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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참[望參], 망창과복[莽蒼果腹], 망채[望蔡], 망책[望策], 망천[輞川], 망천[莾泉]


망참[望參]  매달 음력 보름날에 사당에 참배하는 일을 이른다.

망창[莽蒼]  한 눈에 바라보이는 얼마 멀지 않은 거리. 아스라이 바라보이는 곳. 풍경이 어렴풋한 모양. 아득하고 망망한 들판. 끝없이 넓은 모양. 망창(莽蒼)은 희미하게 보이는 교외. 근교(近郊)의 빛. 아득히 바라보이는 곳으로 3, 4십 리의 거리. 장자(莊子) 소요유(逍遙遊)에 “망창(莽蒼)을 가는 자는 세 끼 먹을 양식만 가지고 가도 배가 든든하지만, 백 리를 가는 자는 하루 동안 양식을 찧어 가지고 가야하고, 천 리를 가는 자는 석 달 동안 양식을 모아야 한다.[適莽蒼者, 三飡而反, 腹猶果然, 適百里者, 宿舂糧, 適千里者, 三月聚糧.]”라고 하였는데, 그 주에 “망창(莽蒼)은 근교(近郊)의 빛이다.[莽蒼近郊之色也.]”라고 하였다.

망창과복[莽蒼果腹]  망창(莽蒼)은 아스라이 바라보이는 곳이고, 과복(果腹)은 배가 부른 것으로 거리가 그리 멀지 않아 갔다 오는 동안 밥을 세 번만 먹으면 배가 허기지지 않는 곳을 이른다. 장자(莊子) 소요유(逍遙遊)에 “망창(莽蒼)을 가는 자는 세 끼 먹을 양식만 가지고 가도 배가 든든하지만, 백 리를 가는 자는 한 방아 거리의 양식을 가져가야 하고, 천 리를 가는 자는 석 달 양식을 가져가야 한다.[適莽蒼者, 三食而後反, 腹猶果然, 適百里者宿舂糧.]”라고 하였다.

망채[望蔡]  예장군(豫章郡)에 속하던 옛 현명(縣名)으로 지금의 중국 강서성(江西省) 상고현(上高縣) 일대이다. 송서(宋書) 주군지(州郡志)의 예장태수(豫章太守) 조(條) 아래에 망채현(望蔡縣)이 나오는데, 한 영제(漢靈帝) 중평(中平) 연간에 여남(汝南) 상채(上蔡)의 백성들을 나누어 이곳으로 이주시키고 현(縣)을 만들어 이름을 상채(上蔡)라 하였는데, 진 무제(晉武帝) 태강(太康) 원년에 이름을 바꾸었다.

망책[望策]  태양의 평행(平行)과 태음의 평행이 만나는 일수(日數)인 삭책(朔策)을 2분의 1로 나눈 일수와 분(分)·초(秒)의 값.

망천[輞川]  당(唐) 나라 때 시인으로 산수화에도 뛰어났던 왕유(王維)의 별장이 있는 곳이다. 신당서(新唐書) 권202 문예열전(文藝列傳) 왕유(王維)에 “왕유의 별장이 망천에 있는데 그 지역의 경관리 매우 좋다. 화자강(華子岡), 의호(欹湖), 죽리관(竹裏館), 유랑(柳浪), 수유반(茱萸沜), 신이오(辛夷塢) 등이 있어 배적(裴迪)과 그 속에서 놀면서 서로 시를 주고받으며 즐겼다.”라고 하였다. 왕유가 이곳에다 별장을 짓고 주위의 아름다운 경관 20곳을 골라 각기 이름을 붙인 다음 시를 읊었는데, 세상에서는 이를 망천이십경(輞川二十景)이라고 한다. 또한 왕유가 망천의 20개의 승경을 배경으로 망천도(輞川圖)를 그렸다. <王右丞集 卷14>

망천[輞川]  물 이름이다. 지금의 중국 섬서성(陝西省) 남전현(藍田縣) 종남산(終南山) 아래 있다. 송지문(宋之問)이 여기에 남전(藍田) 별장을 지었었는데, 왕유(王維)가 만년에 이 별장을 사서 은거하였다. 이곳에는 화자강(華子岡), 의호(欹湖), 죽리관(竹里館), 유랑(柳浪), 수유반(茱萸泮), 신이오(辛夷塢) 등의 승경(勝景)이 많았으며, 왕유가 배적(裴迪)과 이곳에서 수창(酬唱)하며 즐겼다고 전해지는데, 이들이 주고받은 시는 왕우승집(王右丞集) 권13에 망천집(輞川集)으로 묶여 있다. 소식(蘇軾)의 서마힐남관연우도(書摩詰藍關煙雨圖)에 “마힐의 시를 음미하면 시 속에 그림이 있고, 마힐의 그림을 살펴보면 그림 속에 시가 있다.[味摩詰之詩, 詩中有畫, 觀摩詰之畫, 畫中有詩.]”라고 하였다.

망천[輞川]  중국 섬서성(陝西省) 남전현(藍田縣) 진령(秦嶺) 북쪽 기슭에서 시작되어 현 남쪽 패수(灞水)로 합류되는 망곡수(輞谷水)를 가리킨다. 물줄기들이 모여드는 모양이 마치 수레바퀴의 테와 같아서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경치가 뛰어나기로 유명하다. 당(唐)나라 때 시인 왕유(王維)가 이곳의 아름다운 경치를 사랑하여 별장을 두고 벗들과 어울려 시주(詩酒)를 즐겼고, 그곳의 십이승경(十二勝景)을 화폭(畫幅)에 담아 망천도(輞川圖)를 제작했다. <新唐書 卷202 王維列傳>

망천[輞川]  현 안동시 풍산읍 마애(磨崖) 일대를 말한다. 마애 절벽은 현재 풍산읍 마애리(麻厓里) 낙동강 가에 있는 절벽이다. 일명 마라(碼羅)라고 하고, 또 망천절벽(輞川絶壁)이라고 하는데, 원래 이 동네 경관이 중국의 망천과 같다 하여 망천이라 부르다가 낙동강 가에 바위를 쪼아 부처를 새겼기 때문에 마애로 바꾸어 부르게 되었다. 마을을 감싸 도는 낙동강과 절벽의 경관리 빼어난 곳이다. 영가지(永嘉誌)에 의하면 “남쪽에 적벽(赤壁), 삼봉(三峰)이 있는데 동쪽 봉은 준엄(峻嚴)·단정하고 서쪽 봉은 구불구불 고절(高截)하며 중간의 한 봉은 작으나 초립경직(峭立勁直)하여 옥동봉(玉童峯)이라 불렀다. 봉우리 서쪽에 간곡(澗谷)이 있고 골짜기 가운데 정사 몇 칸이 있는데 곧 박사 이돈(李燉)이 건립하였다. 삼봉 아래에 깊은 못이 있고 백사(白沙)가 금대(襟帶)같이 두르고 울창한 장림(長林)이 둘렸으며, 그 경치가 기절(奇絶)하다. 융경(隆慶) 무진년(1568)에 진사 이숙인(李淑仁), 생원 권경전(權景絟), 교수 이령(李苓) 등이 배를 타고 적벽의 아래에서 유람할 때 송암 권호문이 이를 바라보고 시를 지었다.”라고 하였다.

망천[莾泉]  왕망전(王莽錢)이라고도 한다. 왕망(王莽)이 한나라를 찬탈하여 신(新)을 세운 후 새로 발행한 화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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