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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소뢰장[埋少牢章], 매숙[枚叔], 매숙송고[梅熟松高], 매순증치요[梅詢曾致堯]


매소뢰장[埋少牢章]  예기보주(禮記補註)에 “소뢰(少牢)를 태소(泰昭 단(壇)의 이름)에 묻음은 사시(四時)에 제사하는 것이요, 구덩이와 단에서 전송하고 맞이하는 예를 행함은 추위와 더위에 제사하는 것이요, 왕궁(王宮)은 해에 제사하는 단이요, 야명(夜明)은 달에 제사하는 구덩이요, 유종(幽宗)은 별에 제사하는 곳이요, 우종(雩宗)은 수재와 한재에 제사하는 곳이요, 네 방위에 만든 구덩이와 단은 사방의 온갖 물건의 신(神)에 제사하는 곳이다. 산림과 내와 골짜기와 구릉이 구름을 내어 비와 바람을 만들고 괴물(怪物 괴이한 구름)을 나타나게 하므로 모두 신이라고 말한다. 천하를 소유한 자는 온갖 신에게 제사하고, 제후는 신이 영토 안에 있으면 제사하고 그 영토를 잃으면 제사하지 않는다.[埋少牢於泰昭, 祭時也. (相近)[祖迎]於坎壇, 祭寒暑也. 王宮, 祭日也. 夜明, 祭月也. 幽宗, 祭星也. 雩宗, 祭水旱也. 四坎、壇, 祭四方也. 山林、川谷、丘陵能出雲, 爲風雨, 見怪物, 皆曰神. 有天下者祭百神. 諸侯在其地則祭之, 亡其地則不祭.]”라고 하였다.

매소천성[買蘇川城]  자치통감에 따르면 당 고종(唐高宗)은 상원(上元) 2년(675) 2월에 유인궤(劉仁軌)를 보내 칠중성(七重城)을 쳐서 신라군을 대파하고, 또 말갈 군대를 보내 신라의 남쪽 변경을 쳐서 많이 참획(斬獲)하였다. 뒤이어 9월에는 또 이근행(李謹行)을 안동진무대사(安東鎮撫大使)로 삼아 신라의 매초성(買肖城)에 주둔하며 신라를 경략하게 하여 세 번 싸워 세 번 모두 이기자 문무왕이 당나라에 사신을 보내 공물을 바치고 사죄하였다. 그러나 삼국사기에는 당나라 장수 이근행이 20만 대군을 거느리고 와서 매초성에 주둔하였으나 신라군이 이를 쫓아버리고 전마(戰馬) 30380필과 기타 병기들을 노획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매초성(買肖城)은 인천(仁川)의 옛 이름으로, 삼국사기 김유신열전에는 매소천성(買蘇川城)으로 되어 있다.

매숙[枚叔]  매숙(枚叔)은 전한(前漢)의 문인 매승(枚乘)을 말한다. 강소성(江蘇省) 회음(淮陰) 출신으로 한 경제(漢景帝)의 지우(知遇)를 받아 홍농도위(弘農都尉)가 되었으나 벼슬을 좋아하지 않아 양(梁)나라로 갔다. 양나라의 빈객들이 시문에 능하였으나 매승이 가장 으뜸이었다. 양 태자를 위해 산문과 운문의 중간 형식인 칠발시(七發詩) 8수를 지었는데, 이것이 칠체시(七體詩)의 효시가 되었다고 하는 설이 있다.

매숙[枚叔]  서한(西漢)의 문인 매승(枚乘)으로, 자는 숙이다. 강소성(江蘇省) 회음(淮陰) 출신으로 사부(辭賦)에 능하였다. 일곱 가지 일을 들어 초 태자(楚太子) 를 계발(啓發)하고 양 효왕(梁孝王)을 풍간(諷諫)한 8수의 칠발(七發)을 지었다. 참고로 송나라 엄우(嚴羽)의 창랑시화(滄浪詩話) 시체(詩體)에 “오언은 이릉과 소무에게서 시작되었고, -혹자는 ‘매승’이라고도 한다.- 칠언은 한 무제의 백량에서 시작되었고, 사언은 한나라 때 초 원왕(楚元王)의 부(傅) 위맹에게서 시작되었고, 육언은 한나라 사농 곡영에게서 시작되었고, 삼언은 진나라 하후담에게서 시작되었고, 구언은 고귀향공 조모(曹髦)에게서 시작되었다.[五言起於李陵、蘇武, -或云枚乗.- 七言起於漢武柏梁, 四言起於漢楚王傅韋孟, 六言起於漢司農谷永, 三言起於晉夏侯湛, 九言起於髙貴鄉公.]”라고 하였다.

매숙송고[梅熟松高]  두보(杜甫)의 시 절구(絶句) 4수에 “매화가 익었으니 주로와 함께 먹고, 솔이 높으니 완생을 대하여 논하고자 하노라.[梅熟許同朱老喫, 松高擬對阮生論.]”라고 하였다. 주로(朱老)와 완생은 두보가 촉(蜀) 땅 검외(劍外)에 있을 때 사귄 주씨(朱氏)와 완씨(阮氏)이다.

매순[梅詢]  자는 창언(昌言)이다. 송(宋)나라 때 선성(宣城) 출신으로, 강직하여 간쟁하기를 좋아하였다. 삼사 호부 판관(三司戶部判官)을 역임하였고, 여러 번 북방의 외적 침입에 대한 대비책을 간하였다. 저서로는 허창집(許昌集)이 있다. 송(宋)나라 진종(眞宗)이 이항(李沆)에게 치도(治道)의 급무(急務)를 물었는데, 이항이 부박(浮薄)한 사람을 등용하지 않는 것이라고 하면서 그 표본으로 매순을 꼽았다. 이로 인해 매순은 진종조 내내 등용되지 못하였다. <宋史 卷282 列傳 第41> 매순(梅詢)은 아들이 모두 다섯이었는데 맏아들과 둘째 아들은 그보다 먼저 졸하였고 나머지 세 아들은 득신(得臣), 보신(輔臣), 청신(淸臣)이다. 매순(梅詢)의 형은 매양(梅讓)으로, 자가 극양(克讓)인데 태자중사(太子中舍)로 치사(致仕)하였다. 매양(梅讓)의 맏아들이 요신(堯臣)이다.

매순[梅詢曾致堯]  매순(梅詢)과 증치요(曾致堯). 두 사람 모두 송(宋)나라 때 사람으로서, 강직하여 간쟁(諫爭)하기를 좋아하였다. 매순은 선성(宣城) 출신으로서 삼사 호부 판관(三司戶部判官)을 역임, 여러 번 북방의 외적 침입에 대한 대비책을 간하였고, 증치요는 남풍(南豐) 출신으로서 비서승(秘書丞)을 거쳐 양절 전운사(兩浙轉運使)로 나갔는데, 위상(魏庠)이 소주(蘇州)의 지사(知事)가 되자 증치요가 탄핵하니, 태종(太宗)이 “증치요가 감히 위상을 다스렸으니 두려워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매순증치요[梅詢曾致堯]  매순(梅詢)이나 증치요(曾致堯). 송나라 진종(眞宗)이 평장사(平章事) 이항(李沆)에게 나라를 다스리는 도리 중에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을 묻자, “부화하고 천박한 신진으로서 일을 좋아하는 사람을 쓰지 말아야 합니다.”라고 대답하였다. 진종이 그 사람을 묻자, 이항이 대답하기를 “매순이나 증치요 같은 무리들이 바로 그러한 사람입니다.”라고 하였다. 이후 진종은 이들을 등용하지 않았다. <宋史 李沆列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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