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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색[梅賾], 매생[枚生], 매생[每生], 매생[梅生], 매생은[梅生隱]


매색[梅賾]  동진(東晉) 여남(汝南) 서평(西平) 사람으로 자는 중진(仲眞)이다. 고문상서(古文尙書)와 상서공씨전(尙書孔氏傳)을 조정에 바치자 당시에 학궁(學宮)을 세워 이것을 가르쳤다. 그러나 후세 사람이 매색(梅賾)의 위작이 아닐까 의심하였는데, 청(淸)나라 염약거(閻若璩)의 고문상서소증(古文尙書疏證)으로 인해 진짜 고문(古文)이 아닌 것으로 판명되었다.

매색[梅賾]  매색(梅賾)은 진(晉)의 서평인(西平人)으로 자는 중진(仲眞). 원제(元帝) 초에 예장 태수(豫章太守)를 지냄. 처음 한(漢) 나라 공안국(孔安國)이 조서(詔書)를 받들어 고문상서전(古文尙書傳)을 지었는데, 마침 무고(巫蠱) 사건이 발생하여 바치지 못한 채 망실하였다. 그러다가 매색에 이르러 공씨전(孔氏傳)을 얻어 바쳤으므로 뒷사람들이 위조(僞造)한 것으로 의심하였다. 청(淸) 나라 염약거(閻若璩)가 고문상서소증(古文尙書疏證)을 저작하기에 이르자 그 책의 위조가 더욱 명확해졌다.

매생[枚生]  매생(枚生)은 한나라 문장가 매승(枚乘)으로, 한 경제(漢景帝)가 그를 극진히 예우하며 초빙하였으나 벼슬살이를 좋아하지 않아 사양하고 양효왕(梁孝王) 유무(劉武)의 객이 되어 문장을 짓는 것으로 소일하였다. 황보규(黃甫規)는 후한 충제(後漢沖帝) 때 현량방정(賢良方正)으로 천거된 인물이다. 환제(桓帝) 때 도료장군(度遼將軍)을 그만두고 잠시 고향 안정(安定)으로 돌아와 있었는데, 같은 고을의 어떤 사람이 뇌물을 주고 안문 태수(雁門太守)가 되었다가 그만두고 고향에 돌아와 인사차 찾아오자, “경이 이전에 고을살이를 할 때 먹은 기러기가 맛은 좋았소?”라고 물어 안문 태수를 돈으로 산 것에 대해 핀잔을 주었다. <漢書 卷51 枚乘傳> <後漢書 卷49 王符傳>

매생[枚生]  기원전 140년에 죽은 서한의 관리이며, 저명한 사부가(辭賦家) 매승(枚乘)을 말한다. 자는 숙(叔)으로 매생은 별칭이다. 처음에 오나라의 낭중(郎中)이 되었다가 오왕 유비(劉濞)가 반란을 획책하자 그는 표문을 올려 해롭고 이로움을 열거하며 중지할 것을 간했으나 오왕은 듣지 않았다. 그때 양효왕 유무(劉武)의 세력이 높아 귀하게 되어 문사들을 초빙하여 받들었음으로 매승은 즉시 오나라를 떠나 양나라로 들어갔다. 양효왕은 매승을 낭중으로 삼았다. 얼마 후에 관직을 물러나 향리로 돌아가 은거했다. 경제 3년 기원전 154년, 오초칠국이 군사를 일으켜 반란을 일으키자 그는 다시 오왕에게 천하정세를 분석한 표문을 올려 군사를 거두어들이기를 권했다. 오왕은 여전히 매승의 간언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칠국의 란이 평정되자 그의 이름은 천하에 알려져 경제가 불러 그를 홍농도위(弘農都尉)에 임명했다. 군의 관리들이 불쾌하게 생각했음으로 병이 났다는 핑계를 대고 도위직을 그만두고 다시 양나라로 들어가 유유자적했다. 당시의 저명한 사부가(辭賦家) 추양, 엄기 등과 교우하고 양효왕의 문객이 되었다. 효왕의 문객들은 모두가 이름있는 사부의 대가였으나 그의 사부는 그 중에서 최고였다. 기원전 144년 양효왕이 죽자 양나라를 떠나 회음으로 돌아갔다. 태자로 있을 때 평소에 그의 명성을 들었던 한무제가 즉위하자 즉시 부들로 치장한 안거(安車)를 보내어 초빙했으나 노년으로 인하여 도중에 죽었다. 한서(漢書) 예문지(藝文志)에 매승부(枚乘賦)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지금까지 전해진다.

매생[每生]  목숨을 아끼어 오래 살기를 바라는 일. 매생(每生)은 삶을 탐함을 이른다. 한나라 가의(賈誼)의 복조부(鵩鳥賦)에 “탐부는 재물 때문에 죽고 열사는 명예 때문에 죽으며, 뛰어난 사람은 권세에 죽고 평범한 사람은 삶을 탐한다.[貪夫殉財兮, 烈士殉名. 夸者死權兮, 品庶每生.]”라고 하였는데, 이선(李善)은 “매(每)는 탐(貪)하는 것이다.”라고 주하였다.

매생[梅生]  전한(前漢) 때 남창위(南昌尉)를 지낸 매복(梅福)을 가리킨다. 왕망(王莽)이 찬탈을 행하자 집을 떠나 구강(九江) 일대에 숨어 지내다가 신선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하는 인물이다. 이백(李白)의 시 증하구왕소부(贈瑕丘王少府)에 “맑고 밝은 자태는 봉황과 같고, 가벼운 기상은 신선 같은데. 인간세상 초월한 매생 무슨 이유로, 남창 같은 작은 마을 사또 되었나.[皎皎鸞鳳姿, 飄飄神仙氣, 梅生亦何事, 來作南昌尉.]”라고 하였다.

매생은[梅生隱]  매생(梅生)은 한(漢) 나라 때의 은사 매복(梅福)을 이른다. 매복은 상서(尙書)와 춘추(春秋)에 정통하여 군문학(郡文學)이 되고 남창위(南昌尉)에 보임되었었는데, 뒤에 벼슬을 그만두고 집에 있다가 왕망(王莽)이 국정을 전횡할 때를 당해서는 처자(妻子)를 버리고 떠나 성명을 고치고 오시(吳市)의 문졸(門卒) 노릇을 하였었다. <漢書 卷六十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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