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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망지비[鑑亡之悲]~감모오열[感慕嗚咽]~감목수헌[甘霂隨軒]


감망[鑑亡]  당 태종(唐太宗)이 재상 위징(魏徵)을 잃고 “구리를 거울삼으면 의관을 바로잡을 수 있고, 옛 사적을 거울삼으면 흥망을 알 수 있고, 사람을 거울삼으면 잘잘못을 밝힐 수 있다. 짐은 일찍이 이 세 가지 거울을 보전하여 안으로 나의 과실을 예방하였는데, 이제 위징이 죽었으니 거울 하나가 없어졌구나.” 하고 탄식한 데서 나온 말이다. <新唐書 卷97 魏徵列傳>

감망지비[鑑亡之悲]  현상(賢相)의 죽음을 뜻한다. 당 태종(唐太宗) 때의 명신 위징(魏徵)은 특히 직간(直諫)을 잘하여 임금을 적극 보좌했으므로, 그가 죽은 뒤에 태종이 한번은 조정에 나가서 탄식하여 이르기를 “구리를 거울로 삼으면 의관을 바르게 할 수 있고, 옛일을 거울로 삼으면 흥망성쇠를 알 수 있고, 사람을 거울로 삼으면 득실을 밝힐 수 있는 것인데, 내가 일찍이 이 세 가지 거울을 다 가져서 속으로 나의 과실을 방지했더니, 지금은 위징이 죽고 없으니, 하나의 거울이 없어진 셈이다.”라고 하였다. <新唐書 卷97 魏徵列傳>

감망편[鑑亡篇]  현상(賢相)의 죽음을 애도하는 글을 말한다. 당 태종(唐太宗) 때의 명신 위징(魏徵)은 특히 직간(直諫)을 잘하여 임금을 적극 보좌했으므로, 그가 죽은 뒤에 태종이 한번은 조정에 나가서 탄식하여 이르기를 “구리를 거울로 삼으면 의관을 바르게 할 수 있고, 옛일을 거울로 삼으면 흥망성쇠를 알 수 있고, 사람을 거울로 삼으면 득실을 밝힐 수 있는 것인데, 내가 일찍이 이 세 가지 거울을 다 가져서 속으로 나의 과실을 방지했더니, 지금은 위징이 죽고 없으니, 하나의 거울이 없어진 셈이다.[以銅爲鑑, 可正衣冠, 以古爲鑑, 可知興替, 以人爲鑑, 可明得失. 朕嘗保三鑑, 內防己過, 今魏徵逝, 一鑑亡矣.]”라고 한 데서, 감망(鑑亡)은 현상(賢相)의 죽음을 뜻한다.

감명즉진구부지[鑑明則塵垢不止]  거울이 깨끗하면 티끌이나 때가 붙지 않음. 감명(鑑明)은 거울이 밝다는 뜻으로 인간의 마음을 비유한 표현이고, 진구(塵垢)는 티끌과 때로 과오(過誤)를 비유한 것이다. 지(止)는 부착(付着)의 뜻이다.

감모[感慕]  남사(南史) 장부전(張敷傳)에서 “태어나면서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 나이 몇 살 정도 되자 물어서 알고 나서는 비록 어린아이였지만 감모(感慕)하는 기색이 있었다.”라 하였고, 수서(隋書) 독고황후전(獨孤皇后傳)에도 “어려서 양친을 잃고 늘 감모(感慕)하는 마음을 품고서, 공경(公卿)들 중 부모가 있으신 분들이 늘 예를 다하는 것을 보았다.”라고 하였다. ‘사모(思慕)’는 단지 마음에 두는 것을, ‘감모(感慕)’는 낯빛에 드러남을 말한 것이다.

감모[感慕]  느끼고 사랑하다. 추모하다. 앙모하다.

감모오열[感慕嗚咽]  돌아가신 어머니가 그리워서 흐느껴 울다.

감모지침[感慕之忱]  감격스럽고 앙모하는 진심.

감목[監牧]  종6품의 외직 무관(外職武官)으로 목장(牧場)을 감독하던 감목관(監牧官)이다.

감목공구[監牧攻駒]  감목은 태복시(太僕寺)에 소속되어 목장(牧場)을 관장하는 관원인데, 공구는 곧 말을 다스린다는 뜻이다.

감목수헌[甘霂隨軒]  후한(後漢) 때 백리숭(百里嵩)이 서주 자사(徐州刺史)로 있을 때 큰 가뭄이 들었는데, 그가 수레를 타고 가는 곳마다 단비가 내렸다. 이에 동해(東海), 축기(祝其), 합향(合鄕) 세 고을의 부로(父老)들이 “우리도 모두 공이 백성인데 어찌 유독 우리들 쪽으로는 오시지 않습니까.” 하여, 이에 그가 수레를 돌려 그곳으로 가자 곧 비가 내렸다. <太平御覽 卷10> 후한의 정홍(鄭弘)과 당(唐)나라 안진경(顔眞卿)에게도 이와 비슷한 고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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