고르면 가난하다고 할 것이 없고, 화평하면 적다고 할 것이 없고, 편안하면 기울어질 일이 없기 때문이다.[丘也聞. 有國有家者, 不患寡而患不均, 不患貧而患不安, 蓋均無貧, 和無寡, 安無傾.]”라는 공자의 말이 나온다.
- 지요[只要] ~하기만 하면. 만약 ~라면. 오직 ~한다면. 오직 ~해야만 한다. 단지 ~해야 한다.
- 유지경성[有志竟成] 뜻이 있으면 끝내 이룸. 유지자사경성(有志者事竟成)의 준말로, 굳건한 뜻이 있으면 반드시 이루어낸다는 뜻의 고사성어이다. 후한서(後漢書) 권19 경엄열전(耿弇列傳)에 보인다. 경엄(耿弇)은 광무제(光武帝) 유수(劉秀)의 장수인데, 북쪽으로 상곡(上谷)의 군대 중에 징발되지 않은 자를 모아 어양(漁陽)에 있는 팽총(彭寵)을 평정하고 탁군(涿郡)에 있는 장풍(張豐)을 점령하고 돌아와 부평(富平)의 획색(獲索)을 거두고 동쪽으로 장보(張步)를 공격하여 제(齊)나라 땅을 평정할 것을 청하자, 광무제(光武帝)가 이를 허락하였다. 뒤에 경엄(耿弇)이 과연 장보(張步)를 격파하자 광무제(後漢光武帝)가 임치(臨淄)에 와서 신하들이 다 모인 자리에서, 대장군 경감(耿弇)의 공이 옛날에 제(齊)를 평정한 한신(韓信)보다 더 뛰어나다고 칭찬을 하면서 경엄(耿弇)에게 이르기를 “장군(將軍)이 전에 남양(南陽)에서 이 대책을 세웠을 적에, 워낙 소활(疏闊)해서 생각한 대로 되기 어려우리라고 내가 늘 여겼었는데, 뜻이 있는 사람은 일을 끝내 성취하는구나.[將軍前在南陽, 建此大策, 常以為落落難合, 有志者事竟成也.]”고 하였다.
- 유지자사경성[有志者事竟成] 뜻 있으면 성공함. 뜻을 가진 자는 끝내 일을 이룸. 뜻만 있으면 일은 반드시 성취됨. 하려고만 들면 못 해낼 일이 없음. 뜻이 있는 자는 일이 끝내 이루어진다는 뜻으로, 신념이 철저하면 끝내 목표를 달성하게 됨을 이른다. 한(漢)나라 때 부풍(扶風) 무릉(武陵) 사람 경엄(耿弇)은 유수(劉秀)의 휘하로 들어가 많은 공을 세웠으며, 유수가 동한(東漢)을 세우고 광무제(光武帝)로 즉위하는 데 크게 일조했다. 경엄은 광무제를 따라 남양(南陽)에 도착해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웅대한 계획을 광무제에게 건의했다. 먼저 북상해서 상곡(上谷)의 병력을 모은 다음, 어양(漁陽)의 팽총(彭寵)을 멸하고, 다음으로 탁군(涿郡)의 장풍(張豊)을 멸하고, 군사를 돌려 부평(富平)과 획색(獲索)의 농민군을 진압한 다음, 동쪽으로 장보(張步)를 공격하여 제(齊)나라 땅을 평정하는 것이었는데, 이를 경엄의 남양전략(南陽戰略)이라 한다. 광무제는 경엄의 건의가 타당하다고 생각하고 건의를 받아들였지만, 실현 가능성에 대해서는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 유수(劉秀)는 경엄에게 장보를 칠 것을 명했다. 장보는 역하(歷下)와 축아(祝阿)에 병력을 배치하고 대항했다. 경엄은 황하를 건너 먼저 역하를 공략한 후, 축아까지 공략하고 임치(臨淄)로 진격했다. 하지만 경엄은 장보의 주력 부대를 만나 많은 사상자를 내는 등 큰 타격을 입고, 자신도 다리에 화살을 맞는 중상을 입었다. 그때 마침 유수가 구원병을 이끌고 달려오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경엄은 “황제께서 납시는데 소를 잡고 술을 준비하여 융숭하게 환영해야지, 어찌 이런 적들을 황제께 남겨 둘 수가 있겠느냐?”고 말하며 군사들을 독려하여 장보를 공격해 결국 임치를 함락시켰다. 그 후 며칠이 지나서 광무제가 임치에 도착하여 군사들을 위로하는데, 군신이 다 모였다. 광무제가 경엄에게 “옛날 한신(韓信)이 역하를 공략해 나라의 터전을 열었는데, 오늘 장군은 축아를 공략해 나라를 흥기하게 했구려. 이곳들은 모두 제나라의 서쪽 경계로, 그 공은 서로 필적한다고 볼 수 있소. 하지만 한신은 이미 항복한 나라를 습격했고, 장군은 강적을 멸했으니 한신보다 더 어려운 공을 세운 것이오. …… 장군이 전에 남양에서 이 큰 계책을 건의했었는데, 실현되기 어렵다고 항상 생각했었소. 그런데 뜻을 가진 사람이 결국 일을 성공시키는구려.[後數日, 車駕至臨淄自勞軍, 群臣大會. 帝謂弇曰, 昔韓信破歷下以開基, 今將軍攻祝阿以發迹, 此皆齊之西界, 功足相方. 而韓信襲擊已降, 將軍獨拔勁也.敵, 其功乃難於信 …… 將軍前在南陽建此大策, 常以爲落落難合, 有志者事竟成也.]”라고 하였다. <後漢書 耿弇列傳>
【譯文】 士知學恐無恆, 君子貧而有志.
讀書人既知道學問的重要, 卻恐怕學習時缺乏恒心. 人不怕窮, 只要窮得有志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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