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혜[芒鞋] 초혜(草鞋). 미투리. 짚신. 억새풀로 만든 신발. 억새 줄기를 엮어 만든 신발. 마혜(麻鞋)를 잘못 일컫는 말. 참고로, 송(宋)나라 때 학자로 학림옥로(鶴林玉露)의 저자인 나대경(羅大經)이 고승(古僧)의 오도(悟道) 시를 인용하여 “진종일 찾아봐도 봄이 보이지 않아서, 농산의 구름 속을 두루 밟고 다녔어라. 돌아와서 웃으며 매화 향기 맡아보니, 가지 위에 봄이 이미 무르익었네.[盡日尋春不見春, 芒鞋踏遍隴頭雲. 歸來笑撚梅花嗅, 春在枝頭已十分.]”라고 고쳐 읊은 데서 보인다.
망혜죽장[芒鞋竹杖] 망혜(芒鞋)와 죽장(竹杖). 망혜(芒鞋)는 짚신이고 죽장(竹杖은 대나무 지팡이인데, 일반적으로 죽장망혜(竹杖芒鞋)라고 쓴다. 소박하고 단출한 행장을 비유하는 말이다. 소식(蘇軾)의 시 숙석전역남야인사(宿石田驛南野人舍)에 “짚신과 대지팡이 가볍고도 부드럽고, 부들방석 대나무 평상 향기롭고 매끄럽네.[芒鞋竹杖自輕軟, 蒲薦松床亦香滑]”라고 하였다.
망호[網戶] 그물눈처럼 가로 세로 현란하게 아로새긴 문. 그물처럼 조각된 무늬 지게문. 망호대주지(網戶對蛛蜘). 이규보(李奎報)의 차운오동각세문정고원제학사삼백운시(次韻吳東閣世文呈誥院諸學士三百韻詩)에 “전사엔 새들이 망라되고, 망호엔 거미를 보았어라.[篆沙羅鳥雀, 網戶對蛛蜘.]”라고 한 데서 보이는데, 참고로, 금루자(金樓子) 잡기(雜記)에 “초(楚)나라 사람 공사(龔舍)가 처음으로 초왕(楚王)을 따라 천자를 조현(朝見)하러 가 미앙궁(未央宮)에 묵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거미를 보았다. 그 거미는 붉고 밤톨만큼이나 컸고, 사방에 거미줄을 둘러 쳐 두었는데, 벌레가 그 그물에 닿으면 죽고, 물러서려 해도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공사가 탄식하며 말하기를 ‘내 삶도 이와 같구나. 벼슬살이는 사람이 얽히는 그물망이니 어찌 세월을 헛되이 보낼 수 있겠는가?’라고 하고는 벼슬을 그만두고 물러나니, 사람들이 비웃으며 그를 일러 ‘지주은(蜘蛛隱)’이라 하였다.[楚國龔舍, 初隨楚王朝, 宿未央宮, 見蜘蛛焉. 有赤蜘蛛大如栗, 四面縈羅網, 有蟲觸之而死者, 退而不能得出焉. 舍乃歎曰: ‘吾生亦如是矣. 仕宦者人之羅網也, 豈可淹歲?’ 於是挂冠而退. 時人笑之, 謂舍為蜘蛛之隱.]”라고 하였다. 고금사문유취(古今事文類聚) 후집 권50 충치류(蟲豸類) 호지주은(號蜘蛛隱)에도 금루자(金樓子)를 인용하여 실려 있다.
망호당[望湖堂] 약포집(藥圃集) 연보(年譜)에 “선생이 살던 고평리(高坪里) 집에서 들판을 바라보고 물가에 임하면 녹야오교(綠野午橋)의 승경이 있어 그 집에 편액하기를 망호재(望湖齋)라고 했다.”라고 하였다.
망호루[望湖樓] 안동(安東) 객관의 동쪽에 있는 누각으로, 부사 박호겸(朴好謙)이 세웠다.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에 있는 누대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권24 경상도(慶尙道) 안동대도호부(安東大都護府)의 누정(樓亭) 조에 “객관의 동쪽에 있다. 부사 박호겸이 세웠다.[在客館東, 府使朴好謙建.]”라는 기록이 있다.
망호루[望湖樓] 누각의 이름. 누각 이름. 오대(五代) 때 오월왕(吳越王) 전홍숙(錢弘俶)에 의해 축조되었다. 지금의 중국 항주(杭州) 서호(西湖) 가에 있는 초경사(昭慶寺) 앞에 있다. 간경루(看經樓)라고도 한다.
망호매호 미지진자[芒乎昧乎 未之盡者] 아득하고 어두울 뿐인지라, 아직 극진하지는 못한 자임. 망매(芒昧)는 그윽하고 어두움이다. <莊子 天下>
망호물 망호천 기명위망기[忘乎物 忘乎天 其名爲忘己] 만물(萬物)을 잊고 자연의 천까지도 잊는 것은 그 이름을 자기를 잊는 것이라 함. 장자(莊子) 천지(天地)에 “형체가 있는 것들은 움직임과 그침, 삶과 죽음, 폐지되고 일어남이 있으니 또 그들이 이것을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다스리는 것은 사람에게 달려 있으니, 만물을 잊고 자연의 천(天)까지도 잊는 것은 그 이름을 자기를 잊는 것이라 한다. 자기를 잊어버리는 사람, 이런 사람을 일컬어 天(자연)의 경지에 들어갔다고 일컫는 것이다.[其動, 止也 ; 其死, 生也 ; 其廢, 起也. 此又非其所以也. 有治在人, 忘乎物, 忘乎天, 其名為忘己. 忘己之人, 是之謂入於天.]”라고 한 데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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