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주공(陶朱公) 범려(范蠡)가 도(陶) 땅에 살면서 막내아들을 얻었는데, 막내아들이 장성할 무렵, 둘째 아들이 살인을 저질러 초나라 옥에 갇혔다.
도주공이 말하였다.
“사람을 죽였으니 죽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내가 듣자 하니 ‘천금의 집 자식은 저잣거리에서 죽지 않는다[千金之子不死於市]’고 하였다”
그러면서 막내아들을 보내어 형을 살펴보도록 하였다. 그리고는 황금 천 일(鎰)을 자루에 넣어 소가 끄는 수레에 실어 가져가게 하였다. 막내아들을 보내려는데 도주공의 맏아들이 한사코 자신이 가겠다고 나섰으나 도주공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맏아들이 말하였다.
“집안의 장남을 일러 가독(家督: 집안의 대소사를 살피는 역할)이라 하는데, 지금 동생에 죄가 있는데도 맏이가 가지 않고 막내가 간다면 이것은 제가 불초한 탓입니다.”
그러면서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하니, 그의 어머니가 말했다.
“지금 막내를 보낸다 해도 반드시 둘째를 살려내리라 볼 수 없는데, 먼저 헛되이 장남을 잃을 지경이니 이를 어찌하면 좋습니까?”
도주공이 하는 수 없이 장남을 보내면서, 밀봉한 편지 한 통을 써서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장생(莊生)에게 전하라고 하면서 당부하였다.
“도착하는 대로 장생의 집에 천금을 드리고, 그 분의 처분대로 따라야 하며, 절대 따지지 말아야 한다.”
맏아들은 길을 나서면서 개인적으로 수백 금을 따로 준비하여 출발하였다. 맏아들이 초나라에 당도하니 장생의 집은 성벽을 등지고 있었는데 덩굴을 헤치고서야 겨우 문에 다다를 수 있었으며, 사는 것이 매우 빈곤하였다. 도주공의 맏아들은 아버지의 말래로 편지와 천금을 전하였다.
장생(莊生)이 말하였다.
“가능한 한 빨리 이곳을 떠나되, 절대 머물러 있지 말거라. 동생이 석방되어 나오거든 그 까닭을 묻지도 말거라.”
맏아들은 장생의 집을 나선 후 장생을 다시 찾지는 않았지만 사적으로 머무르면서 자기가 가져간 황금을 초(楚)나라의 지위가 높은 사람에게 바쳤다. 장생은 비록 누추한 곳에 살고는 있었지만 온 나라에 청렴하고 강직함이 알려져, 초왕을 비롯한 모든 사람이 스승으로 존경하고 있었다. 장생은 도주공이 황금을 보내오자, 황금을 받기는 하였지만 가질 마음은 없었으며, 일을 성사시킨 뒤에는 다시 돌려주어 신의를 표하고자 하였을 뿐이었다. 그런 까닭에 황금을 받고는 그 아내에게 말했다.
“저것은 도주공의 황금이오. 제사를 모시기 전에 재계(齋戒)하지 못하여 괴로운 것과 같은 기분이니, 나중에 다시 돌려줄 것이오. 절대 손대서는 아니 되오.”
그러나 도주공의 장남은 그런 뜻을 알지 못하였고, 일이 어찌 되어갈 것인지도 전혀 짐작하지 못하였다. 장생이 적당한 때를 보아 입궐해 초왕을 알현하여 말하였다.
“별자리의 움직임을 살펴보니 초나라에 해로움이 있을 것 같습니다.”
평소 장생을 신뢰하고 있던 초왕이 말하였다.
“그럼 어떻게 하면 되겠소?”
장생이 말하였다.
“오직 덕을 베푸셔야 해로운 징조를 없앨 수 있습니다.”
초왕이 말하였다.
“선생께서는 잠시만 기다려 주시오. 과인이 선생의 말대로 하겠습니다.”
초왕은 곧 사신을 보내 삼전(三錢: 금은동 세 가지 재물)의 창고를 봉하게 하였다. 귀인(貴人: 맏아들에게 따로 황금을 받았던 초나라 유력인사)이 놀라워하며 맏아들에게 말하였다.
“왕께서 곧 사면을 내리실 모양이오.”
맏아들이 물었다.
“어떻게 그것을 아십니까?”
귀인이 말하였다.
“왕께서는 매번 사면령을 내리실 때마다 삼전의 창고를 봉하셨는데, 어제 저녁에 왕께서 사람을 보내 삼전의 창고를 봉하라는 명령을 내리셨습니다.”
도주공의 맏아들은 사면이 내려지면 동생도 당연히 석방될 것인데, 막대한 일천 금을 쓸 데 없이 장생에게 줄 까닭이 없다고 생각하여 다시 장생을 찾아 갔다. 맏아들을 본 장생이 놀라며 물었다.
“아직 떠나지 않았었느냐?”
맏아들이 대답하였다.
“떠나지 않고 있었습니다. 당초 동생의 일로 찾아뵈었는데, 지금 대사면이 논의되고 있어 동생은 저절로 풀려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선생님께 하직인사를 드리고 떠나려 합니다.”
장생은 그가 속으로 황금을 다시 돌려받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고 말하였다.
“자네가 방에 들어가 황금을 가져가게.”
맏아들은 그 즉시 방에서 황금을 가지고 떠나면서 혼자 다행이라고 기뻐하였다. 장생은 소인배에게 배신당함이 수치스러워 그 즉시 입궁하여 초왕을 알현하여 말하였다.
“신(臣)이 일전에 별자리에 대해 말씀드렸을 때 왕께서는 덕을 베풀어 그 해로움을 방지하고자 하셨습니다. 오늘 제가 밖에 나오니 사람들이 모두 말하기를 ‘도 땅의 부자 주공의 아들이 살인을 저질러 초나라 옥에 갇혀 있는데, 그 집안에서 많은 금을 가지고 와서 왕의 측근들에게 뇌물을 주고 있으니, 이번 사면은 왕께서 초나라 백성들을 불쌍히 여겨 사면을 행하는 것이 아니라 도주공의 아들 때문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초왕이 대노하여 말하였다.
“과인이 비록 덕이 없기는 하나, 어찌 주공의 아들만을 위해 은혜를 베푼단 말이오!”
그러고는 그 즉시 판결을 내려 주공의 아들을 죽이라 명령하고, 그 다음날 사면령을 내렸다. 도주공의 맏아들은 결국 동생의 시신만을 수습해 집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맏아들이 집에 도착하니 그의 어머니와 마을 사람들이 모두 슬픔에 빠져있는데, 오직 도주공만이 혼자 웃으며 말하였다.
“내 진작 맏이가 동생을 죽음에 이르게 할 줄 알았다. 이는 맏이가 동생을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단지 돈을 아까워하며 차마 쓰지 못할 것이었기 때문이다. 맏이는 어려서부터 늘 나와 함께 하면서 고생스럽던 때를 지켜보았고, 생활고를 겪었기 때문에 돈 쓰기를 어렵게 여긴다. 하지만 막내가 자랄 때는 내가 이미 부유해진 뒤였기 때문에 좋은 말과 마차를 타면서 토끼 사냥하는 것을 보고 자랐다. 그러니 재물 모으기가 어려움을 어찌 알겠는가? 따라서 돈 쓰기를 가볍게 여긴다. 그래서 인색하지 않은 것이다. 전에 내가 막내를 보내고자 했던 것은 막내가 돈을 쓸 줄 알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맏이는 돈을 쓸 줄 몰라 기어코 동생을 죽게 하였으니 이치가 그런 것일 뿐, 슬퍼할 일이 못 된다. 나는 밤낮으로 둘째의 시신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범려(范蠡)는 세 번을 옮기고도 천하에 명성을 떨쳤다. 도(陶) 땅에서 늙어 죽은 까닭에 대대로 도주공(陶朱公)이라고 전한다.
<사기 월왕구천세가>
朱公居陶, 生少子. 少子及壯, 而朱公中男殺人, 囚於楚. 朱公曰: “殺人而死, 職也. 然吾聞千金之子不死於市.” 告其少子往視之. 乃装黄金千溢, 置褐器中, 載以一牛車. 且遣其少子, 朱公長男固請欲行, 朱公不聽. 長男曰: “家有長子曰家督, 今弟有罪, 大人不遣, 乃遺少弟, 是吾不肖.” 欲自殺. 其母爲言曰: “今遣少子, 未必能生中子也, 而先空亡長男, 奈何?” 朱公不得已而遣長子, 爲一封書遺故所善莊生. 曰: “至則進千金于莊生所, 聽其所爲, 慎無與争事.” 長男既行, 亦自私齎數百金.
至楚, 莊生家負郭, 披藜藋到門, 居甚貧. 然長男發書進千金, 如其父言. 莊生曰: “可疾去矣, 慎毋留! 即弟出, 勿問所以然.” 長男既去, 不過莊生而私留, 以其私齎獻遺楚國貴人用事者.
莊生雖居窮閻, 然以廉直聞於國, 自楚王以下皆師尊之. 及朱公進金, 非有意受也, 欲以成事後復歸之以爲信耳. 故金至, 謂其婦曰: “此朱公之金. 有如病不宿誡, 後復歸, 勿動.” 而朱公長男不知其意, 以爲殊無短長也.
莊生閒時入見楚王, 言 “某星宿某, 此則害於楚”. 楚王素信莊生, 曰: “今爲奈何?” 莊生曰: “獨以徳爲可以除之.” 楚王曰: “生休矣, 寡人將行之.” 王乃使使者封三錢之府. 楚貴人驚告朱公長男曰: “王且赦.” 曰: “何以也?” 曰: “毎王且赦, 常封三錢之府. 昨暮王使使封之.” 朱公長男以爲赦, 弟固當出也, 重千金虚弃莊生, 無所爲也, 乃復見莊生. 莊生驚曰: “若不去邪?” 長男曰: “固未也. 初爲事弟, 弟今議自赦, 故辞生去.” 莊生知其意欲復得其金, 曰: “若自入室取金.” 長男即自入室取金持去, 獨自歡幸.
莊生羞爲兒子所売, 乃入見楚王曰: “臣前言某星事, 王言欲以修徳報之. 今臣出, 道路皆言陶之富人朱公之子殺人囚楚, 其家多持金錢賂王左右, 故王非能恤楚國而赦, 乃以朱公子故也.” 楚王大怒曰: “寡人雖不徳耳, 奈何以朱公之子故而施惠乎!” 令論殺朱公子, 明日遂下赦令. 朱公長男竟持其弟喪歸.
至, 其母及邑人盡哀之, 唯朱公獨笑, 曰: “吾固知必殺其弟也! 彼非不愛其弟, 顧有所不能忍者也. 是少與我倶, 見苦, 爲生難, 故重弃財. 至如少弟者, 生而見我富, 乗堅駆良逐狡免, 豈知財所從來, 故輕弃之, 非所惜吝. 前日吾所爲欲遣少子, 固爲其能弃財故也. 而長者不能, 故卒以殺其弟, 事之理也, 無足悲者. 吾日夜固以望其喪之來也.”
故范蠡三徙, 成名於天下, 非苟去而已, 所止必成名. 卒老死于陶, 故世傳曰陶朱公. 【史記 越王句踐世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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