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안한 처지에서는 천명을 기다리고
위급함을 당하여서는 목숨을 바치니
명운에 대하여 안다는 사람은
마땅한 명운을 순리로 받아들일 뿐이고
소박하고 어눌한 것은 어짊에 가깝고
교묘하고 꾸미는 것은 어짊이 드무니
어질어지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어짊으로 들어가는 길을 바로 알 수 있다.
居易俟命, 見危授命. 言命者, 總不外順受其正.
거이사명, 견위수명. 언명자, 총불외순수기정.
木訥近仁, 巧令鮮仁. 求仁者, 即可知從入之方.
목눌근인, 교영선인. 구인자, 즉가지종입지방.
<圍爐夜話위로야화>
- 거이사명[居易俟命] 군자는 평범한 일상에서 자신의 운명을 담담히 기다림. 군자는 현재의 지위에 안거(安居)하고 더 요행을 바라지 않음. 중용장구(中庸章句) 제14장에 “군자는 평이한 도리를 행하면서 천명을 기다리고, 소인은 위험한 짓을 행하면서 요행을 바란다.[君子居易以俟命, 小人行險以徼幸.]”라고 하였다. 참고로, 맹자(孟子) 진심 하(盡心下)에 “군자는 법도(法度)대로 행하고 화복(禍福)은 하늘의 명에 맡길 따름이다.[君子行法以俟命而已矣.]”라는 말이 나온다.
- 견위수명[見危授命] 위험한 고비에서 서슴없이 목숨을 바침. 나라의 위태로움을 보고 나라에 목숨을 바침. 위험(危險)을 보면 목숨을 바친다는 뜻으로, 나라의 위태(危殆)로운 지경(地境)을 보고 목숨을 바쳐 나라를 위(爲)해 싸우는 것을 이른다. 논어(論語) 헌문(憲問)에 완전한 사람[成人]이 무엇인지 묻는 자장(子張)의 질문에 공자가 대답하기를 “이(利)를 보면 의(義)를 생각하고, 위태로운 것을 보면 목숨을 바쳐 구하며, 오랜 약속에 평소의 말을 잊지 않는다면 또한 성인이라고 할 수 있다.[見利思義, 見危授命, 久要不忘平生之言, 亦可以爲成人矣.]”라고 한 데서 보인다. 참고로, 논어(論語) 위령공(衛靈公)에서 공자는, “뜻 있는 선비와 어진 사람은 삶을 구하다가 인을 해치는 경우는 없고, 목숨을 바쳐서 인을 이루는 경우는 있다.[志士仁人, 無求生以害仁, 有殺身以成仁.]”라고 하였다.
- 불외[不外] 어떤 범위(範圍)나 한계(限界)에서 벗어나지 아니함. 단지 ~일 뿐이다. ~에서 벗어나지 않다. ~에 지나지 않다. ~를 벗어나지 못하다. ~밖에는 없다. 단지 ~할 뿐이다. ~에 틀림없다. 꼭 ~할 것이다.
- 순수기정[順受其正] 정명(正命)을 순리에 맞게 받음. 서경(書經) 홍범(洪範)에서 오복(五福)을 말하면서 “첫째는 장수요, 둘째는 부귀요, 셋째는 강녕함이요, 넷째는 덕을 좋아함이요, 다섯째는 바른 명으로 마치는 것이다.[一曰壽, 二曰富, 三曰康寧, 四曰攸好德, 五曰考終命.]”라고 하였는데, 채침(蔡沈)이 서경집전(書經集傳)에서 “고종명은 그 바른 명을 순히 받는 것이다.[考終命者, 順受其正也.]”라고 주한 데서 보이고, 맹자(孟子) 진심 상(盡心上)에 맹자가 이르기를 “명이 아님이 없으나, 정명(正命)을 순리에 맞게 받아야 한다. 그러므로 정명을 아는 자는 위험한 담장 아래에 서지 않는다. 도리를 다하고 죽는 자는 정명이요, 질곡으로 죽는 자는 정명이 아니다.[莫非命也, 順受其正. 是故知命者不立乎巖墻之下. 盡其道而死者, 正命也; 桎梏死者, 非正命也.]”라고 한 데서 보인다.
- 정명[正命] 타고난 수명. 정당한 수명. 천명을 다하거나 정의를 위하여 죽는 목숨. 천수(天壽)를 다하고 죽거나 정의(正義)를 행하다 죽는 것. 유가(儒家)에서 천도(天道)에 순응하여 천수(天壽)를 누리고 죽는 것을 뜻하는 말. 하늘로부터 부여된 만물 본래의 성질. 팔정도의 하나. 삼업(三業)으로 악업(惡業)을 짓지 아니하고, 바른 생활 수단에 의하여 다섯 가지 사명(邪命)을 여의는 일. 참고로, 맹자(孟子) 진심 상(盡心上)에 “명 아님이 없으나 정명을 순히 받아야 한다. 그러므로 정명을 아는 자는 위험한 담장 아래에도 서지 않는다. 도리를 다하고 죽는 자는 정명이요, 죄를 짓고 형벌로 죽는 자는 정명이 아니다.[莫非命也, 順受其正. 是故知命者, 不立乎巖牆之下. 盡其道而死者, 正命也. 桎梏死者, 非正命也.]”라고 하였다. 이에 대해 주희는 공자가 환퇴(桓魋)에게 죽임을 당하는 것을 정명(正命)은 아니지만 명(命)이라고 하였다. 주자어류(朱子語類)에 “‘비록 바른 것이 아니라고 하였으나 또한 명(命)이라고 하였으니, 그렇다면 이는 스스로 취한 것이 됩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명(命)이라고 한 것입니까?’라고 묻자 ‘또한 스스로 일으키자 하늘이 죽게 하신 것인데, 다만 정명(正命)이 아닐 뿐인 것이다. 만일 문왕(文王)이 유리(羑里)에서 죽고 공자가 환퇴에게 죽임을 당하였다면, 이도 명(命)인 것이다.’라고 하였다.[雖謂非正, 然亦以命言, 此乃自取, 如何謂之命? 曰: 亦是自作而天殺之, 但非正命耳. 使文王死於羑里, 孔子死於桓魋, 却是命.]”라고 하였다.
- 목눌[木訥] 고지식하고 둔하며 말 재주가 없음. 질박하고 둔한 품성. 소박하고 느리다. 소박하고 말주변이 없다. 성품이 질박하고 말이 어눌한 사람을 일컫는 말로 쓰인다.
- 목눌근인[木訥近仁] 질박하고 어눌한 것은 인에 가깝다. 논어(論語) 자로(子路)에 “강하고 굳세며 질박하고 어눌한 것이 인에 가깝다.[剛毅木訥, 近仁.]”라고 하였다. 이에 대한 양시(楊時)의 주석에서 “강하고 굳세면 물욕에 굽히지 않고, 질박하고 어눌하면 외물에 치달리지 않는다. 그러므로 인(仁)에 가까운 것이다.[剛毅則不屈於物欲, 木訥則不至於外馳. 故近仁.]”라고 하였다.
- 교영[巧令] 남의 환심을 사려고 아첨하는 교묘한 말과 보기 좋게 꾸미는 얼굴빛. 교령(巧令)은 교언영색(巧言令色)의 준말로, 남에게 듣기 좋게 하는 언어와 보기 좋게 하는 안색, 곧 밖으로 꾸며서 남을 기쁘게 하는 소인의 작태를 말한다. 논어(論語) 학이(學而)에 공자가 “말을 교묘하게 하고 얼굴빛을 잘 꾸미는 사람치고 어진 사람이 드물다.[巧言令色, 鮮矣仁.]”라고 하였다.
- 교령선인[巧令鮮仁] 교령(巧令)은 교언영색(巧言令色)의 준말로, 남에게 듣기 좋게 하는 언어와 보기 좋게 하는 안색, 곧 밖으로 꾸며서 남을 기쁘게 하는 소인의 작태를 말한다. 논어(論語) 학이(學而)에 “공자께서 이르기를 ‘말을 좋게 하고 얼굴빛을 곱게 하는 사람 중에 어진 이가 드물다.’라고 하였다.[子曰: 巧言令色, 鮮矣仁.]”라고 하였다.
- 가지[可知] 알 만함. 어떤 것을 알 만함. 알 수 있음. 가히 알 수 있다. 가히 짐작할 수 있다. ~인 것도 당연하다. ~인 것도 무리가 아니다. 참고로, 신당서(新唐書) 권97 위징열전(魏徵列傳)에, 당 태종(唐太宗)이 재상 위징(魏徵)을 잃고 “구리를 거울삼으면 의관을 바로잡을 수 있고, 옛 사적을 거울삼으면 흥망을 알 수 있고, 사람을 거울삼으면 잘잘못을 밝힐 수 있다. 짐은 일찍이 이 세 가지 거울을 보전하여 안으로 나의 과실을 예방하였는데, 이제 위징이 죽었으니 거울 하나가 없어졌구나.”[以銅爲鑑, 可正衣冠, 以古爲鑑, 可知興替, 以人爲鑑, 可明得失. 朕嘗保三鑑, 內防己過, 今魏徵逝, 一鑑亡矣.]라 하고 탄식한 데서 보인다.
【譯文】 居易俟命見危授命, 木訥近仁巧令鮮仁.
君子在平日不做危險的言行, 以等待時機, 一旦國家有難, 便難奉獻自己的生命去挽救國家的命運, 講命運的人總不外乎將命運承受在應該承受與投注之處. 言語不花巧則接近仁德了, 反之, 話說得好聽, 臉色討人喜歡, 往往沒有什麼仁心, 尋求仁德的人由此可知該由何處做起才能入仁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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