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자처럼 노둔한 사람도 홀로 도를 깨달아 전했으니
자질이 사람의 진보를 제한할 수 없음을 알 수 있고
안자처럼 가난한 사람도 그 즐거움을 잃지 않았으니
처지가 사람을 곤궁하게 만들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魯如曾子, 於道獨得其傳, 可知資性不足限人也.
노여증자, 어도독득기전, 가지자성부족한인야.
貧如顏子, 其樂不因以改, 可知境遇不足困人也.
빈여안자, 기락불인이개, 가지경우부족곤인야.
<圍爐夜話위로야화>
- 노둔[魯鈍] 둔(鈍)하고 어리석어 미련함. 우둔하다. 논어집주(論語集註) 선진(先進) 제17장에 “삼은 노둔하다.[參也魯.]”라는 구절에 대한 주희(朱熹)의 주에 “정자(程子)가 말하기를 ‘삼(參)은 마침내 노둔함으로써 도를 얻었다.’라고 하였다. 또 말하기를 ‘증자(曾子)의 학문은 성실함과 독실함뿐이었다. 성인 문하의 배우는 자들이 총명하고 재주 있으며 말을 잘한 자가 많지 않은 것이 아니었으나 끝내 그 도를 전수한 것은 바로 질박하고 노둔한 사람이었다. 그러므로 학문은 성실함을 귀하게 여기는 것이다.’라고 하였다.[程子曰: 參也, 竟以魯得之. 又曰: 曾子之學, 誠篤而已. 聖門學者, 聰明才辨, 不爲不多, 而卒傳其道, 乃質魯之人爾, 故學以誠實爲貴也.]”라고 한 데서 보인다.
- 우로[愚魯] 어리석고 매우 둔(鈍)함. 어리석다. 바보스럽다. 우둔하다. 사람이나 동물이 둔하고 어리석어 미련하다.
- 증자[曾子] 춘추시대 노(魯)나라 무성(武城) 사람으로, 이름은 삼(參), 자(字)는 자여(子輿)이다. 증자는 그에 대한 존칭이다. 공자(孔子)의 만년의 제자이다. 공자가 죽은 후 삼년상을 지냈다. 공자의 제자 중에서 가장 나이가 어렸으나 효성이 지극하고 행동거지(行動擧止)가 온후독실(溫厚篤實)해서 죽을 때까지 몸에 작은 상처 하나 남기지 않았다고 한다. 노둔하였으나 공자의 학문을 자사(子思)에게 전하고 자사는 맹자(孟子)에게 전하여 후세에 종성(宗聖)으로 추앙받았다. 대학(大學)과 효경(孝經)을 지었다 한다. 원나라 문종 때 성국종성공(郕國宗聖公)으로 추증되었고, 명나라 세종 때 종성공(宗聖公)으로 추봉되었다. 아버지 증석(曾晳)을 섬길 때 반드시 술과 고기를 갖추고 상을 물릴 때 누구에게 줄 것인지 묻고, 남은 것이 있는지 물으면 반드시 있다고 답하여 그 뜻을 받드는[養志] 효를 다했는데, 맹자가 이를 두고 “어버이 섬기기를 증자같이 함이 옳다.[事親, 若曾子者, 可也.]”라고 하였다. 주자(朱子)의 대학장구(大學章句) 서문에도 “공자의 삼천 제자가 그런 말씀을 듣지 못한 것이 아니건마는, 증자가 전한 것만이 홀로 그 종지(宗旨)를 얻었다.[三千之徒, 蓋莫不聞其說, 而曾氏之傳, 獨得其宗.]”라고 하였고, 논어(論語) 선진(先進)에 “시는 어리석고 증삼(曾參)은 노둔하고 자장(子張)은 치우치고 자로(子路)는 거칠다.[柴也愚, 參也魯, 師也辟, 由也喭.]”는 공자의 평가가 있는데, 논어집주(論語集註) 선진(先進) 제17장에 “삼은 노둔하다.[參也魯.]”라는 구절에 대한 주희(朱熹)의 주에 “정자(程子)가 말하기를 ‘삼(參)은 마침내 노둔함으로써 도를 얻었다.’라고 하였다. 또 말하기를 ‘증자(曾子)의 학문은 성실함과 독실함뿐이었다. 성인 문하의 배우는 자들이 총명하고 재주 있으며 말을 잘한 자가 많지 않은 것이 아니었으나 끝내 그 도를 전수한 것은 바로 질박하고 노둔한 사람이었다. 그러므로 학문은 성실함을 귀하게 여기는 것이다.’라고 하였다.[程子曰: 參也, 竟以魯得之. 又曰: 曾子之學, 誠篤而已. 聖門學者, 聰明才辨, 不爲不多, 而卒傳其道, 乃質魯之人爾, 故學以誠實爲貴也.]”라고 하였다.
- 증자[曾子] 중국 고전(古典)의 하나. 인간 행위의 근본을 충(忠)에 두고, 행위의 덕(德)의 바탕을 효(孝)에 두었다. 18편 가운데 10편만이 남아 있다.
- 독득[獨得] 자기 혼자 터득(攄得)함. 스스로 터득함. 참고로, 주희(朱熹)의 대학장구(大學章句) 서문(序文)에 “3000명의 제자들이 대개 모두 공자의 학설을 들었지만, 증자가 전한 것이 유일하게 그 핵심을 깨우쳤다. 이에 전의를 지어서 그 뜻을 밝혀내었다. 맹자가 세상을 떠나자 그가 전한 것이 사라졌으니, 그 책이 비록 존재하였으나 아는 사람은 드물었다.[三千之徒, 蓋莫不聞其說, 而曾氏之傳, 獨得其宗. 於是作爲傳義以發其意. 及孟子沒, 而其傳泯焉, 則其書雖存, 而知者鮮矣.]”라고 한 데서 보인다.
- 자성[資性] 자질(資質)과 천성(天性). 타고난 성품(性品)이나 소질(素質). 근본으로 타고난 성질.
- 한인[限人] 사람을 제한하다. 사람을 한정하다. 사람을 제약하다. 사람의 가능성을 가로막다. 사람의 발전을 막다. 사람의 성장을 가로막다. 사람에게 한계를 두다.
- 안자[顔子/顏子] 복성안자(復聖顔子). 공자(孔子)의 수제자 안회(顔回)를 높여 이르는 말이다. 이름은 회(回)이고 자는 자연(子淵)인데 통상 안연(顔淵)으로 불린다. 노(魯)나라 곡부(曲阜) 출신이다. 공자보다 30세 연소하였으며 가장 촉망받던 제자였는데, 29세에 백발이 되었고 32세에 공자보다 먼저 사망하였다. 후대 사람들은 그를 높여 안자(顔子)라 칭하고 복성(復聖)으로 추앙하였다. 원(元)나라 문종(文宗) 때 연국복성공(兗國復聖公)으로 추증되었고, 명(明)나라 세종(世宗) 때 복성공(復聖公)으로 추봉되었다. 학문을 좋아했으며, 집이 가난했으나 이를 괴로워하지 않고 안빈낙도(安貧樂道)했으며, 무슨 일에도 성내지 않았으며 잘못은 두 번 다시 저지르지 않았다 한다. 젊어서 죽었기 때문에 저술이나 업적을 남기지는 못했으나 논어(論語)에 안연편(顔淵編)이 있고, 그 밖에 몇몇 서적에도 그를 현자(賢者)와 호학자(好學者)로서 덕행(德行)이 뛰어난 사람이라고 전하고 있다. 논어(論語) 옹야(雍也)에 공자가 이르기를 “안회는 그 마음이 석 달을 인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 나머지는 날로 달로 거기에 이를 따름이다.[回也, 其心三月不違仁, 其餘則日月至焉而已矣.]”라고 하였고, 논어(論語) 위정(爲政)에 공자가 이르기를 “내가 안회와 이야기를 나눔에 하루 종일 내 말을 어기지 않아 바보 같아 보였으나 물러난 뒤에 그가 하는 것을 보니 배운 대로 잘 따랐다. 안회는 바보가 아니었다.[吾與回言, 終日不違如愚. 退而省其私, 亦足以發, 回也不愚.]”라고 하였고, 논어(論語) 선진(先進)에 안연이 죽자 공자가 “아! 하늘이 나를 망하게 하였구나! 하늘이 나를 망하게 하였구나![噫, 天喪予, 天喪予.]”라고 하였다. 맹자(孟子) 이루하(離婁下)에 “안회가 난세에 누추한 골목에 있는 집에서 대나무 그릇에 밥을 담아 먹고 표주박으로 물을 떠 마시면서도 다른 사람들은 견디지 못하는 것을 즐기며 바꾸려 하지 않자 공자가 안회를 어질다고 칭찬하였다.[顔子當亂世, 居於陋巷, 一簞食, 一瓢飮. 人不堪其憂, 顔子不改其樂, 孔子賢之.]”라고 하였다. 또, 송유(宋儒) 주돈이(周敦頤)는 통서(通書) 권10에 “안연이 배웠던 바를 배워 이들을 능가하면 바로 성인이 될 수 있을 것이요, 제대로 따라가기만 해도 현인이 될 수 있을 것이다.[學顔子之所學, 過則聖, 及則賢.]”라고 하였다.
- 불인[不因] ~에 기인하지 않다. ~에서 비롯되지 않다. ~을 원인으로 하지 않다. ~ 때문에 그렇지 않다. ~에 의하지 않다. ~에 따라 달라지지 않는다. 참고로, 소식(蘇軾)의 시 차운화왕공(次韻和王鞏)에 “나의 빈궁한 이유 묻는다면 그것은 하늘이 부여한 것, 귀양 왔기 때문에 비로소 주머니 빈 것이 아니라오.[若問我貧天所賦, 不因遷謫始囊空.]”라고 한 데서 보이고, 맹자(孟子) 이루 상(離婁上)에 “높게 하려면 반드시 높은 지형을 이용해야 하고, 낮게 하려면 반드시 낮은 지형을 이용해야 한다. 정치를 행하면서 선왕의 도를 이용하지 않는다면 지혜롭다고 하겠는가.[爲高必因丘陵, 爲下必因川澤. 爲政不因先王之道, 可謂智乎.]”라고 한 데서 보이고, 동관한기(東觀漢記) 양홍전(梁鴻傳)에 “옆집에서 밥을 다 짓고 양홍을 불러 아직 뜨거울 때 솥에 밥을 하라고 하였다. 그러자 양홍은, ‘동자 양홍은 남의 열에 의지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하고는 불씨를 끄고 다시 불을 붙였다.[比舍先炊已, 呼鴻及熱釜炊. 鴻曰: ‘童子鴻不因人熱者也’. 滅灶更燃火.]”라고 한 데서 보인다.
- 경우[境遇] 어떤 조건 아래에 놓인 그때의 상황이나 형편. 놓여 있는 조건이나 놓이게 되는 형편 또는 사정. 상황(狀況). 지경(地境). 사리나 도리. 어떤 일의 이치나 사람이 지켜야 할 도리.
- 곤인[困人] 사람을 곤궁하게 하다. 사람을 괴롭히다. 사람을 곤란하게 하다. 나른하게 하다. 노곤하게 하다. 노곤하다. 피로하여 졸리다. 참고로,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희공(僖公) 22년에 “송 양공(宋襄公)이 홍수(泓水) 부근에서 초(楚)나라와 패권을 다툴 때, 초나라 군대가 강을 건너기 전에 공격해야 한다는 신하의 말에 양공이 ‘군자는 남의 어려움을 보고 괴롭히지 않고, 전열이 갖추어지지 않으면 싸우지 않는다.[君子不困人於阨, 不鼓不成列.]’라고 하였다. 그러나 두 나라가 진영을 세우고 싸우자 중과부적으로 대패하고 마니, 양공은 ‘군자는 상처 입은 적을 거듭 찌르지 않고 반백의 늙은이를 포로로 잡지 않는다.[君子不重傷, 不禽二毛.]’라고 하였다. 세상에서 이를 송양지인(宋襄之仁)이라 하며 비웃었다.”라고 한 데서 보인다.
【譯文】 魯如曾子, 於道獨得其傳 ; 貧如顏子, 其樂不因以改.
像曾子那般愚魯的人, 卻能明孔一以貫之之道而闡揚於後, 可見天資不好並不足以限制一個人. 像顏淵那么窮的人, 卻並不因此而失去他的快樂, 由此可知遭遇和環境並不足以困往一個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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