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길전[甘吉傳] 동파(東坡) 소식(蘇軾)이 지은 황감육길전(黃甘陸吉傳)을 가리키는데, 황감은 감귤의 별칭으로 감귤을 의인화한 것이고 육길은 대지를 의인화한 것으로, 그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황감, 육길은 전국 시대 초나라의 두 고사(高士)로, 처음에 황감은 이산(泥山)에 은거하였고, 육길은 소산(蕭山)에 은거했다가 뒤에 모두 초왕(楚王)의 부름을 받고 등용되었다. 육길이 먼저 등용되어 좌서장(左庶長)으로 동정군(洞庭君)에 봉해졌는데, 황감은 뒤에 등용되었으나 온윤(溫尹)으로 평양후(平陽侯)에 봉해져서 영윤(令尹)과 같은 지위에 오르자, 육길이 여기에 불만을 품고 일찍이 황감에게 조목조목 서로의 재능을 따진 결과, 마침내 황감이 말하기를 “그대는 어찌 그리 견식이 좁은가. 해마다 태수가 백성들에게 권농을 하고 나서 역마를 타고 금문에 들어가 옥당에 올라가서 우려, 신려, 매복, 조숭의 무리와 함께 상의 앞에 나아가 모시고 있을 때, 이상의 두어 무리에 대해서는 입이 떡 벌어지고 혀가 오그라들어 도무지 치아의 사이에 올릴 수가 없을 터이니, 이때를 당해서 과연 그대에게 맡겨야겠는가, 나에게 맡겨야겠는가.[君何見之晩也 每歲太守勸駕 乘傳入金門上玉堂 與虞荔申梠梅福棗嵩之徒 列侍上前 使數子者 口呿舌縮 不復上齒牙間 當此之時 屬之於子乎 屬之於我乎]”라고 하자, 끝내 육길 자신이 황감만 못하다는 것을 인정했다는 것이다.
즉 여기에 나오는 우려, 신려, 매복, 조숭 등은 본래 인명이기도 하지만, 여기서는 여지, 매실, 대추 등의 과일을 의인화하여 말한 것이다.
황감이 다른 여러 시고 떫은 과일보다 낫다는 뜻을 취하여 소식이 다시 이 전(傳)의 말미에 “태사공은 논한다. 전문을 재상으로 삼자 오기가 기뻐했고, 인상여가 수레를 회피하자 염파가 굽혔는데……황감과 육길 또한 그러하구나. 전에 이르기를 ‘여자는 아름답거나 추함을 막론하고 궁에 들어만 가면 질투를 당하고, 선비는 어질거나 어리석음을 막론하고 조정에 들어만 가면 질시를 받는다.’ 하니, 이를 두고 한 말이로다. 비록 좋고 나쁜 차이가 서로 동떨어져도 기호가 서로 같지 않음이 또한 그러하거니, 이런 것들을 이루 다 말할 수 있겠는가.[田文論相吳起說 相如回車廉頗屈……甘吉亦然 傳曰女無好醜 入宮見妬 士無賢不肖 入朝見嫉 此之謂也 雖美惡之相遠 嗜好之不齊亦然 可勝道哉]”라고 하였다. <蘇東坡全集 卷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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