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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재[簡齋]~간재제심[簡在帝心]~간쟁정[諫諍旌]


간재[簡齋]  간재는 송(宋)나라의 명신이며 시인인 진여의(陳與義)의 호이다. 진여의는 북송(北宋) 말기에 일찍이 태학박사(太學博士) 등을 역임했는데, 금인(金人)이 북송의 도읍지인 변경(汴京)을 침입함으로 인해 흠종(欽宗)의 아우 고종(高宗)이 강남(江南)으로 파천함에 이르러, 그는 양양(襄陽), 한양(漢陽) 등지로 피란하여 동정호(洞庭湖), 상강(湘江), 오령(五嶺) 등지를 전전하며 지내다가, 마침내 고종의 부름을 받고 남송(南宋)으로 가서 한림학사(翰林學士), 지제고(知製誥) 등을 거쳐 참지정사(參知政事)에 이르렀다.

간재[簡齋]  진여의(陳與義)의 호이다. 정강(靖康)의 난 이후에 북송시인(北宋詩人)이 모두 없어지고 오직 간재만이 남았는데, 그 시재가 탁월하고 변화에 능했다 한다. <四庫提要 集別集類三>

간재[簡齋]  진여의(陳與義)의 호이다. 북송(北宋)의 시인으로, 자는 거비(去非)이다. 금(金)나라가 변경을 침략하자 남쪽으로 피신하여 방랑하다가 남송(南宋) 고종(高宗)에게 발탁되어 참지정사(叅知政事)가 되었다. 난세에 강남(江南) 각지를 방랑한 체험이 비슷했던 두보를 특히 좋아했으며, 우국탄식의 사(詞)를 많이 지었다. 소박하고 순진한 서정·서경(敍景)의 시를 주로 썼으며, 특히 풍경에 감정을 이입(移入)하는 서정성은 당시풍(唐詩風)으로의 회귀를 나타낸다.

간재노인[簡齋老人]  남송의 시인 진여의(陳與義)를 말한다. 그의 호가 간재(簡齋)이다. 하남성(河南省) 낙양 사람으로 태학박사와 참지정사(參知政事)를 지냈으며, 두보(杜甫)의 시풍을 따르고 황정견(黃庭堅), 진사도(陳師道) 등과 더불어 강서시파(江西詩派)의 일원이었다. 저서로 간재집(簡齋集)이 전한다.

간재제심[簡在帝心]  은(殷)나라 탕왕(湯王)이 “나 소자(小子) 이(履)는 검은 희생을 써서 감히 거룩하신 상제(上帝)께 아룁니다. 죄가 있는 사람을 제가 감히 용서하지 못하며, 상제(上帝)의 신하를 제가 감히 엄폐하여 등용하지 않지 못하여, 신하를 간택함이 상제의 마음에 달려 있습니다.[予小子履 敢用玄牡 敢昭告于皇皇后帝 有罪不敢赦 帝臣不蔽 簡在帝心]”라고 하였다. <論語 堯曰>

간쟁정[諫諍旌]  간쟁정은 깃발에 간쟁하는 말을 쓰는 것이다. 비방목과 같은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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