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무[監撫] 감국(監國)과 무군(撫軍)의 합칭으로, 세자의 일이다. 임금이 출전할 때 태자(太子)가 남아서 나라를 지키는 것이 감국이고, 임금을 따라 출전하는 것이 무군이다.
감무[監撫] 세자가 임금을 도와서 나라를 돌보고 군사를 순무하던 일로, 곧 세자의 직무(職務)를 말한다. 감국무군(監國撫軍)의 준말이다.
감무[瞰霧] 안개를 내려다보다.
감무[甘茂] 진(秦)나라의 장수. 하채(下蔡) 출신. 혜왕(惠王)에게 발탁되어 장군이 되었으며, 다시 무왕(武王) 때에는 좌승상(左丞相)에 올랐다. 뒤에 소왕(昭王)에게 미움을 사서 제(齊)나라로 도망갔다가 위(魏)나라에서 죽었다.
감무[甘茂] 하채(下蔡) 사람. 처음 진 혜왕(秦惠王)을 섬겨 장군이 되었다가 진 무왕(秦 武王) 때 좌승상(左丞相)이 되어 의양을 정벌하였다. 그 후 공손석(公孫奭)과 틈이 벌어져 제(齊)나라로 도망하였다가 위(魏)나라에서 죽었다.
감문[甘文] 경상북도 김천 지역의 옛 지명으로, 지금의 경상북도 김천시 개령면(開寧面)이다.
감문[監門] 궁성 내외의 각 문을 지키는 일을 담당했던 군대를 말한다.
감문관유민도[監門官流民圖] 중국 송(宋)나라 때 왕안석(王安石)의 신법이 폐해가 많아 감문관 정협(鄭俠)이 왕안석에게 여러 번 그 폐해를 보고했지만 듣지 않았다. 그 후 정협은 왕안석이 듣지 않을 것을 알고 유민들의 처참한 모습을 그린 유민도(流民圖)를 상소와 함께 역마를 띄워 직접 올렸다. 신종이 유민도를 보고 탄식하며 신법을 중지하자 오랜 가뭄 끝에 단비가 내려 백성들이 기뻐하였다 한다. <宋史 卷321 鄭俠列傳>
감문국[甘文國] 삼한 시대 부족국가로 현재 김천시 감문면과 개령면 일원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서기 231년 신라의 이찬(伊飡) 석우로(昔于老)에게 정벌되었고, 557년에 감문주로 개칭되었다.
감문기고[敢問其故] 감히 그 이유를 묻는다는 말이다.
감문기방[敢問其方] 감히 그 방법을 묻습니다. 감히 그 이치를 여쭙습니다. 방(方)은 정(正), 도(道), 의(義), 리(理) 등과 통용한다.
감문기유[敢問其遊] 제가 감히 그 까닭을 여쭙습니다. 유(遊)는 까닭. 유(由)와 같다.
감문정협[監門鄭俠] 정협은 북송 신종(北宋神宗) 때 사람으로, 일찍이 상안문(上安門)을 감시하는 감문이라는 직책을 맡게 되었는데, 당시 왕안석(王安石)이 신법(新法)을 시행하여 큰 흉년이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백성들에게 세금과 관곡(官穀)을 가혹하게 징수하였다. 이에 정협은 백성들이 기아에 허덕이며 부역에 동원되는 참혹한 모습을 그림으로 그려 황제에게 올리니, 이것을 본 자들은 모두 눈물을 흘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