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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쾌[佳快]~가태부[賈太傅]~가태중[賈太中]


가쾌[佳快]  ‘빼어난 사람[佳人가인]’과 ‘시원스런 선비[快士쾌사]’를 가리킨 것으로 평범한 무리와 다름을 말한 것이다. ‘快쾌’는 광운(廣韻)에 “마음에 맞다.[稱心칭심] 또는 시원스럽다[可가]의 뜻이다.”라고 하였다. 후한서(後漢書) 개훈전(蓋勳傳)에서는 “동탁(董卓)이 사도(司徒) 왕윤(王允)에게 묻기를 ‘마음 맞는[快쾌] 사례교위(司隷校尉)를 얻고 싶은데 누가 이를 맡을 만한 인물인가?’ 하였다.”라고 하였다. 호삼성(胡三省)의 자치통감(資治通鑑) 112의 주석에 “강동(江東)의 인사들은 그 명예와 지위가 당시에 혁혁한 사람이면 너나없이 ‘잘나간다.[佳勝가승]’느니 ‘이름이 났다.[名勝명승]’느니 하고 일컬었다.”고 하므로 ‘佳快가쾌’는 ‘잘나가다[佳勝가승]’와 뜻이 비슷하다.

가타[伽陀]  가타는 범어(梵語)로 게송(偈頌)을 말한다.

가태부[賈太傅]  한 문제(漢文帝) 때 가의(賈誼)이다. 치안책(治安策)에 대해 소를 올렸다. 가의가 소년 시절 제가(諸家)의 글에 통달하였는데, 문제가 그를 불러 박사(博士)를 삼았다가 태중대부(太中大夫)로 승진시켰다. 가의는 정삭(正朔)을 개정하고 복색을 변경하고 법도를 제정하고 예악을 일으켜야 한다고 주장하였으며, 또 자주 상소를 올려 정사에 대해 말하면서 당시의 폐단에 대해 말하자, 대신의 미움을 사 조정에서 쫓겨나 장사왕(長沙王)의 태부(太傅)가 되었다. 이윽고 양 회왕(梁懷王)의 태부로 옮겼다가 죽었는데, 그때 나이가 33세였다. 세상에서 그를 가태부라 하기도 하고 가생(賈生)이라 하기도 한다. <漢書 卷48 賈誼傳>

가태부[賈太傅]  한문제(漢文帝) 때 장사왕태부(長沙王太傅)가 되었던 가의(賈誼)를 이름. 가의가 처음에는 문제의 큰 신임을 얻어 박사(博士)를 거쳐 태중대부(太中大夫)에 초탁되었다가 소인들의 참소를 입어 장사왕 태부로 좌천되자, 가의가 그곳에 가서는 시름 속에 나날을 보내면서, 상수(湘水)를 지나다가 초(楚) 나라 충신 굴원(屈原)이 일찍이 상수에 빠져 죽은 것을 불쌍히 여겨 부를 지어서 상수에 던져[投湘賦투상부] 굴원을 조문하였다. <漢書 卷四十八>

가태중[賈太中]  한(漢) 나라의 가의(賈誼)이다. 태중은 관명(官名)이다. 문재(文才)가 있었고 장사 태부(長沙太傅)가 되었었는데, 뒤에 한 문제(漢文帝)가 선실(宣室)에 불러들여 독대(獨對)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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