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로삼희[葛盧三犧] 갈로(葛盧)는 춘추 시대 개국(介國)의 임금 이름이다. 그는 소의 말을 잘 이해했다. 그가 노나라를 예방했을 때, 소가 우는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저 소는 세 마리의 새끼를 낳았는데, 세 마리 모두 희생으로 바쳐졌습니다. 저 소의 울음소리가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라고 하였다. 노나라에서 확인해 보니 사실이었다고 한다. <春秋左氏傳 僖公 29年>
갈롱[葛籠] 남조(南朝) 송(宋)나라의 무제(武帝)가 너무도 청간(淸簡)하고 검소한 나머지 “궁전의 벽 위에 칡으로 만든 등롱을 걸어 놓았다.[壁上挂葛燈籠]”라는 고사가 전한다. <宋書 卷3 武帝下>
갈뢰[曷懶] 땅 이름인데 지금 함경도 남북지대이다.
갈료근성[獦獠根性] 갈료는 혜능(慧能)을 이른다. 영남(嶺南) 신주(新州) 출신의 혜능이 황매(黃梅)에 가서 오조(五祖) 홍인(弘忍)을 만나 문답을 나눌 적에, 홍인이 짐짓 영남 사람이 어떻게 부처가 될 수 있느냐고 묻자, 혜능이 “사람에게는 남북이 있어도 불성에는 본래 남북이 없다.[人雖有南北 佛性本無南北]”라고 대답하였는데, 이에 홍인이 “이 오랑캐 근성이 대단히 날카롭구나.[這獦獠根性大利]”라고 말하고는 방아를 찧는 소임을 맡긴 고사가 전한다. 갈료(獦獠)는 남만(南蠻)과 같은 말이다.
갈룡[葛龍] ‘갈피(葛陂)의 용’으로 지팡이를 뜻한다. 후한(後漢) 때 비장방(費長房)이 약 파는 노인을 만나고서 집으로 돌아갈 때 노인이 대나무 지팡이 하나를 주면서 “이것을 타면 가고 싶은 곳으로 갈 수 있는데, 도착해서는 반드시 갈피에 던져야 한다.”라고 하였다. 비장방이 과연 집으로 돌아와 갈피에 죽장을 던지니 변하여 용이 되었다. <後漢書 卷82下 方術列傳 費長房>
갈류[葛藟] 칡넝쿨. 시경(詩經)의 편명(篇名)으로, 살 곳을 잃고 떠도는 백성들을 가리킨다. 시경(詩經) 왕풍(王風) 갈류(葛藟)에 “길고 길게 자라난 칡넝쿨이여, 하수의 물가에 자라 있도다.[綿綿葛藟 在河之滸]”라고 하였는데, 그 주에 “세상이 쇠하고 백성들이 흩어져서 향리(鄕里)와 가족을 버리고 떠돌면서 갈 곳을 잃은 것이다.”라고 하였다.
갈류[葛虆] 갈류는 칡덩굴로, 시경(詩經) 주남(周南) 규목(樛木)에 “남산 아래로 굽어 늘어진 나뭇가지 있으니, 칡덩굴이 얽히었네. 즐거우신 군자는 복록에 편안하도다.[南有樛木 葛虆纍之 樂只君子 福履綏之]” 하였는바, 후궁(後宮)을 비유한 말이다. 즉 후비가 질투심이 없고 덕이 많아서 은혜가 미천한 후궁들에까지 고루 미침으로 인해, 후비의 덕에 감복하여 후궁들이 이 노래를 불렀으므로 이른 말이다.
갈류[葛藟] 갈류는 칡이나 등나무 등덩굴 종류의 식물을 가리키는데, 시경(詩經) 주남(周南) 규목(樛木)장에 “남쪽에 규목이 있으니 갈류(葛藟)가 얽히었다.” 하였고, 그 주에 “문왕(文王)의 후비(後妃)가 질투하는 마음이 없으므로, 여러 첩들이 아름답게 여겨 이 시를 지었다.” 하였다. 후비(后妃)의 덕이 아주 훌륭하여 중첩(衆妾)들을 포용하는 것이 마치 교목에 수많은 갈류가 얽혀 있는 것과 같다는 말이다.
갈류[葛藟] 갈류(葛藟)는 칡덩굴인데 많은 공족(公族)으로 공실(公室)을 보호하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춘추좌전(春秋左傳) 문공(文公) 7년 조(條)에 “칡덩굴도 오히려 근본을 비호할 줄 알기 때문에 군자가 그것을 종족에 비유하는데, 더구나 나라의 군주야 말할 나위가 있겠는가.[葛藟猶能庇其本根 故君子以爲比 況國君乎]” 한 데서 온 말이다.
갈류덕화[葛藟德化] 왕비가 질투심이 없어서 아랫사람들을 잘 거느림을 뜻한다. 시경(詩經) 주남(周南) 규목(樛木)에, 문왕(文王)의 비(妃)인 후비(后妃)가 질투가 없어 중첩(衆妾)이 그 덕을 즐거워한다는 것을 칭송하여 “남산에 아래로 굽은 나무가 있으니, 칡넝쿨이 얽혔도다. 화락한 군자여, 복록이 편안하네.[南有樛木 葛藟纍之 樂只君子 福履綏之]”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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