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승[枚乘] 한나라 전기의 미문가(美文家)로서 고명했던 중국 전한(前漢)의 문인이다. 오왕(吳王) 유비를 섬기고 있던 중 왕의 반란계획을 알고 간(諫)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아, 양왕(梁王) 무(武)에게로 피하였다. 만년에는 향리에서 은둔생활을 하였으나, 그의 문명(文名)을 안 무제(武帝)의 부름을 받고 조정으로 가던 도중에 죽었다. 한나라 전기의 미문가(美文家)로서 고명하였고, 산문과 운문의 중간형식인 칠발(七發) 등의 작품이 있는데, 이것은 뒤의 사마상여(司馬相如) 등의 사부문학(辭賦文學)에 크게 영향을 끼쳤다. 한서(漢書) 매승전(枚乘傳)에 “매승(枚乘)은 자(字)가 숙(叔)이고 회음(淮陰) 사람이다. 오왕(吳王) 비(濞)의 낭중(郎中)이 되었는데, 오왕(吳王)이 반역을 모의함에 간언을 올렸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떠나서 양(梁) 땅으로 갔다. 양(梁)의 빈객(賓客)들은 모두들 사부(辭賦)를 잘 지었는데, 매승(枚乘)이 그중 최고였다. 효왕(孝王)이 죽자 회음(淮陰)으로 돌아갔다. 무제(武帝)는 태자(太子) 시절부터 매승(枚乘)의 명성을 듣고 있었으나 즉위할 무렵에는 연로(年老)해서, 안거(安車)로 불렀으나 오는 도중에 죽었다.”라 하였다.
매승칠발[枚乘七發] 한(漢)나라 매승(枚乘)이 지은 사부(辭賦)로, 문선(文選)에 실려 있는데, 내용은 대략 “병을 앓고 있는 초(楚)나라 태자를 오(吳)나라 사람이 문안하였다. 그는 먼저 태자가 병을 앓는 이유를 분석한 뒤에 그 병은 약물이나 침 등으로 나을 수 없으며 요긴한 말과 오묘한 도리[要言妙道]로 없앨 수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는 아름다운 음악, 귀한 음식,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생활, 희귀한 준마, 큰 규모의 사냥, 웅대한 파도 구경 등의 여섯 가지 일을 차례로 묘사하며 이 일을 할 수 있겠느냐고 물었는데, 태자는 병 때문에 할 수 없다고 답하였다. 마지막으로 그는 성현들이 태자를 위하여 천하의 요긴한 말과 오묘한 도를 들려주는 것을 제시하였는데, 태자는 마음이 확 트이고 온몸에 땀이 흘러 홀연 병이 나았다.”는 것으로, 이 작품은 태자를 경계하기 위한 내용으로 인용되기도 한다. 매승(枚乘)은 한(漢)나라 회음(淮陰) 사람으로, 자(字)는 숙(叔)이다. 사부(辭賦)에 뛰어난 문장가이다. 경제(景帝) 때 오왕(吳王) 비(濞)의 낭중(郎中)으로 오왕의 모반을 만류하였으나 듣지 않자, 양효왕(梁孝王)을 섬겨 상객(上客)이 되었다. 오초칠국(吳楚七國)이 반란을 일으키자 오왕에게 파병(罷兵)을 권유하여 명성을 얻었다. <漢書 枚乘傳>
매시유안[梅顋柳眼] 매시(梅顋)는 한창 부풀어 오르는 매화의 꽃봉오리를 형용하는 말로, 아름답기가 여인의 뺨과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유안(柳眼)은 막 돋아나기 시작하는 가느다란 버들잎을 형용하는 말로, 잠에서 막 깨어나 떨어지기 시작하는 사람의 눈과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참고로 송나라 이청조(李清照) 사(詞) 접련화(蝶戀花)에 “따스한 햇살 맑은 바람이 처음으로 추위를 깨뜨리니, 버들 눈과 매화 뺨, 벌써 춘심이 동하누나.[暖日晴風初破凍, 柳眼梅腮, 已覺春心動.]”라고 하였다.
매식[每食] 매 끼니. 끼니 때 마다. 참고로, 시경(詩經) 진풍(秦風) 권여(權輿)에 “나에게 큰 집이 깊고 넓더니, 지금에는 밥 먹을 때마다 남음이 없도다. 아, 권여를 잇지 못함이여.[於我乎, 夏屋渠渠. 今也每食無餘. 于嗟乎, 不承權輿.]”라고 한 데서 보이고, 이정외서(二程外書) 권11 시씨본습유(時氏本拾遺)에 “풍리가 ‘제가 선생님의 가르침을 들은 지 20년이 됨에 지금 기이한 일이 있었습니다.’라고 하자, 이천(伊川) 선생이 ‘무슨 일인가?’라고 물었고, 이에 풍리가 ‘밤중에 정좌를 하니, 방안에 광채가 있었습니다.’라고 답하였다. 그러자 선생이 ‘나 또한 기이한 일이 있다’라고 하니, 풍리가 듣기를 청하였고, 이에 선생이 ‘매번 밥을 먹으면 반드시 배부르다.’라고 답하였다.[曰: 二十年聞先生教誨, 今有一奇特事. 先生曰: 何如? 理曰: 夜間宴坐, 室中有光. 先生曰: 頤亦有奇特事. 理請聞之. 先生曰: 每食必飽.]”라고 한 데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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