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석[碣石] 갈석산(碣石山) 또는 그 가운데에 있는 기둥 모양의 바위를 가리키기도 한다. 옛날 진시황(秦始皇)이 순수(巡狩)하다가 갈석에 이르러 바위에 공을 새긴 고사가 있다. <史記 卷6 秦始皇本紀>
갈석[碣石] 옛날 산 이름인데 하북(河北) 창려(昌黎) 서북쪽에 위치한 산으로, 바닷물 속에 잠겨서 일부만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고 한다. 서경(書經) 우공(禹貢)에 “도이는 피복을 입고 공물을 바친다. 오른쪽으로 갈석산을 끼고 황하로 들어간다.[島夷皮服 夾于碣石 入于河]”라고 하였다. 멀리서 그 산을 바라보면 무덤처럼 둥글게 솟았는데, 산꼭대기에 큰 바위가 특별히 튀어나와 마치 기둥과 같기 때문에 갈석으로 이름을 붙인 것이다. 진 시황(秦始皇)은 32년에, 한 무제(漢武帝)는 원봉(元封) 원년(元年)에 동쪽으로 순시하다가 이곳에 이르러 돌에 자신의 공적을 새기고 바다를 바라보았다. 역대 제왕들이 순행(巡行)할 때 동쪽으로는 끝지점이다. 우 임금이 이곳의 산하를 정비했다. 서경(書經) 우공(禹貢)에 라고 하였다.
갈석[碣石] 원래 지금의 하북성(河北省) 창려현(昌黎縣) 북쪽에 있는 갈석산을 말하나 소진이 말하는 갈석은 사기색은에 의하면 상산(常山) 구문현(九門縣)에 있다고 했다. 구문현은 지금의 하북성 호성(蒿城) 서북에 있는 태항산맥 줄기에 해당한다.
갈석[碣石] 하북(河北) 또는 열하(熱河)에 있다고 하는 산으로, 이 지역이 대체로 옛날 연(燕)나라가 있던 지방이다. 서경(書經) 우공(禹貢)에 이르기를 “오른쪽으로 갈석을 끼고 돌아서 황하로 들어갔다.[夾右碣石 入于河]”고 하였고, 공안국(孔安國)은 다만 ‘바닷가에 있는 산[海畔山]’이라고 하였다. 소재지에 대해서는 하북(河北)·열하(熱河)·산동(山東)등 여러 설이 있다.
갈석[碣石] 황하(黃河)의 하구(河口)에 있는 갈석산(碣石山)을 이른다. 서경(書經) 우공(禹貢)의 기주(冀州)에 “도이는 피복을 입고 공물을 바친다. 오른쪽으로 갈석산을 끼고 황하로 들어간다.[島夷皮服 夾于碣石 入于河]”라고 보이는데, 채침(蔡沈)의 집전(集傳)에 “갈석은 지리지(地理志)에 ‘북평군(北平郡) 여성현(驪城縣) 서남쪽 하구의 땅에 있다.’ 하였으니, 지금의 평주(平州)의 남쪽이다. 기주는 북방에서 공부(貢賦)를 수송해 올 적에, 북해(北海)로부터 황하로 들어와서 남향하여 서쪽으로 도는데 갈석산이 오른쪽으로 도는 사이에 있으므로 ‘오른쪽으로 낀다.’고 한 것이다.” 하였다.
갈석[碣石] 전국 시대 연 소왕(燕昭王)이 선비를 예우하기 위하여 지은 갈석궁(碣石宮)을 말한다. 사기(史記) 권74 맹자순경열전(孟子荀卿列傳)에, 제(齊)나라 선비 추연(鄒衍)이 연나라에 가자 소왕이 제자의 예를 갖추어 수업을 하고 그를 위해 갈석궁을 지었다는 기록이 나온다.
갈석궁[碣石宮] 갈석궁은 연 소왕(燕昭王)이 추연(鄒衍)을 위해 지어 준 궁 이름이다.
갈석도[碣石道] 갈석은 산 이름으로 풀이된다. 자치통감(資治通鑑) 수기(隋紀) 양제 상지하(煬帝 上之下)의 주에, 두우(杜佑)가 “갈석산은 한 나라 낙랑군 수성현에 있으니, 진(秦) 나라의 만리장성이 이 산에서 시작되었다[碣石山 在漢樂浪郡遂城縣 秦長城起於此山].” 했음.
갈석산[碣石山] 서경(書經) 우공(禹貢)에 “오른쪽으로 갈석을 끼고 돌아서 황하로 들어갔다.[夾右碣石 入于河]”라고 하였고, 공안국(孔安國)은 다만 ‘바닷가에 있는 산[海畔山]’이라고 하였다. 소재지에 대해서는 하북(河北)·열하(熱河)·산동(山東) 등 여러 설이 있다.
갈석산[碣石山] 중국 하북성(河北省) 창려현(昌黎縣) 북쪽에 위치한 산으로 동쪽 바다에 접해 있는데, 황하가 바다로 들어가는 곳이다. 바닷물에 잠겨 일부만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고 한다. 역대 제왕이 순행(巡行)할 때의 동쪽 끝 지점이다.
갈선[葛仙] 갈선은 진(晉)나라 사람 갈홍(葛洪)을 말한다. 연단술을 익혀서 신선이 되었다고 하여 갈선이라고 한다. 중국 진나라 단양(丹陽) 구용(句容) 사람으로, 자는 치천(稚川), 자호는 포박자(抱朴子)이다. 어려서부터 많은 책을 섭렵하고 신선술을 익혔다. 뒤에 나부산(羅浮山)에 들어가 저술과 연단에 전념하였다. 저서로는 포박자(抱朴子)·금궤약방(金匱藥方)·신선전(神仙傳)·집이전(集異傳)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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