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산[弇山] 감산(弇山)은 명(明)나라 왕세정(王世貞)을 말한다. 호를 감주산인(弇州山人)이라고도 했던 왕세정은 시(詩)와 고문(古文)을 좋아하여, 역시 시와 고문으로 당대 이름을 날린 이반룡(李攀龍)과 함께 문맹(文盟)을 주관하였다. <明史 卷二百八十七>
감산[憨山] 명(明) 나라의 고승(高僧) 덕청(德淸)을 가리킨다. 당시에 감산대사(憨山大師)라고 불렀다.
감산[甘山] 이황중(李黃中)의 호이다. 자는 공일(公一), 본관은 하음(河陰)이다. 창강 김택영이 지은 <감산자전(甘山子傳)>에 의하면, 2세 때 마음으로 문자를 알았고, 7세에 시를 지을 만큼 시재가 뛰어났으며, 오로지 시를 공부하여 만당의 풍이 있었다. 김정희(金正喜)가 그의 시를 보고 우리나라 천년의 절향(絶響)이라고 감탄하였다. 노담을 사모하였고, 단학에 심취하였다. 사람됨이 맑고 기이하여 시세에 부앙(俯仰)하지 않았다고 하였다. 창강이 그의 시 90수를 모아 한 권을 만들어 회남(淮南)에서 간행하였고, 심재에게 서문을 부탁하였는데, <암서집> 권18에 이감산시선서(李甘山詩選序)가 있다.
감상로[感霜露] 이정외서(二程外書) 주공섬록습유(朱公掞錄拾遺)에 “묘에 참배하는 것은 10월 1일에 하는데, 서리와 이슬이 내리는 것에 감회를 느끼기 때문이다. 한식에는 또한 상례에 따라 제사를 지낸다.[拜墳則十月一日拜之 感霜露也 寒食則又從常禮祭之]”라고 하였다.
감상로이상사[感霜露而相思] 계절이 바뀌는 것에 감회를 느껴 가족을 그리워한다는 뜻이다. 시경(詩經) 진풍(秦風) 겸가(蒹葭)에 “갈대는 푸른데 백로는 서리가 되네.[白露爲霜] 바로 그 사람은 강물 저 편에 있다네.”라고 한 것이 바로 이 글의 근거이다.
감색[監色] 간색(看色)이라고도 하며, 감관(監官)과 색리(色吏)를 합칭한 말이다. 감관(監官)은 궁가(宮家)와 관청에서 돈이나 곡식을 보관하여 지키며 출납을 맡아보는 관직이고, 색리(色吏)는 담당 아전(衙前)이란 뜻으로 감영(監營) 혹은 군아(軍衙) 등의 아전을 일컫는 말이다.
감색작용[監色作俑] 감색이 농간을 부리다. 감색(監色)은 궁가(宮家)나 관아에서 전곡(錢穀)을 간수·출납하는 일을 맡아보는 관리이다.
감생[監生] 국자감(國子監)의 생도. 보통 국자감에서 학업을 닦는 자들을 모두 일컫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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