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척[干戚] 간척은 방패와 도끼를 가리키는데, 옛날에 이것을 손에 쥐고 무무(武舞)를 추었다. 우(禹) 임금이 불공(不恭)한 묘족(苗族)을 정벌하려고 하다가 익(益)의 간언(諫言)을 듣고는 정벌을 그만두고 문덕(文德)을 펴면서 방패와 새깃[干羽]을 손에 쥐고 양계(兩階)에서 춤을 추었더니, 칠순(七旬) 만에 묘족이 감복(感服)했다고 한다. <書經 大禹謨>
간척무[干戚舞] 간척무는 왼손에는 방패[干]를 오른손에는 도끼[戚]를 들고 추는 무무(武舞)인데, 우(禹) 임금 때 묘족(苗族)이 명을 거스르자 우 임금이 이 춤을 추니 묘족이 70일 만에 감동하여 복종했다고 한다. 그 뒤 후한(後漢) 때 최식(崔寔)이 “성인(聖人)은 세상의 변화와 함께 잘 추이(推移)하여 나아가지만 속된 선비는 변통할 줄을 몰라서 간척(干戚)으로 평성(平城)의 포위를 충분히 풀 수 있다고 여긴다.[干戚之舞 欲以解平城之圍]”라고 한 말에서 유래하여, 간척무는 변화해 가며 변화에 대응하지 않는 고식적인 문치책(文治策)을 가리키는 뜻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평성은 한(漢)나라 고조(高祖)가 흉노(匈奴)에게 포위를 당하여 곤욕을 치른 곳이다.<禮記 樂記><後漢書 卷52 崔駰列傳>
간척무악[干戚舞樂] 방패와 도끼를 들고 추는 춤을 말하는데, 인덕(仁德)으로 교화하여 심복시킬 때의 비유로 쓰인다. 순(舜) 임금의 신하인 우(禹)가 남방의 복종하지 않는 유묘씨(有苗氏)를 정벌하려고 하자, 순 임금이 무력 대신에 교화를 펼쳐야 한다면서 간척의 춤을 추니, 3년 만에 유묘씨가 귀의했다는 이야기가 한비자(韓非子) 오두(五蠹)에 나온다.
간척불능해평성지위[干戚不能解平城之圍] 간척(干戚)으로는 평성(平城)의 포위를 풀 수 없다. 후한(後漢) 때 최식(崔寔)이 “성인(聖人)은 세상의 변화와 함께 잘 추이(推移)하여 나아가지만 속된 선비는 변통시킬 줄을 몰라서 간척(干戚)으로 평성의 포위를 충분히 풀 수 있다고 여긴다.”고 한 데서 온 말이다. 간척은 방패[干]와 도끼[戚]를 가지고 추는 무무(武舞)인데, 우(禹)임금 때 묘족(苗族)이 명을 거스르자 우임금이 이 춤을 추니 묘족이 70일 만에 감동하여 복종했다고 한다. 평성(平城)은 한(漢)나라 고조(高祖)가 흉노(匈奴)에게 포위당하여 곤욕을 치른 곳이다. 즉, 변화롭게 대응하지 않는 고식적인 문치책(文治策)으로는 적을 제압할 수 없다는 뜻이다.
간척양계[干戚兩階] 간척은 방패와 큰 도끼이고, 양계(兩階)는 예(禮)를 갖출 때 주인과 빈객이 각각 서는 양쪽 계단이다. 순(舜) 임금이 우(禹)를 시켜 유묘(有苗)를 정벌케 하였는데 유묘가 완강히 저항하자 군대를 거두어 돌아오게 하고 문덕(文德)을 크게 베풀어 방패와 깃털을 잡고 양계에서 춤을 추니 70일 만에 유묘가 와서 복종하였다고 한다. <書經 大禹謨>
간척지무[干戚之舞] 간척(干戚)은 방패와 도끼를 들고 추는 순(舜) 임금의 춤 이름인데, 무무(武舞)임에도 문덕을 펼치는 정치를 상징한다. 묘족이 반란을 일으켰을 때 우(禹)가 정벌하여 진압하려 하였으나 30일을 버티었다. 이에 순 임금이 간척이란 춤을 추어 문덕을 펼치자 70일 만에 묘족이 항복하였다고 한다. <書經 大禹謨>
간척지무[干戚之舞] 사람을 교화하여 심복시키는 인덕(仁德)의 비유로 쓰이는 말이다. 순(舜) 임금이 유묘씨(有苗氏)를 정벌하는 대신에, 문교(文敎)를 펼치면서 방패와 도끼[干戚]를 들고 춤을 추자 유묘씨가 귀의했다는 이야기가 한비자(韓非子) 오두(五蠹)에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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