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파지림에 이르기를
“사람이 살아가면서 빈천을 견디기는 쉽지만 부귀를 견디기는 어렵고,
수고로움 속에 안정되기는 쉽지만 한산함 속에 안정되기는 어렵고,
아픔을 참는 것은 쉽지만 가려움을 참는 것은 어렵다.
능히 부귀를 견디고, 한산함 속에 안정되며,
가려움을 참아낼 수 있는 자는 반드시 도가 있는 사람이다.”
라고 하였다.
생각건대, 이처럼 정수하고 명쾌한 말은 사람이 깊이 성찰하기에 충분하니,
마땅히 친구들과 모이는 자리에서 이를 이야기하면 고상한 대화에 도움이 될 것이다.
東坡志林有云: “人生耐貧賤易, 耐富貴難.
동파지림유운: “인생내빈천이, 내부귀난.
安勤苦易, 安閑散難. 忍疼易, 忍癢難.
안근고이, 안한산난. 인동이, 인양난.
能耐富貴, 安閑散, 忍癢者, 必有道之士也.”
능내부귀, 안한산, 인양자, 필유도지사야.”
余謂如此精爽之論, 足以發人深省, 正可於朋友聚會時, 述之以助淸談.
여위여차정상지론, 족이발인심성, 정가어붕우취회시, 술지이조청담.
<圍爐夜話위로야화>
- 동파[東坡] 북송(北宋) 정치가이자 문장가 소식(蘇軾)의 호이다. 자(字)는 자첨(子瞻) 또는 화중(和仲)이며,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소철(蘇轍)의 형이다. 시(詩)·사(詞)·음악(音樂)·서법(書法) 등에도 조예가 깊었다. 아버지 소순(蘇洵), 아우 소철(蘇轍)과 함께 삼소(三蘇)로 불린다.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 중 한 사람으로 구양수(歐陽脩)에게 인정받아 문단에 등장하였다. 21세 때 진사가 되어 벼슬길에 들어섰지만, 격렬한 신구당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여러 차례 좌천을 당하는 등 불운을 겪었다. 왕안석(王安石)의 신법(新法)이 실시되자 구법당(舊法黨)으로 불편함을 지적한 글을 올렸다가 항주 통판(杭州通判)으로 전출되었다. 그 후 부침(浮沈)을 겪다가 말년에 신법당이 다시 권력을 잡자 중국 최남단 해남도(海南島)로 유배되었다. 저서로는 동파전집(東坡全集)이 있다.
- 동파[東坡] 동쪽에 있는 언덕진 땅. 지명(地名). 호북(湖北) 황강현(黃岡縣) 동쪽에 있다. 소식(蘇軾)은 원풍(元豐) 2년(1079)에 언관(言官) 하정신(何正臣), 서단(舒亶), 이정(李定)의 무함을 받아 하옥되었고, 출옥된 뒤에는 수부원외랑(水部員外郞) 황주단련부사(黃州團練副使) 명의로 황주(黃州)에 폄적(貶謫)되었고, 원풍(元豐) 5년에는 동파(東坡)를 수리하였다. 소식(蘇軾)은 황주(黃州) 유배시에 경제적으로 매우 궁색하였는데, 황주(黃州)의 서생 마정경(馬正卿)이 관청에 요청하여 수십 무(畝)의 황무지를 경작할 수 있도록 주선하였다. 이 황무지는 옛 군영지의 동쪽에 있는 경사지였으므로 동파(東坡: 동쪽 언덕)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이 때문에 소식(蘇軾) 역시 동파(東坡)라고 자호(自號)한 것이다. 소식(蘇軾)은 송 철종(宋哲宗) 때 중용(重用)되어 구법파(舊法派)의 중심적 인물로 활약하였고 적벽부(赤壁賦) 등의 작품을 남겼다. 특히 구양수(歐陽脩)와 비교되는 대문호로서 부(賦)를 비롯하여 시·사·고문 등에 능하였으며, 재질이 뛰어나 서화로도 유명하였다. 그의 문학은 송(宋)나라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고려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 동파지림[東坡志林] 송대(宋代)의 소식(蘇軾)이 당시의 일사(逸事)와 기문(奇聞)을 모아 엮은 책으로, 전체 5권이며, 동파수택(東坡手澤)이라고도 한다. 후편(後篇)은 동파대전집(東坡大全集)에 수록되었으며, 청대(淸代)에 우통(尤侗)이 지은 독동파지림(讀東坡志林) 1권이 있다. <四庫全書總目提要 子部 雜家類>
- 근고[勤苦] 마음과 몸을 다하며 애씀. 또는 그런 일. 애써 부지런히 일함. 부지런히 노력하다. 고생스럽게 일하는 것을 가리킨다. 참고로, 당(唐)나라 두보(杜甫)의 시 제백학사모옥[題柏學士茅屋]에 “푸른 산의 학사가 은어를 불태우고, 백마 타고 달려가 깊은 곳에 은거하였네. 옛 사람은 삼동의 독서에 만족하였는데, 그대 젊은 나이에 만여 권을 읽었구나. 초가집 위엔 구름이 뭉게뭉게, 가을 물은 섬돌 가득 도랑으로 넘치네, 부귀는 부지런히 힘써야 얻을 수 있고, 남아는 모름지기 다섯 수레 책 읽어야지.[碧山學士焚銀魚, 白馬卻走深岩居. 古人已用三冬足, 年少今開萬卷餘. 晴雲滿戶團傾蓋, 秋水浮階溜決渠. 富貴必從勤苦得, 男兒須讀五車書.]”라고 하였고, 진(晉)나라 황보밀(皇甫謐)의 제왕세기(帝王世紀)에 “우 임금이 부친인 곤의 뒤를 이어 홍수를 다스릴 적에, 몸을 수고롭게 하고 부지런히 힘쓰면서, 직경 한 자 되는 벽옥(璧玉)은 중하게 여기지 않고 날마다 촌음을 아끼셨다.[繼鯀治水, 乃勞身勤苦, 不重徑尺之璧, 而愛日之寸陰.]”라고 한 데서 보인다.
- 한산[閑散/閒散] 일이 없어 한가(閑暇)함. 조용하고 쓸쓸함. 품계(品階)만 가지고 직무(職務)없이 한가하게 지내는 사람. 실무(實務)가 없는 자리. 긴요하지 않은 관직. 산직(散職). 관적(官籍)에서 제거된 사람. 실관(實官)을 면하여 실무에는 관여하지 않고 관직만을 갖고 있는 사람. 곧 실무는 보지 않고 그 관직의 이름만 가지고 있는 사람을 말한다. 산관(散官) 혹은 한량(閑良)과 산관(散官) 두 가지를 가리키는 개념으로도 쓰인다. 일반의 관례로는 신분(身分)의 일종(양반·평민 등)으로 쓰인다. 산관(散官)은 무관(武宮)이 될 수 있는 가문의 출신으로서 아직 시험을 보지 않았거나 또는 시험에 낙제하여 임관(任官)되지 못한 자를 이른다. 한산인(閑散人).
- 인동[忍疼] 아픈 것을 참고 견딤. 고통을 참다. 고통을 견디다.
- 인양[忍癢] 가려움을 참다. 가려움을 견디다.
- 정상[精爽] 만물에 근원을 이루는 신령스러운 기운. 신기(神氣)가 깨끗하고 밝음. 정(精)은 신을 이르고, 상(爽)은 밝음을 이른다. 신령(神靈)이 밝거나 정한 모양 또는 그러한 신령이나 혼백(魂魄)을 뜻하기도 한다. 영상(靈爽). 정령(精靈). 주자어류(朱子語類) 성정심의등명의(性情心意等名義)에서 “마음은 기의 정상이다.[心者, 氣之精爽也.]”라고 하였는데, 정상은 일종의 신명(神明)과 같다. 마음은 이 신명이 있어서 지각운용(知覺運用)의 묘(妙)를 발현하게 된다.
- 심성[深省] 깊이 깨달아 반성함. 어떤 일을 깊이 반성하거나 깨달음. 깊이 반성하다. 깊이 생각하다. 깊이 깨닫다. 깊이 살피다. 핵심을 깨닫다. 참고로, 두보(杜甫)의 시 유용문봉선사(游龍門奉先寺)에 “깨려던 차에 새벽 종소리 들으니, 사람으로 하여금 깊이 깨달음을 일게 하네.[欲覺聞晨鐘, 令人發深省.]”라고 한 데서 보인다.
- 취회[聚會] 회합. 모임. 집회. 모이다. 회합하다.
- 청담[淸談/清談] 속되지 않은 고상한 이야기. 명리(名利)·명문(名聞)을 떠난 청아(淸雅)한 이야기. 남이 하는 이야기를 높여 이르는 말. 위진(魏晉) 시기 노장학(老莊學)의 영향을 받아 허무(虛無)를 숭상하고 현리(玄理)에 대한 공론(空論)을 일삼던 풍조를 말한다. 현담(玄談)이라고도 한다. 주로 유무(有無)와 본말(本末)에 대한 분변(分辨)에 집중하였고, 노장의 학설을 이용하여 유가의 경의(經義)를 해석하기도 하였다. 삼국시대 위(魏)나라의 하안(何晏)·하후현(夏侯玄)·왕필(王弼) 등에서 시작되어 진(晉)나라 왕연(王衍) 등에 이르러 더욱 성대해졌고, 남조(南朝)의 소제(蕭齊)·소양(蕭梁)에 이르기까지 이어졌다. 이들은 천하 만물이 모두 무(無)를 근본으로 한다 하여, 세상일을 버리고 산림에 숨어 청정무위(淸淨無爲)의 설을 담론하였다. 참고로, 구양수(歐陽脩)의 증창승부(憎蒼蠅賦)에 “이러한 때를 당하면, 비록 왕연이라도 어느 겨를에 청담을 논하겠으며, 비록 가의라도 어떻게 장탄식을 할 수가 있겠는가.[於此之時, 王衍何暇於淸談, 賈誼堪爲之太息.]”라고 하였고, 두보(杜甫)의 시 구월일일과맹십이창조십사주부형제(九月一日過孟十二倉曹十四主簿兄弟)에 “청담에서 재미를 보니, 그대들과 나이를 잊고 사귈만하네.[淸談見滋味, 爾輩可忘年.]”라고 한 데서 보인다.
- 청담[淸談] 청아(淸雅)하고 고상한 담론. 세속의 명리(名利)를 떠난 맑고 깨끗한 담화(談話). 청언(淸言). 현언(玄言). 청담(淸談)은 위(魏), 진(晉) 시대에 예법을 무시하고 노장(老莊)의 사상을 숭상하여 현묘한 이치를 담론한 것을 이른다. 특히 위진(魏晉) 시대에 죽림칠현(竹林七賢) 등의 풍류인들이 좋아하였다. 이때에는 노장(老莊)의 학문을 숭상하여 현리(玄理)를 담론하던 풍습이 있었는데, 위나라 하안(何晏)·하후현(夏侯玄)·왕필(王弼) 등에게서 비롯되어 진나라 왕연(王衍) 등에 이르러 더욱 성했다고 한다. 진(晉)나라 말기에 팔달(八達)이라고 일컫던 호무보지(胡毋輔之), 사곤(謝鯤), 완방(阮放), 필탁(畢卓), 양만(羊曼), 환이(桓彛), 완부(阮孚), 광일(光逸) 등 여덟 사람이 예법을 전혀 돌아보지 않고, 날마다 청담을 나누는 것으로 유명하였다. 그중에는 심지어 옷을 다 벗고 알몸을 내놓은 자도 있어서 폐단이 극에 달했다 한다.
【譯文】 人生耐貧賤易, 耐富貴難.
蘇東坡在志林一書中說: “人生要耐得住貧賤是容易的事, 然而要耐得住富貴卻不容易 ; 在勤苦中生活容易, 在閒散里度日卻難 ; 要忍住疼痛容易, 要忍住發癢卻難. 假如能把這些難耐難安難忍的富貴·閒散·發癢, 都耐得·安得·忍得, 這個人必是個已有相當修養的人.” 我認為像這么精要爽直的言論, 足以讓我們深深去體會, 正適合在朋友相聚時提出來討論, 增加談話的內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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